2009. 5.28.나무날. 맑음

조회 수 988 추천 수 0 2009.06.07 13:39:00

2009. 5.28.나무날. 맑음


단오입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저녁에 날적이를 쓸 때에야 알았습니다.
부름도 아니 깨고 창포에 머리도 못 감고
부채도 못 만들고 앵두화채도 못 먹고
단오굿판도 벌이지 못한 채 그리 지나가버렸지요.
식구들끼리라도 단오제를 지내는데
허망함으로 우리는 자꾸 걸음이 더디고 또 더딥니다.
사람들은 덕수궁에 분향하러 가며
더러 문자를 보내오기도 하였습니다.
“네 몫까지 하마.”
여기서는 겨우 상복을 입고 다니는 걸로
추모를 대신하지요.
상복으로 입을 옷이 마뜩찮더니
생각나는 검은 블라우스 하나 떠올랐지요.
버리지 않고 두면 입을 날이 있다더니
한 번도 입지 않은 십여 년 전의 옷이
진정성으로 감동을 주던 떠나간 큰 어른을 추모할 수 있게 하네요.

아침마다 논둑을 도는 일은
공동체에서 아이가 이태째 맡은 역할입니다.
논두렁을 밟고 온 아이가
지역의 도서관에서 하는 문인화를 하러 나갈 적
같이 나섰습니다.
“소리 좀 줄여 봐.”
음악을 듣고 있던 아이가 뭔가 생각이 난 모양입니다.
“어른과 아이가 배우는 것에 차이가 있는 것 같애.”
“어떻게?”
“어른들이 더 빨리 배우는 것 같애.”
“아니던데... 어른들이랑 애들을 같이 가르쳐보면
아이들이 훨씬 앞서 배우던데...”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경험이 바탕 되어야 하는 공부의 영역에서는
어른들이 더 잘해.”
아, 그렇겠구나...
아마도 어른들 틈에서 하는 문인화의 제 더딘 속도에
조금 조바심이 나던가 봅니다.
“엄마!”
일상에 너무나 헐렁한 엄마를 둔 아이는
어른이 놓치는 것들을 챙기는 역할도 한 몫 단단히 하지요.
“기름(자동차)도 최소한계점을 정해 놔, 다 내려갔을 때 하려 들지 말고.”
시간에 쫓길 때 꼭 기름도 넣어야 되는 상황이더라는 말을 듣고
나름의 방법을 찾아준 것이지요.
이야기는 현 한국 상황에 대한 논평으로 이어집니다.
“정부는 정말 왜 그러는 걸까?”
산골 일에 서두는 어른들이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있는 신문을
아이가 늘 읽고 세상 소식을 전하지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 대학을 방문하고 왔습니다.
음악 소리 컸는데,
젊은이들답게 sexy dance 축제라는 현수막이 보였지요.
준비한다고 꽤 고생들을 했겠습니다.
그런데 전직 대통령을 보내고 사흘,
국상(國喪)중입니다.
국민 전체가 상복(喪服)을 입던 왕실의 초상을 일컫는 말이긴 하나
국민의 전체 이름으로 치르는 국민장이 그 의미와 다를 것 없겠지요.
당신의 공덕이 어찌되었든 국민장에는 합의를 보았습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이 문제로부터 다른 영역입니다.
한 때 이 나라를 이끈 한 지도자의 '죽음'이라는 사실에 기대 쓰는 글이지요.)
그렇다고 우리가 일상을 접고
다 곡을 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상중에는 어찌 해야 한다는 사람의 도리가 있지 않을지요.
교육의 본질을 혹자마다 달리 볼 수도 있겠으나
궁극적으로 사람 꼴 하고 살자는 것 아닌지요.
사람의 도리 말입니다.
이런 때 교육현장에서
여러 잔치들을 미루거나 과감히 취소하는 것(그런 결단이 어디 쉬울까만...)도
지혜 아닌가 싶습니다.

하여 그곳 홈페이지에 글 하나 남겼습니다.
“아무리 변방의 작은 대학이라 하지만
명색이 대학입니다.
시대가 어찌 변했더라도
대학, 그래도 여전히 상아탑 아래 있다 믿습니다.
진리가 있고
저항하는 기상이 있으며
고뇌하는 젊음이 있고
항거하는 우직함이 있으며
역사를 인식하는 의기가 있는 곳 아닐지요.
바로 그들을 대표하는 곳이 학생회이겠습니다.
80년대 뜨거웠던 시대를 재현하는 학생회를 바라는 게 아닙니다.
학생회에 요구되는 ‘시대적 본분'이 있지 않을까,
정녕 고민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학생회는 그럴 책무가 있습니다.
전액 장학금을 받는 이들조차 날아오는 등록고지서를 통해
일괄적으로 납부하는 것이 바로 학생회비입니다.
학생회 존립의 경제적 기반은 바로 그것이고,
그래서 더욱 공적인 존재로서의 역할을 외면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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