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6. 2.불날. 비 몇 방울 살짜기

조회 수 1133 추천 수 0 2009.06.13 23:41:00

2009. 6. 2.불날. 비 몇 방울 살짜기


산골은 초승달에도 길이 훤합니다.
반달이면 더욱 환하지요.
살고 있는 이들이라면 산 어둠에 더욱 익어
대낮같이 훨훨 밤길 걸어 다닐 수 있답니다.
음력 열흘에도 산마을이 밝은 밤!

선진샘이 달포를 머물러 들어왔습니다.
상설로 문을 열던 2004년에 맺었던 인연이니
벌써 여섯 해에 이르나요.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도 두어 달 머물며 손을 보탰더랬습니다.
지금은 공동육아어린이집 대표교사로 있지요.
연구월(거기선 뭐라고 하나?)을 예서 보내게 된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꼭 단식모임에 같이 하고 싶어한 그이지요.
7월 정기단식에는 함께 하지 못해도
가벼운 3일 단식(앞뒤 감식과 보식을 더하면 9일 일정이지요)을
마련해주어야지 합니다.
아무쪼록 잘 쉬고, 잘 수행하다 갔음 좋겠니이다.
봉화에 귀농동기모임을 갔던 미선샘도 돌아왔네요.

‘반짝한데모임’이 있었습니다.
한동안 머물 식구도 있으니 어떻게 움직일까 의논도 하고
미선샘의 지난 ‘3개월 평가’도 있었지요.
“충분히 잘 지냈습니다, 잘 쉬고 있고...
몸을 잘 안 썼는데, 몸을 움직이는 게 힘이 되고
머리도 마음도 편한데 몸이 힘들어도 몸이 안정감, 이게 쉼이구나,
몸을 쓰는 게 쉬는 거구나...”
되게 많이 배운 시간이었다 합니다.
내가 이렇게 해야 한다, 상대방이 이렇게 해야 한다,
그런 걸 놓고 살려고 했는데, 여기서 그리 했다 합니다.
“물꼬를 찾아오는 사람들, 전혀 모르는 사람도 있고,
상설 경험이 없어서인지 모르지만,
일하고 소중함 아이들 가르치고 이런 것도 중하지만,
물꼬랑 인연을 맺은 사람들, 학생으로든 나 같은 사람으로든,
물꼬가 쉼의 공간, 친정 같은 느낌을 줘요.
그런 공간으로서 물꼬는 충분한 가치가 있고,
샘(선진샘 건너다보며), 나 같은 사람이 소중하게 여길 필요가 있겠다...”
여윤정샘이 빈들모임 끝나고 머물며 했던 말에 기대서도
지난 3개월의 자평이 이어졌습니다.
“물꼬에 오면 마음의 준비가 된대요.
왠지 스스로를 정리하고 정화하게 될 것 같은 마음,
물꼬를 보며 잘 지내야 될 것 같은 마음이 생긴다고.
물꼬라는 것 자체가 마음을 가다듬고 오게 된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마치 절에 가면 절마당에서 마음 가다듬게 되는 것처럼
일주문을 들어서고 대웅전 앞으로 가는 그런 마음을 준비하게 하는 곳,
그때 윤정샘이 자신이 이 아이와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러 왔는데,
(물꼬 식구들이) 자기 위치에서 열심히 사는 모습,
현재 위치에서 건강하게 사는 것 보며
현재 던져진 고민을 회피하려고 하는,
떠나서 그 고민을 해결하려고 하는 자신이 힘을 얻어서 간다고...
미선샘 역시 그랬다는 걸까요.
“물꼬의 힘은 밖으로는 옥샘이지만 안으로는 삼촌이야!”
묵묵히 학교 바라지를 하는 소사아저씨의 존재,
맞습니다.
그런 이들이 정말 물꼬를 지켜내는 이들이지요.
“잘 몰라도 신뢰를 갖는 것, 그런 게 있더라구요.
나를 지지해주는 곳이다, 한 달쯤 지났을 때...”
이런 걸 상생관계라 하던가요.
“주마다 서울 가며 처음엔 서울 가는 게 기다려지는 거야,
여기가 싫어서가 아니라.
서울 살았으니까 서울 가고 싶은 거지.
그런데 어느 순간 ‘서울 가야 돼?’ 싶더라구요.”
그렇게 머물기로 약속했던 세 달이 흘렀고,
그의 머무름은 3개월을 더하게 되었습니다.
해마다 25일경이면 시작되는 장마,
이불 빨래도 끝내야 하고 악기들도 다 청소해야지,
밭은 어디를 어떻게 거두고 다시 뿌릴지도 챙겼답니다.

몇 해를 쉬어가는 느낌으로
상설학교를 활성화하지 않고 성찰하며 지내자 공지했고,
그렇게 세 해째에 이르렀습니다.
마침내 2009학년도 올해 조금씩 힘이 끌어올려지고 있었고,
물꼬의 정체성 역시 가닥을 잡아가고 있었는데
무엇보다 여유와 강단이 생겼는데,
그 힘의 뒤에 바로 미선샘이 배경으로 있었단 걸
그도 알까요?
그 나이의 여러 친구들을 보았는데,
나이는 저마다 어찌 그리 다른지요.
만남이 서로를 상승시켜주면 좋다마다요.
고마운 인연입니다.
다시 이어갈 석 달도 그리 서로를 살리는 길이길 서원합니다.

오늘 작은 백일장이 있었는데,
혼자 가기 멋쩍다고 잠시 짬을 좀 내달란 친구가 있었습니다.
원고지, 거기 글을 써본 게 언제이던가요.
잠시 나무 그늘 그의 곁에 앉았다가
나도 원고지 좀 줘 봐, 했습니다.
글을 쓰며 마음이 볕 좋은 봄이었지요.
문학의 바다에 수장되지 않은 청소년기가 어디 있을려나요.
저 역시 그 예술의 바다에 뛰어들고팠던 젊은 날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는 게 시고 동화이려니 하지만.
기분 좋은 글쓰기였답니다.
그리고 거기서 사람 하나 만났습니다.
물꼬가 깊은 갈등의 소용돌이에 있었던 그 해,
바로 그 당사자 가운데 하나였지요.
담담합디다.
시간은 정말 힘이 센갑더이다.
“언제 뵙겠구나 싶더니...”
“살다 보면 보지...”
시간은 그리 흐르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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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6.2.불날. 가랑비. <서예에서 서툰 점>
오늘은 서예를 하고 나서 선생님한테 서툰 점을 듣고, 내가 생각한 것을 생각해보니 이런 점 같다.
첫째, 기초는 튼튼해서 잘 쓰는데 조합이 잘 안 된다.
둘째, 글씨가 너무 두껍거나 얇아진다.
셋째, 조그만 획에서 처음 붓을 내려놓는 데가 마무리가 안 된다.
넷째, ‘ㄴ’에서 처음 부분에 오리머리 등이 안 된다.
이런 것 등이다. 이런 걸 잘 기억해야지 나중에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류옥하다 / 열두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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