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6. 6.흙날. 맑음

조회 수 1048 추천 수 0 2009.06.13 23:43:00

2009. 6. 6.흙날. 맑음


“이거 엔진오일 갈았어?”
“아니.”
“핸들은 바로 잡았어?”
“아니.”
“언제 (오일) 갈 거야? 우리 하자.
핸들도 잡고. 사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시간은 갈수록 없어.”
차에 오르며 아이가 엄마한테 던진 말들입니다.
어른이 헐렁하면 아이들이 그 삶을 챙긴다지요.

주말에는 늘 사람들 발이 잦은 이곳이지요.
기락샘 들어오는 편에
모델 일을 하는 사촌도 들어왔습니다.
재작년 가을에 포도수확을 도와주러 오고 한참만입니다.
그래도 하는 일로 조언을 구하며 전화 잦아
며칠 전에 다녀간 듯하지요.
마당가에 널려있던 베어낸 나무들이
오늘 남정네들의 숙제였습니다.
다들 자르고 엮어 아궁이 있는 간장집 뒤란에 쌓았지요.

저장하고 있던 마지막 고구마를 엊그제 꺼냈습니다.
빈들모임 이틀째는 달골 창고동 난로에 불 지피고
고구마를 구워내지요.
가을 올 때까진 불 지필 일 없으니
고구마도 치워야겠다 했습니다.
미선샘은 해남의 고정희선생추모제에 나들이 가기 전
그것을 삶아두었네요.
밤, 오랜만에 고구마쿠키를 만들었습니다.
처음 해보는 것들은
혹 실패할까 하여 요리법이 시킨 대로 하지만
하다보면 꼭 그것대로 하지 않아도 뭐가 된다는 걸 알게 되고,
제게 좋은 것은 더 넣고 뺄만한 것을 빼기도 하고,
없는 걸 굳이 무리해서 꼭 사서 넣어야 하는 건 아니란 것도 알고,
그렇게 산골 쿠키도 만들어졌지요.
설탕 대신 꿀을 넣고
우유 대신 깡통으로 있던 코코넛우유를 섞고
버터도 넣으라는 양보다 훨 줄이고...
몇 판이나 됩니다.
오랜만에 과자 풍성하네요.
낼 나가는 이들도 싸주고
들어오는 식구들도 나눠먹어야겠다 합니다.

간장집을 지나다 큰 그림자에 화들짝 놀랐습니다.
해바라기!
아마 마을에서 가장 높게 자란 그들일 것입니다.
아이는 해마다 해바라기를 키우고
거기서 씨를 받아내고 종자를 보관했다가
이듬해 다시 뿌리고 있지요.
“정성을 봐서도 크겠다.”
아이가 해바라기한테 하는 양을 보며
앞집 할머니 꼭 한 마디 건네십니다.
논에 넣은 우렁이도 알을 낳기 시작했습니다.
뽀글뽀글 오디 같은 선홍빛 알들이
물꼬의 망에 먼저 보이기 시작했답니다.
산골 여름날이 그리 흐르고 있지요.

새벽, 먼 산에 홀로 들었더랬습니다.
보내지 못하는 글월들처럼,
그리워 숨이 턱턱 막히고 생각만으로도 가슴 쿵쾅거려
크게 쉼 호흡을 해야 하는 날들을 산에 뿌리러
그리 달려갔지요.
산에 살아도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고 싶지요.
민주지산 산지기 하겠다고 입버릇이던 시간엔
아예 산지기라 불리기도 했더랬습니다.
산이라면, 그냥 좋은 겁니다.
시험이란 걸 볼 때도
정작 가장 어려웠던 문제는 시험지에서가 아니라
순간순간 끼어드는 그리움입디다.
봐야 할 책에서 자꾸 눈 떼고
산이 보낸 문자들을 보고 또 보는 거지요.
그런데, 뜻밖의 소식으로 그만 철퍼덕 앉아버렸습니다.
“지금은 민중 주체의 시대다.
4.19와 6월 민중항쟁을 보라.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로잡을 주체가 없다.
제2의 6월 민중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
그리 유서 남기고 떠난 범민련 전 의장 강희남 선생의 소식!
무슨 말을 한답니까.
언젠가 가까이 사는 어르신 한 분이 보내주신 양주,
딱 걸렸습니다, 오늘.

“한국사회에서 성공하려면 두 가지가 있어야 해요.”
애가 그랬답니다.
식구들이 밥상 앞에서 아이랑 나눈 이야기를
오늘 밥상 앞에서 전해주었지요.
“뭐?”
식구들이 물었다 합니다.
“학벌과 빽!”
어찌하여 아이 입에서도 이런 말을 듣게 되었는지요.
아, 한국사회...
그리고 빽 뒷 얘기,
“너는 있어?”
“있어요.”
“누구?”
“엄마!”
맞지요, 아이들에게야 에미가 최고의 빽이지요.
그래서 에미(애비도 아니고) 없는 애새끼(애도 아니고)가 젤 불쌍한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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