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6.10.물날. 비 개고도 흐린 하늘

조회 수 969 추천 수 0 2009.06.22 16:31:00

2009. 6.10.물날. 비 개고도 흐린 하늘


마당 토끼풀 잎에 송글거리는 빗방울들이
곱기도 한 아침입니다.
올 듯 말 듯하며 내린 가랑비였더랍니다.
운동장 구석 독일 호박덩굴 잘 오르라고 줄도 쳐두고,
고구마밭에 풀도 좀 뽑았네요.

아침 수련에 엊저녁에 온 벗도 함께 합니다.
사람들이 와서 물꼬에서 나날을 사는 대로
그 흐름을 타고 지내다 가는 것, 퍽 좋습니다.
아침을 먹고 쌓인 일들을 들여다봐야지 하는데,
그가 말합니다.
“가서 일해요, 설거지랑 뒷정리 내가 할게.”
이곳 살림에 익숙지도 않을 텐데
덜컥 맡겨놓을 수 있어서도 좋았습니다.
나 하나 살아내는 일에
참 많은 이들이 공을 들여 준다 싶어 달콤했지요.
식구들이 다들 나가 있어 움직일 일 많았는데,
아이랑 편하게 공부도 하고
숙제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그리고 어느새 따와서 내준 앵두와 차와 비스킷들...
호사를 누린 아침이었습니다.
“(이곳에서의 삶) 딱 내가 잘할 수 있는데...”
아이들이 걸려 대전으로 임용을 보겠다던 말이
내내 고개 빼고 밖이 궁금타하던 해바라기 같아
안타까움 한참이었지요.
누구나 자기 십자가가 있다던가요.
있는 자리에서 그가 정녕 복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마음결을 다듬고 가면
그게 또 고마워 이곳을 오래 지켜야지 하는 다짐이 됩니다.
다녀가서 고맙다 하고
와줘서 고맙다 하지요.
‘앞치마를 두르고 있어도 김치 냄새 대신 묵향이 날 것 같은
옥샘과 함께 한 몇 시간의 영상들이 너무 예뻐서
생각의 타래를 마냥 따라가니 글이 자꾸 길어지네요.
오래 두고 곱게 간직할 예쁜 시간이었어요.’
그가 남기고 간 글을 되풀이 읽었답니다.

읍내 나가는 길에
교사임용고시 준비하는 친구 하나에게
열무김치를 실어 보냅니다.
우리 밭에서 길러 우리 손으로 담은 김치,
아무렴 힘이 되지 싶지요.
사먹는 밥 그건 밥이 아니라 상품이다,
라면을 끓여먹어도 집에서 먹어야 살로 간다,
‘무식한 울엄마’ 맨날 하시던 말씀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무수한 젊음들을
그 끝없는 시험을 바다에 허우적대게 해야 하는지,
답답한 노릇이지요.
지난 3월 23일,
교사가 되려는 이들에게 썼던 글 한 부분도
바로 그 마음이었던 게지요.
‘...그런데, 교실 안에서의 교사가 전부일까? 우리 아이들은 교실 밖에서도 살아간다. 사회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이 어디 있던가, 설혹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대학을 다니던 시절 내게 세상과 맞서도록 해준 아이들이 있었다. 난곡과 시흥동 골짝 달동네에서 만났던 아이들이 그들을 둘러싼 세상을 내게 고민하게도 했지만 나를 더욱 다잡게 한 아이가 있었다.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에 살던 그 아이, 조금 더뎠고, 그럴 수 없이 선했던 아이, 단지 그런 까닭들로 날마다 다른 아이들한테 상처받던 아이, 그런 아이를 지켜줄 수 없는, 혹은 행복하게 지내도록 할 수 없는 세상이라면 싸워야 옳다고 믿었고, 그리했다.
교실 혁명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세상혁명도 같이 해야 하지 않을까. 숱한 젊은이들이 임용고시라는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게 정녕 바람직한가를 나는 자주 묻는다. 국가적 아니 우주적으로도 얼마나 큰 에너지 낭비인지 서글퍼지고는 한다. 그것도 대학공부만으로는 어림도 없고 인터넷강의에다 계절학기에다 학원으로 대학등록금에 미칠 만큼 부가비용이 든다 한다. 그렇다고 예년에 견주어 교사의 질이 그만큼 월등하다고 할 수 있느냐 하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우리가 교사일 수 있는 곳은 널려있다. 교사가 있는 곳은 어디이건 ‘교실’이다. 진정한 교사라면 이렇게 자기 내적인 것만이 아니라 외적 삶에 대해서도 귀 기울이며 아이들이 있는 어떤 곳이든 뛰어들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아이는 또 딸기를 한 양푼 따놓았습니다.
얼른 같이 잼을 만들지요.
식구들이 어찌나 잘들 먹는지...
밤 열시, 번개 막 치더니 억수비내렸습니다.
부랴부랴 본관에 열려있던 창문들을 닫고
바삐 달골로 향했지요.
내일은 또 내일 일이 버티고 있습니다.
요 한 주가 한두 시간을 잘 수 있으려면 다행이려나요.
한 해 서너 차례는 있는 일이지요.
그런데 이런 때 놀아도 주어야 합니다.
책도 보고 노래도 부르고 영화도 좀 들여다보고...
‘회피’이겠지요,
시험 때면 꼭 딴 짓 하고 싶고 다른 게 눈에 보이고
그래서 괜히 청소하고 옷장 정리하는 그런 시간들처럼.
그러다 일 좀 하려면 졸음이 쏟아지고...
그래도 제 방식은 그렇네요,
지독하게 바쁠 땐
외려 노는 것도 같이 해줘야 숨통이 트이더란 말이지요.
잘 놀고 자정이 넘어서야 책상에 앉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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