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걸어온다 싶더니 밤, 툭 떨어진 기온.

한때 김치공장의 저온냉장고였다가

이제는 한동안 재건축을 하는 곳의 목공실,

날은 쌀쌀하여 콧물이 줄줄.

목공 이틀째, 거실 테이블을 만들고 있다.

한편, 9일 ‘첫걸음 례’ 전까지 2015학년도를 짜고 있노니.


아이 하나 좌절 중.

새 학기가 새로 시작하는 지점이 될 수 있을까 했더니

또 별다르지 않은(경쟁으로 몰아부치는?) 해를 살아갈 일이 아이에게 외려 더한 두려움이 되고 있다.

청소년기를 지나는 일이 이리 고통스런 날들이게 해서야.

“내 아희야, 그래, 절망하고 또 절망하라!

 그리하여 바닥까지 이르려무나.

 허공에서 어찌 올라올 힘이 있겠느냐.

 바닥까지 가야 딛고 올라올 수 있을 것.

 바닥이란 곧 발을 바로 디딜 수 있는 곳 아니겠느뇨.

 ‘바다에 가 보았더니 그곳은 이미 바다가 아니었다’라지 않더냐.

 고통스런 날들이 실상 그 바닥에 이르면 별 게 없다는 걸 안다

  (물론 지나고서야 할 수 있는 말이다만. 아니, 지나야 안다. 지나면 아는 줄 알면 된다).

  새해 아침이 지난해의 마지막 날 아침, 여느 아침과 다르지 않는 것 마냥.

  허나 거기서 만나는 별 대수로울 것도 없을 것 같은 작은 깨달음 하나가

  바로 그 바닥에서 너를 밀어 올려주는 뜀틀이 되리니!”


그리고 아일랜드 골웨이 앞바다의 애런제도 이야기를 옮겨주다.

“너럭바위를 채소밭이나 양 방목장으로 만드는 일은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리는 시지포스의 형벌을 방불케 한다. 그 일이 언제 시작되었을까? 연대를 정확히 추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1930년대에도 여전히 그 방법을 사용해서 헐벗은 암석 평원을 경작지로 만들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그 사업이 시작된 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아일랜드에서 아직 야성적인 기운과 무모한 활력이 넘쳐나던 중세 초기에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애런의 섬사람들은 쇠망치와 쐐기로 바위를 깨뜨려서 나란한 고랑들을 만들었다. 이 고랑들은 깊었을 뿐만 아니라 너비가 50센티미터에 달한 만큼 넓었다.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돌조각들을 가지고는 그 돌밭의 경계를 짓는 나지막한 담을 쌓았다-그들은 대개 돌밭의 주인이 아니라 임차인일 뿐이었다. 그다음에는 고운 모래와 바닷말을 섞어서 고랑을 채웠다. 이 바닷말은 섬의 남녀들이 썰물 때 잘라 내서 골풀로 만든 채롱에 담아 바닷가에서 암석 평원까지 등에 지고 날라 온 것이었다. 바닷말이 썩어서 고운 모래와 잘 섞이면 여기에 감자나 호밀을 심었다. 호밀의 줄기는 나중에 초가지붕의 이엉을 만드는 데 쓰였다. 한두 해가 지난 뒤에는 고랑들 사이에 있는 돌의 모서리를 깨뜨려 평평하게 만들고 그 조각들로 담을 높이거나 보강했다. 그들은 돌담을 둘러친 돌밭에서 모래와 바닷말의 혼합물이 깔리는 부분을 계속 넓혀 나갔다. 세월이 도움을 받아가면서 그런 작업을 계속하다보면 결국 자그마한 땅이나마 진짜 경작지를 얻게 되는 것이었다.”

(재 인용, (<애런과 다른 곳에 관한 일기>파요 출판사, 1990>)


사는 일이 그러하다.

그러나 산다.

그것이야말로 삶이다.

기쁜 어느 순간이 그것을 밀고 가 주리니.

소소한 기쁨에 한껏 기뻐하기!

아무쪼록, 계속, 우리 생의 지평을 그렇게 야금야금 넓혀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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