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28.흙날. 풀리는 날씨

조회 수 1119 추천 수 0 2009.04.08 01:20:00

2009. 3.28.흙날. 풀리는 날씨


새들이 어찌나 수선스러운지요.
꽃샘추위가 보따리를 쌌지요.
가던 걸음에 다시 뒤돌아 봇짐을 풀지 모르나
봄날 성큼입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대학교정을 거닐고 있겠습니다.
시대가 달라졌다지만
여전히 우리가 기대를 걸 그들이지요.
오늘 한 대학 학생들에게 책 한 권 권했습니다.
오늘 이 땅을 살아간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 한 자락 던져주는 책이었지요.
시대가 어찌 어찌 변하였다 하고
세대가 또한 어찌 어찌 달라졌다 하지만
책이 하는 순기능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역시 우리들에게 삶의 거룩한 안내자가 되어주는 것 아닐지요.
교정을 거니는 젊은이들이
진리를 향해 즐겁게 항해하고 사유하고 움직여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복무하기를 정녕 바랍니다.

오전을 쉬엄쉬엄 보내고
오후에는 밑반찬을 만듭니다.
사람들을 위해 먹을거리를 장만하는 일은
어떤 것보다 복된 일이다 싶습니다.
크게 별 일이 있지 않는 한
우리는 끝 날까지 지닌 몸뚱아리를 쓰고 갈 것이므로
그 몸을 살리는 일이 얼마나 엄중한 것이겠는지요.
한 편 마늘밭 언덕이며 표고장 뒤란 잡초도 정리합니다.

시골 어머니랑 통화할 일이 있었습니다.
무식한 울어머니, 로 시작하는 울엄마 말입니다.
얼마나 살면 어르신(누구랄 것 없이)들의 지혜를 지니고 살까,
맞닥뜨리는 상황마다 그립게 하지요.
친구 분들과 어느 절에 다녀오셨다는 얘길 듣는데
십여 년 전 어머니랑 함께 간 절이 생각났습니다.
초파일이었던가, 절집의 무슨 날이었더랬는데,
대책 없는 기복신앙을 가진 숱한 인파에 놀랬고
얼토당토않게 보이는 여러 형식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으며
어머니도 그 줄에 서 있다는 게 답체 못마땅했고
시주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는 등의 위치며
심지어는 나눠주는 음식줄까지 그 시주서열대로인 게
아주 아주 마뜩찮았던 날이었습니다.
어쩌다 짬을 내서 간 집에서 쉬었으면 더 좋았을 걸
묻혀온 피로로 짜증까지 배여 있어
그예 돌아와서까지 어머니께 핀잔을 드렸지요.
그럴 때면 영락없이 단 한 마디로 우리를 평정하시고는 하는데
(예를 들면, “니 만큼 안 똑똑한 사람이 어딨뇨?”라든가),
아니나 다를까 그날도 변함없는 ‘무식한 울엄마’,
“야야, 수십 년을 다녀도 내사 보지도 못한 거를
니는야 하루 새에 별 걸 다 봤다.
나는 부처도 못다 보다 왔다.”
뭐 깨갱이었지요.
여전히 ‘어른이 있는 시대’를 살고 있어서 고맙고 감사합니다.
우리도 그런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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