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 1.불날. 맑음

조회 수 297 추천 수 0 2022.11.28 23:29:16


아침 7, 아침뜨락으로 제습이 밥을 주러 갔다.

대개 8시까지 같이 산책하고 논다.

! 제습이가 없다.

땅에 늘어뜨린 철사줄에 빈 캐러비너만 남겨져 있다.

어느 산짐승을 보고 마구 힘을 쓰는 한 순간 돌이건 나무조각에건 비너가 열렸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목에 걸린 쇠줄을 단 채 다닌다는 건데.

제습아, 제습아!”

대답 없다.

맞은 편 동쪽 골짝쯤에서, 아니면 남쪽 골짝인가, 개가 짖는다.

제습이 목소리 같다.

제습아, 제습아!”

다시 대답 없다.

아침뜨락 머리까지 가서도 불러보지만 없다.

혹 학교로 내려간 건 아닐까?

그렇다면 학교아저씨가 전화를 했을 텐데.

한참을 기다리다 돌아내려온다.


오전에는 마을 한 댁의 감나무밭에 가기로 했다.

약속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더는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다.

어느 댁에선가 묶어놓고 마을방송을 할 수도 있으리.

우선은 그리 믿어보기로 한다.

집으로 들어와 간단한 요기를 하고 나서기로 한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

제습이가 거기 나를 기다리고 있다.

주인이 뭐라고, 내가 뭐라고, , 그는 여기 있는가.

몸은 흙투성이가 되고 눈가에 피가 묻어있다.

숲을 헤맨 모양이다. 누구랑 한바탕 싸웠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티피에 데려다주고 묶어준 뒤 한참을 쓰다듬어주었다.

고맙고, 안쓰럽고, 대견하고...

저녁에 보자고 잘 일러주고 나섰다.

 

감나무에 올랐다.

어릴 적 외가의 감나무는 좋은 놀이터였다.

툭하면 가지 위에 걸터앉았더랬다.

하도 올라가 살다시피 하니

어느 날 할아버지가 거기 집(이라고 하지만 널판 두어 개 걸쳐준)을 만들어주셨고,

밥을 올려주기도 하셨다.

가지 끝의 익은 감을 따겠다고 팔을 뻗치다 그만 그 가지 툭 부러져

나무 아래 커다란 바위로 볼을 스치며 떨어진 일도 있었다.

달려와 아까징끼(빨간약; 머큐로크롬)을 벌겋게 발라주셨던 할아버지.

상처가 아물고도 오랫동안 볕 아래서 얼굴에 얼룩이 있었던 걸 기억한다.

40년 전 이 세상 등진 할아버지...

10년도 넘어된 10월의 몽당계자야말로 잊힐 수 없는 감따기다.

이제는 대학도 졸업한 우리 김현진이, 
감나무에 올랐다가 떨어져 퍽 엎어졌는데
나뭇가지가 눈을 피해 눈꺼풀 위 아래만 상처를 주었던 기적!

그리고 오늘 감나무에 올랐네.

나뭇가지 사이에서 자세를 잘 잡고 감을 따 내리고

가위로 꼭지를 따고,

깨진 것과 온전한 것을 가리고, 큰 것과 작은 것을 가려 컨테이너에 담았다.

깎아 곶감이 될 것이다.

 

기술교육이 있는 날.

현장에 일이 많아 농자재 개수를 세거나 짐을 쌓거나 옮기거나.

잠시 용접.

, 강연으로 지난 한 주 빠졌다고

나는 다시 겁을 내고 있었다.

지난 시간만 해도 제법 각관을 이어 붙였건만.

결국 몸에 잔뜩 힘만 들어가고, 오늘은 접었다.

현장 사람들이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만두를 사와서 나눠먹었다.

한 도시는 그 도시가 가진 먹을거리로도 기억된다.

 

한 어른이 물었다,

엊그제 일어난 이태원 참사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지.

주최 측이 없는 큰 모임인 경우 지자체가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그게 행정이 하는 일이다.

간 게 잘못이란다.

이거야말로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그가 말한다.

순간관람객이 1천명 이상일 시 정부와 지자체가 안전대책을 수립해야 한다지 않나.

정치부재 정치책임이다.

일방통행로만 만들었어도!

곧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간다는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삼켰다.

당신이 가족여행을 갔는데 사고가 났다. 그걸 여행을 간 당신 탓이라고 해야 하는가!

 

2022학년도 겨울 계절학교 미리안내.

기후위기의 엄중한 날들에도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온 자연의 이치가 고맙다.

올 겨울 일정은

현재 쓰고 있는 학교 터를 지자체에서 고치거나 새로 짓는 계획이 있어

낡은 학교에서 하는 마지막 계자가 될 듯하다고.

11월 말 자세한 소식 올리겠다고

11월 주요흐름도 안내하고;

, 설악산행 연중 프로젝트 6차 34온실돔(명상방) 짓기, 제주 강연,

김장, 메주, 고추장 담기기술교육 따위들.

 

늦은 밤, 메일을 쓴다.

여의도정치가 얼마나 분주한지 헤아리면서도 오늘은 이곳 소식을 전하다.

물꼬 일을 지원해주고 계시는 어르신 한 분.

오늘은 외부강의를 다녀왔더니

사전 연락도 없이(아직은 물꼬가 임대해서 쓰고 있는 공간인데도)

오후 두어 시간 열 정도의 사람들이 우르르 다녀갔노라고.

모르는 것도 아니었는데 계약 종료가 활자화되고

바로 이튿날 다른 기관에서 사람들이 몰려 다녀가고 하니 내몰린 느낌이 좀 있었다고.

"내가 우리 형한테 다 일러줄 거야!

 니네 인제 혼날 줄 알아!"

그런 심정이랄까.

물꼬의 뜻을 전하고 이후 행보에 대해 힘을 실어주십사 도움을 청해 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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