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5.나무날. 맑음

조회 수 1060 추천 수 0 2009.01.29 20:20:00

2009. 1.15.나무날. 맑음


겨울 가뭄이 깊습니다.
마을마다 물이 나오지 않아 어쩐다는 소식이
군내 끊이지 않아왔습니다.
우리 마을도 물이 달렸지요.
한 이틀 두어 시간씩 물이 나오지 않더니
급기야 오늘은 툭 끊어졌습니다.
동쪽 개울도 말라붙은 지 오래이지요.
어느 겨울 계자에서 아이들이 주욱 한 줄로 서서
그 물을 길어다 밥을 지은 적이 있었는데...
계자가 아니어 참말 다행입니다.
그나마 학교는 뒤란의 우물물이라도 있으니
허드렛물은 있습니다.
내일은 우물을 칠 양입니다.
먹는 물은
정히 안 되면 달골물을 끌고 내려올 수도 있을 테지요.
빈그릇들을 개수대에 그대로 쌓아둡니다.
내일은 나올 수 있으려나...

관악산 아래서 시가 왔습니다.
서정춘이란 함자보다 <죽편>이란 시집으로
그리고 ‘봄, 파르티잔’이란 시 제목으로
더 알려진 당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몇 개월 동안 쓰지 못했던 시를 오늘 썼노라며
반가이 보내주신 것입니다.
허공이 있어 종이 울린다던가요.
당신이 써놓고 울먹이셨다는 시이더니
제겐 퍼질러 앉아 울게 하였습니다.
당신이 아직 발표하지 않은 것이어
저 역시 옮길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마음을 두드리는 시, 혹은 위안과 위로가 되고 싶은 글을 써야겠다던
이십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십대 넘어온 지도 꽤 되어버렸네요.
수년 동안 쓰지 못했던 시도
마음 간절하면 써지려는지요...

계자 끝나자마자 나들이가 있었고
돌아와서는 동네 잔치가 하루 있었고
비로소 오늘, 이제 계자 뒷정리입니다.
게시판 너덜거리는 것들을 붙이고
낙서판 대신 칠판을 덧입히고
사람들이 벗어둔 옷방의 빨래들을 돌리고
복도를 쓸고 가마솥방 먼지를 텁니다.
쉬엄쉬엄 쉬어가며 합니다.

전화가 왔습니다.
과천에서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이가
구체적으로 귀농을 꿈꾸며 여러 가지를 물어왔습니다.
굳이 이곳까지 방문할 것 없다며
변산의 한 공동체와 지리산 아래의 한 마을을 소개합니다.
찾는 이들에게 더 도움이 될 길을 안내하는 것도
물꼬의 몫이다 싶습니다.
도시철도공사에서 일을 하는
마흔 넘어 된 이의 전화도 있었습니다.
아이 셋과 함께 물꼬로 이사를 꿈꾸고 있었지요.
그이에게도 같은 곳들을 안내합니다.
하지만 희망퇴직을 신청하고 바로 움직이려는 그에겐
방문을 하십사 합니다.
그가 간곡하여서도 그렇지만
물꼬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보고 가는 게
그의 길을 빨리 잡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작은 '전율'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목수샘이 자리를 또 오래 비울 참이지요.
오늘 서울길에 올랐습니다.
여태도 자주 집 짓는 현장으로 다녔지만
이번 참엔 다른 일로 서울에 머물 일이 생겼는데
얼마나 걸릴지도 모를 일랍니다.
한 사람이 빈자리로 또래의 또 다른 이가 잠시 머물겠다는 연락이
신비하여도 허락을 한 방문이었지요.
늘 어찌어찌 굴러가는 물꼬의 살이가 신기합니다.
사실은 세상일이 다 그러하지요.
누군가 가고 누군가 옵니다.
삶과 죽음들이 교차하며 세상이 이어집니다.
그러며 꽃 피고 지고 달 차고 지고...
좋은 연들이 또 해를 따라 이어질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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