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2.나무날. 흐림

조회 수 1061 추천 수 0 2009.02.01 17:41:00

2009. 1.22.나무날. 흐림


늘 생각했던 대로 되지 않는 게 또 우리 사는 양입니다.
계획은 이러했지요.
첫날은 방문하고 있는 용찬샘이 경운기를 배우고
그 날 오후와 이튿날 오전 오후를 익히면
사흘째는 경운기를 운전하여 나무를 실어온다!
크게 어려운 길이 아니니 가능하잖을까 했던 것입니다.
산골살림에 트럭이 없은 지가 오래이고
그나마 경운기가 있으나 마침 그걸 쓰는 이가 서울 가고 없었지요.
대해리 들머리 산판한 곳에서 자잘한 가지들을
방문하고 있는 용찬샘이랑 식구들이 모아놓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어제는 경운기를 아예 움직이질 못했고
오전에 바삐 경유를 채워 움직이게 해서는
윤상언 할아버지를 다시 뫼셔 와 사용법을 배웠습니다.
“이제 내려가 보겠습니다.”
운동장에서 몇 번 연습을 한 뒤
경운기가 떠났네요.
모레 돌아가기로 했던 용찬샘이 내일 떠나게도 되면서
결국 계획했던 사흘이 달랑 하루가 되고
계신 동안 보탬이 되자는 마음과
일이 끝나주었으면 하는 식구의 마음이 더해져
좀 이르다 싶게 강행한 일정이 된 것이지요.
“하다가 뒤에 타니까...”
이론에는 강하다(?)는 아이를 태우고
소사아저씨가 앞서 걸으며 이리 저리 살피고 갔습니다.

탈탈탈,
밥 때가 되었는데도 소식 없던 경운기가
늦은 점심에 드디어 학교 마당에 나타났습니다.
“애쓰셨어요.”
“그런데...”
나무를 실어오던 경운기가 마주 오는 차 앞에 당황했다 합니다.
차 운전도 하지 않는 데다가 자전거를 오래 탔던 용찬샘은
급한 마음에 자전거 브레이크를 잡듯 손잡이를 바짝 잡았더라나요.
그만 방향을 튼 앞머리가 그 차 문을 조금 밀었고
실려 있던 나뭇가지가 차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긴 줄로 수를 놓았다 합니다.
오던 차의 바로 뒤에 비상주차대도 있었다 하지만
버젓이 두 차가 오갈 수 있는 길이었으니
상대차도 멈추기만 하면 되리라 생각했겠지요.

마을 앞길이 농로여 일반차량과 농기계가 부딪혔다면
그 피해비율이 기본 몇 대 몇 이라고도 하고
차 접촉사고라는 것이 전적으로 어느 한 쪽 과실이라고는 없다지만
우리가 잘못한 건 틀림없습니다.
“할부금 세 번 밖에 붓지 않은 쌔 찬데...”
가장 큰 문제는 새 차라는 것이었습니다.
웬만하면 읍내 공업사에서 처리했으면 싶지만
주인 마음은 또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 색깔 뺄려면 어려운데...”
그래서 상대차는 대전의 직영 공업사에 의뢰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차에 대한 태도에 따라서도 해결법이 다를 수 있겠지요.
운행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가볍게 여기는 이도 있을 수 있고
차라는 물건이 기동하는 동력기를 넘어서는 의미를 지닐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용찬샘은 당신 과실이라며
물꼬 통장으로 당장 큰 돈을 보내두었는데
물꼬로선 물꼬 일을 하다 일어난 일어니 그게 또 그렇지가 않지요.
결국 반씩 책임을 지는 게 어떠냐 결론짓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이 일을 통해 하는 두어 가지 단상이 있었지요.
종교인에 대한 선입견 같은 거요,
그의 물욕은 우리랑 달라야 한다 뭐 그런.
가령 공동체라고 하면
그 곳에 대해 흔히 사람들이 갖는 기대치가 있듯이 말입니다.
차주가 종교인이었는데,
은근히 저 역시도 그런 선입견을 가졌지 않나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그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읍내에서 문제없이 백 얼마면 된다는 것을
굳이 수 십 만원을 더 주고 대전까지 맡겨야 하냐,
종교인의 물욕이 세군,
우리는 동네 사람이라고 얼굴 붉히지 않을 방법을 찾는데 말이야,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제 물건 귀한 거야 누구라고 다를까요.

또 하나는 세상일에 대한 어설픔입니다.
그저 잘못하였다 하여 예, 알겠습니다 라고만 할 건 아니라는 겁니다.
그저 몸 둘 바를 모르고 그렇게 하십시오 했는데,
좀 더 알아봅시다 할 수도 있었겠지요.
산골에서 차 없이 꼼짝 못하겠다는 사정이 먼저 안타까웠는데
당장 차를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던 것을...
물론 경찰하는 친구며 보험사며 두루 알아보기야 할 테지만
이미 전적으로 현금결제를 하기로 한 것은
어리석었던 일임에 틀림없겠지요.
(소식을 들은 경찰 일 하는 이는 사고처리를 하라고도 하고
보험 일하는 이는
자차가 들어있다면 보험할증을 물고
거기에 얼마를 더 보태서 처리하는 방식을 제안하라고도 합니다.)

“어휴, 그 돈이면 겨울 다 지날 나무를 사고도 남을 텐데...”
멀리서 소식을 들은 식구는 안타까워했지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 안 다쳐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 차가 더 크게 망가지지 않아 얼마나 다행한지요.
시골에서 살겠다는 이는 경운기를 길에서 끄는 공부를 했고
물꼬는 일하는 방식 하나 잘 배웠을 테고...

종찬샘은 무거운 마음을 안고 서울로 돌아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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