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10.불날. 흐리고 바람 많은

조회 수 1041 추천 수 0 2009.02.24 22:36:00

2009. 2.10.불날. 흐리고 바람 많은


읍내 한 병원의 통증치료과에 들릴 일이 있었지요.
거기 물리치료실을 들어갔는데
이 골짝 저 골짝에서 어르신들이
많이들 오시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 맡은 환자 때문에 들린 담당의사는
미리 예약한 환자 아니어도 찾으시면 가서 치료를 해주고
그 곁에서 또 누가 나도 해줘 하면 다가가고
게다 나가는 어르신들한테
따로 계산 더할 것 없이 그냥 가셔요 하십니다.
보기 좋았지요.
시골에서 하는 의사노릇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어디 의사만 그렇겠는지요,
그렇게 시골서는 시골 사는 법들이 있을 텝니다.

점심밥을 먹다가
머잖은 곳 암자의 스님 한 분이랑 통화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가 버럭버럭 언성을 높이고 있었지요,
물론 전후사정이야 있다마다요.
어쨌든 급기야 그리 물었습니다.
“스님, 스님 맞으셔요?”
그제야 스님도 주춤하셨습니다.
하기야 스님인들 왜 노여울 일이 없고
또 화를 낸들 또 무에 그리 큰 일일지요.
다 그럴만한 저간의 사정이 있을 테지요.
오죽 마음이 강퍅하면 그러하겠는지요.
누군들 화를 밖으로 내는 일이 쉬울 것이며,
그런 자신을 누구보다 힘들게 보는 게 스스로 아닐는지요.
그러면서 2005-6학년도의 여러 날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마구 화가 나던.
그래, 사람들에게 그런 날들이 있을 수 있지 않겠는지요.
스님도 그렇겠습니다.
그냥 안쓰러워졌습니다.
스님의 이 날들도 잘 흘러가길 바랍니다.

에너지전환운동을 하신다는
시민발전의 박승옥님이 방문하셨습니다.
영동에서 터전을 알아보고 계신중이시란 소식을
달포 전부터 들어오던 터입니다.
황간의 농민시인 박운식샘과 같이 등장하셨지요.
박샘의 수술 소식을 듣고 문안도 못하고 있던 차에
앉아서 맞았답니다.
그 좋아하는 술을 한 잔도 못하셨습니다.
급히 저녁밥상을 차렸더랬지요.
“대보름 나물을 서울에서 못 먹는 것도 아닌데
또 이런데서 먹어야 꼭 맛이 나요.”
별 맛도 없이 밋밋한 음식을 맛나게들 드셨습니다.
밥을 나누는 일보다 더한 고마운 일이 어디 있으려구요.
멀리서 좋은 벗(?)들이 오고,
같이 밥상 앞에 앉고
다, 다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며칠 머물던 미선샘이 돌아갔습니다.
이제 3월이면
그가 예서 석 달을 바라보며 머물기 시작할 것입니다.
지난 몇 달 말이 오간 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고백하자면, 처음엔 예 머무는 걸 말리다가
(요새는 문의하는 이들에게
대개 다른 공동체며 적절한 대안학교를 권해드리지요.)
움직이는 걸 보며 꼭 같이 살면 좋겠다 나중엔 욕심도 생기다가
아차 싶어 다시 그 마음 내려놓다가
'그냥 자원봉사하는 생각'이라는 그 마음이 고맙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물꼬가 그를 위해 줄 게 없어 재고를 부탁하다가
서로 맞지 않겠는 것도 슬쩍 스미는 걸 보며 불편해도 지다가
몇 해 쉬어가자던 건데
뭐 하러 굳이 새로운 이들로 신경 쓰려는가 후회도 하다가
이내 또 그러나저러나 어디로든 흐를 테지 하며 아무 생각이 없기도 하며
마음이 여러 가지로 들고난 시간(결국 이 편 중심의)이지요.
어디 예 있는 이의 마음만 그러할까요.
그간 이곳을 왔던 이들도, 그리고 오려던 이들 역시도
마음이 늘 한 모습이기만 하겠는지요.
그런데 잘은 모르겠으나
관계란 게 얼마나 다양한 모습이 있던가요.
분명한 건 좋은 관계는 서로를 북돋운다는 겁니다.
어쨌든 이 관계의 긍정성은
다행스럽게도 서로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데 있지 않을까 싶데요.
고마울 일입니다.
그가 있기 때문에 못했던 일을 더해서 벌이진 않을 것입니다.
다만 물꼬가 ‘하려던 일’들을 해갈 것이지요.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것입니다.
서로에게 복 지을 수 있는 시간이기를 바랍니다.

낮에는 고래방 앞 화단을 손보았지요.
마른풀들을 뽑고 사이사이 날아든 마른 잎들을 훑어냈습니다.
며칠 전에 뽑아두었던 고추줄기와 함께
오늘 밑불로 썼지요.
아궁이에서 지나간 한 철이 탔습니다.
그리고 새봄이 오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1856 2009. 3. 8.해날. 맑음 옥영경 2009-03-21 1212
1855 2009. 3. 7.흙날. 맑음 옥영경 2009-03-21 1310
1854 2009. 3. 6.쇠날. 흐림 옥영경 2009-03-21 1101
1853 2009. 3. 5.나무날. 비 / 경칩 옥영경 2009-03-17 1142
1852 2009. 3. 4.물날. 맑음 옥영경 2009-03-17 999
1851 2009. 3. 3.불날. 눈 옥영경 2009-03-17 1007
1850 2009. 3. 2.달날. 흐림 옥영경 2009-03-17 1114
1849 2009. 3. 1.해날. 맑다가 흐리네 옥영경 2009-03-11 1094
1848 2009. 2.28.흙날. 맑음 옥영경 2009-03-11 1122
1847 2009. 2.27.쇠날. 맑음 옥영경 2009-03-11 999
1846 2009. 2.26.나무날. 맑더니 오후 늦게 흐려지다 옥영경 2009-03-11 1156
1845 2009. 2.25.물날. 흐림 옥영경 2009-03-11 1001
1844 2009. 2.24.불날. 시원찮게 맑은 옥영경 2009-03-11 1126
1843 2009. 2.23.달날. 갬 / 멸간장 옥영경 2009-03-07 1330
1842 2월 빈들 닫는 날, 2009. 2.22.해날. 눈 옥영경 2009-03-07 1230
1841 2월 빈들 이튿날, 2009. 2.21.흙날. 눈 내리다 갬 옥영경 2009-03-07 1106
1840 2월 빈들 여는 날, 2009. 2.20.쇠날. 눈 내리다 멎더니 다시 눈 옥영경 2009-03-07 1339
1839 2009. 2.19.나무날. 흐리더니 눈, 그것도 묻힐 만큼 옥영경 2009-03-07 1159
1838 2009. 2.18.물날. 맑음 옥영경 2009-03-07 1198
1837 2009. 2.17.불날. 맑음 옥영경 2009-03-07 1250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