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12.나무날. 심한 바람, 흐린 하늘이 간간이 열리고 해


학교 길 아래 밭의 수로를 정리합니다.
그 아래로 마늘밭이 있고 닭장이 있고 표고장이 있지요.
아이도 삽들고 나갔답니다.
봄은 물길을 타고 먼저 오는가 싶습니다.
얼음장 밑으로 돌돌거리던 물이
서서히 얼음을 흩뜨리며 가는 속에 봄이 무등을 타고 가고,
마른 잎들이 채웠거나
묵은 흙이 흘러내린 밭가 논가 수로 편에
살금살금 다가서는 봄입니다.

고교시절의 체육선생님이 가끔 전화를 주십니다.
책이 더 많이 정보가 되던 그 시절,
선생님은 다양한 영역의 얘깃거리를 갖고 계셨지요.
물론 체육일반이 절대적이었지만
흔히 상식이라고 하는 그야말로 잡다한 세상이야기를
당신을 통해 듣고는 하였더랍니다.
격의 없이 여러 계층(의식?)의 아이들과 두류 교류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제자가 하는 전화에나 답한다는 분들과 달리
권위가 없는 당신이시지요.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거지.”
그렇게 매번 연락을 주시는 당신이십니다.
지난 1월에는 머무셨던 고교가 있는 지역에 다녀오셨다며
그 시절 아이들의 소식을 전해오셨습니다.
이름이나 겨우 잊히지 않을 정도의, 오랜 시간 전의 이들 소식을 들으며
관계란 것이 이런 매개자들로 또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싶데요.

좁은 지역입니다.
이 나라 어디라고 다르겠는지요.
관심사가 비슷하다보면 이래저래 서로 모일 수밖에 없지요.
서로 사이가 나쁜 이들도, 꼴 보기 싫은 이들도 부딪히게 됩니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그렇다하니
남 얘기려니 할 것도 아니지요.
그러하니 별 수 없습니다,
서로 쳐다보면서 제 꼴이려니 하고
반성하고 돌아보고 살 일입니다.

멀리서 벗이 영화를 하나 보냈습니다.
<10 Items Less Ten>
외국의 큰 마켓에 가면 어디고 그리 써있고,
10개 미만의 상품은 거기서 빨리 계산을 할 수 있지요.
아, 한국도 그런가요?
가난하게 머물던 미국생활에서
우리 가족 역시 자주 그 줄에 서 있었던 터라
정작 영화 제목으로보다 그 팻말로 먼저 기억되는 영화이지요.
오래전에 보았기도 하여
듬성듬성 넘기며 보았습니다.
대단히 심금을 울리거나 했던 건 아니었으나
잔잔한 데다
‘건전한 결말’이란 낱말과,
‘우린 살아갈 거고 일도 할 거’라던,
그리고 ‘이제 시작’이라던 대사가 오래 남았던 영화였습니다.
무엇보다 삶에서 지키고 싶은 것과 버리고 싶은 것들을
한번쯤 따져보게 했던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제는 주변부 인물역만 들어오는 한물간 헐리우드의 배우가
신인감독이 찍는 영화의 슈퍼마켓 점원 캐릭터 연구를 위해
한 마켓으로 가 점원을 관찰하지요.
일을 마친 점원이 새 일을 찾아 면접을 보러가는 길을
배우가 동행하게 되고,
점원이 그를 집으로 데려다주는 하루를 담은 영화입니다.
“나는 서른에 첫 작품을 했지.”
점원, 그녀는 이제 스물다섯,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시작해봐라.”
그리 조언하던가요.
젊음이 어디 나이에 있던가요,
나이 일흔, 당신도 시작입니다.

인생에서 배우가 지키고 싶은 열 가지는
가족과 그들의 친구들, 새벽에 마시는 커피, 편안한 장, 자족, 문어체,...
열 번째가 바로 ‘건전한 결말’이었더랬지요.
건전한 결말!
한동안 일기장에 내내 써먹던 말이었지 싶습니다.
점원은 일곱까지 밖에 채우지 못했지요, 아마.
조카, 멋진차(다 낡았으나), 토스트기,
집 뒤의 나무, 바람, 음악, 비올 때의 젖은 자신의 머리라던가...
영화가 끝날 무렵엔 덧붙이지요,
“지금 이 순간!”이라고.

그대가 지키고 싶은 10가지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버리고 싶은 지긋지긋한 10가지는?

아,
점원이 지겨운 것 가운데 '길 물어보기가 그 하나였습니다.
“가는 길을 모른다,
그러면 멈춰 서서 물어보면 돼.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돌아가는 점원에게 집 앞에 닿았을 때던가 배우가 들려주는 말,
평범하나 이 역시 명대사로 꼽을 만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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