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23.달날. 갬 / 멸간장

조회 수 1330 추천 수 0 2009.03.07 22:02:00

2009. 2.23.달날. 갬 / 멸간장


날이 푹하니 그 많던 눈이 살포시 가라앉고 있습니다.
그래도 산으로 오르는 응달진 길은
꽤나 미끌거렸지요.

엊저녁엔 메주를 씻어 난롯가에 두었습니다.
식구들이 다 붙어 하니 금방이었습니다.
오늘은 장을 담자던 날입니다.
볕에 바짝 말리면 좋을 것이나
정월이 넘어가기 전 하자고 받은 날이라
그리 하자 합니다.

김천에 식구 모두가 나가야할 일들이 있었지요.
보험이며 은행일이며
본인이 직접 가서 해얄 서류들이습니다.
남도에서 어머니도 오신다 하였기
영동 읍내로 돌아가
볼일이 있다는 아이를 내려놓고 서둘러 돌아옵니다.

어머니는 벌써 오셔서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멸간장을 달이고 계셨습니다.
바닷가에서 주로 만드는 멸간장은
멸치젓갈을 달여내 거르는 것으로
미역국을 끓일 때나 나물들을 무칠 때 아주 맛납니다.
지난해 담아주고 가신 멸치젓이 있었더랬지요.

읍내에 나갔던 손주가 버스를 타고 들어오자
할머니는 꾸러미들을 푸셨습니다.
아이 겨울부츠도 나오고
고무털신이 열 켤레나 쏟아집니다.
“오가는 사람들 편히 다녀가라고...”
그 말 끝에 한 소리 얹기를 잊지 않고 슬쩍 하십니다.
“니들 달랑 세 식구만 살면 뭐 할라꼬 이런 걸 사겠노...”
공동체니 뭐니 답체 마뜩찮으신 게지요.
물일 하기도 좋으라고 욕실화도 나오고
이모들댁에서 찾아온 옷가지들,
그리고 여기서 귀할 과일상자도 들어옵니다.
“이건 뭐래요?”
낼 장에 넣을 숯과 건고추까지 챙겨오셨지요.
고무들통이며 바가지도 나옵니다.
“이런 것까지...”
“내 손에 익은 것들이 좋지.”

주말에 손님들 치렀다고 고단함이 입니다.
“자라, 다 해놓으께.”
마치 친정에 가면 내리 잠만 자고 오듯
(그래요, 거기 가면 그렇게 잠이 쏟아집니다.)
그리 푹 자라십니다.
어머니 일하시는 양을 보면
참 쉽게 일하십니다.
음식도 그냥 요리가 됩니다.
바닥 걸레질도 다 마치고 불 앞을 또 돌아보시고는
저장냉장고에서 꺼내 참깨도 볶고 흑임자도 볶아두시고...
정월 그믐날인 낼 이른 아침에는
장을 담으려지요.

밤, 어머니는 난롯가에서 한사코 주무시겠답니다.
방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저 당신 속 편한 대로 하시겠답니다.
“아침 일찍 기도도 하고...”
피아노가 있는 가마솥방 작은 무대 위에
전기장판을 놓고 자리를 깔아드리지요.
곁에서 아이랑 오래 양 다리를 하나씩 붙들고
안마를 하며 도란거렸더랬습니다.

아, 낮에 택배 하나 왔습니다,
서울 희정이네서.
홍대 앞 동교동에 있던 물꼬 서울사무소가 가회동으로 가기 전
잠시 거쳐 갔던 이문동,
거기서도 아이들이 방과후 공부들을 했고
멀리서 연극을 하러 배희정이라는 고운 아이가 왔댔습니다.
그 아이 벌써 자라 대학을 가고,
그 어머니 이곳을 잊지 않으셨네요.
그가 쓰던 책들 가운데 물꼬가 쓸 만한 것들을 보내오셨습니다.
긴 시간들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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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23.달날. 따듯함

<할머니>

오늘 할머니가 우리집에 오셨다. 우리 된장 담는 것도 도와주시고 간장 달이는 것도 도와주시기 위해서다.
할머니가 저녁도 같이 하셨는데 나는 할머니 요리가 정말 맛있었다. 내 생각에 할머니는 요리를 정말 정말 잘하시는 것 같아 보인다.
9시쯤에 할머니 다리를 주물러 드렸는데 할머니 냄새가 참 좋았다.
난 할머니가 오시는 게 반갑고 좋다. 할머니는 엄마처럼 포근해서 그런 것 같다.

(4년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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