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4.물날. 맑음

조회 수 999 추천 수 0 2009.03.17 09:14:00

2009. 3. 4.물날. 맑음


돼지감자를 캡니다.
아이에게도 봄농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닭장 아래 넘실대던 뚱딴지들이었습니다.
저어기 아득하게 마을길을 내려다보며
목을 빼고 또 빼면서 키가 자란 줄기가
몇 해 손이 가지 않던 사이 어찌나 새끼를 쳤던지요.
그 흔적으로 비탈에 있는 것들 죄 캐냈지요.
가을날에 거뒀어야 하나
땅이 또 좋은 광이 되어주었을 겝니다.
가난하던 시절 산골의 구황작물이었고
산야의 숱한 나물들이 그 이름으로만 남았듯
이제 더는 밥상에 오를 일 없던 그들입니다.
지난 가을 조금 캐서 잘 말려서는
차로 달여 먹고 좀 나누기도 하였더니
어디서는 사기를 부탁해오기도 했더라지요.
무엇보다 사람이 뿌리고 거둔 농사만이 아니라
천지에 나고 자라는 것들을 이리저리 먹어보겠다는 한해입니다.

가을에 바로 거둔 것은 깎아먹으면 그리 달았다지요.
지나시던 어른들이 옛 기억을 더듬으며 한마디씩 던지십니다.
“맛없어.”
“지금 그런 거 누가 먹어?”
그래서 굴러다니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제는 안 먹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무식한 울어머니 말씀마따나
맛이란 것도 다 세치 혀끝이 만드는 것이니,
무엇이나 다 똑같다며 먹어볼 수 있지 않겠는지요.
게다 흙을 뒤집고 씨를 뿌리고 돌보고 거두는 하는 수고 대신
이미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을 잘 받아 먹어보는 건 어떨지요?
진정으로 스스로 설 수 있는 존재이기를 꿈꾸는 것처럼
세상의 흐름에 길들여진 입도
진정으로 독립을 해보고 싶은 겁니다.
풀먹기, 드디어 시작입니다요.

머지 않은 곳의 한 대학에서 공부하던 젊은 몇 친구들의 소식을 듣습니다.
무데기라고 일컬을 만큼
한 학과에서 휴학하거나 자퇴하는 이들이 꽤 여럿입니다.
흔히 지방대들이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할 테지요.
그런데 그것들이 과연 한 개인의 문제라고만 해야 할까요?
환경이 어떠하든 생의 책임은 철저히 개인이 져야 하는 게 맞습니다,
특히 그가 스무 살을 넘긴 성인이라면 더욱.
그러나 분명 그게 또 다가 아니지요.
한 공간에서 연장자가 갖는 비중이 결코 적지 않을 것입니다.
어른이 있는 시대네 그렇지 않은 시대네 하지만
여전히 어른의 영향력이 크다마다요.
그래서 어른들이 어른이기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떠나는 혹은 떠나고 싶은 까닭 가운데,
그들을 가르치는 이의 책임이 제기 된다면
분명 어른들은 스스로를 잘 돌아보아야할 겝니다.
물론 남 얘기할 것 없습니다,
자신이 교사라면
학생들이 들어가고 싶지 않은 교실을 만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 수정(*교수님 함자;가명)이랑 공부하는 것 좋아."
특수교육을 가르치는 교수님 한 분이 장애학급에 온 친구를 흉내내며
다만 아이들에게 그런 교사가 되기를 바란다던 말씀이
얼마나 귀하게 들리던지요.
(덧붙여, 저는 당신 강의를 들으러 가는 일이 너무나 즐겁습니다.
비록 내용이 벅차 공부량은 부담스러울지라도.)

달골은 온수통이 아주 큰 데도
뜨거운 물이 영 시원찮았더랬습니다.
얼마쯤 나오고 나면 바닥이 나버리고 마는 겁니다.
보일러를 오랫동안 고쳐온 아저씨가 불려와 물 흐름을 살폈습니다.
그리고 벨브를 좀 요리조리 만져봤지요.
찬물이 역류하는 곳을 찾았습니다.
뜨거운 물이 흐르는 속으로 찬물이 섞이고 있었던 거지요.
그래도 전문가가 해놓은 것이라고
고개만 갸우뚱거리며 흘러보낸 시간이 세 해였습니다.
“이렇게 뜨거운 물이 그간 그리 나왔던 거야?”
그러게 말입니다.
해마다 터져서 애를 먹은 창고동을 얼리지 않고 보내서도,
햇발동 온수보일러 문제를 찾아내서도
마음이 가뿐한 봄인 듯합니다,
여전히 사는 일은 문제를 달고 이어지겠지만.
집은 살면서 살피고 찾고 고치는 게 맞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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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3. 4. 물날. 구름

<내 체지방>

어제 늦은 저녁에 종대샘이 나한테 자꾸 “돼지야!”라고 해서 내가 “저 돼지 아니에요.”라고 했더니 종대샘이 내가 돼지라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다음’ 검색창에다가 ‘체지방’이라고 친 후에 체지방 검사기에 내 정보(?)를 써넣었다.
나이: 12세/ 몸무게: 48.5Kg/ 허리둘레: 31Cm/ 엉덩이둘레: 35Cm/ 키: 149Cm 이라고 써넣으니 ‘비만 아님, 정상’이라고 떴다.
나는 너무 너무 기뻤다. 나는 내가 비만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라고 하니까 너무너무 좋았다. 그리고 종대샘한테 통쾌했다.
사실은 나도 깜짝 놀랐는데 내가 비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 반가웠다.
너무 너무 기쁘고, 통쾌하고, 기분이 좋다.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
(솔직히 종대샘은 어떤지 궁금하다.)

(5년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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