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계자 여는 날, 2008.12.28.해날. 맑음

조회 수 1363 추천 수 0 2008.12.31 18:34:00

128 계자 여는 날, 2008.12.28.해날. 맑음


바람은 마을을 굽어보는 큰형님느티나무에서 일거나
저어기 아래 독촛골 개복숭아나무에서부터,
혹은 마을 뒤쪽 티벳길 감국뿌리에서 시작되기도 하고
더러는 북쪽 어디메서부터 와서 대해 골짝을 타고 오릅니다.
그 바람 빛이 참 맑은 이곳이지요.
백스물여덟 번째 계자 <바람 빛 맑은 거기ㆍ1>를 시작합니다.

저녁밥을 먹을 때였지요,
아이들이 발 빠르게 밥을 먹고 가마솥방을 빠져나간 자리에
샘들 몇 앉거나 섰더랬는데,
계절이 한 번 지나간 사이 동휘가 얼마만큼 컸고
형찬이가 여전히 우리를 사실과 환상 사이를 허우적거리게 한다라던가
신명이가 처음 온 아이 같잖게 퍽 익숙해있다거나
쌍둥이 현빈이가 따로 오길 잘했다거나 하며
아이들을 들먹거리는데,
아이들이 오니 샘들이 수다스러워졌고 유쾌해졌고 환해졌답니다.
늘 아이들은 어른들을 그리 만드는 존재들이지요.

네, 아이들이 들어왔습니다!.
상근샘이 빠진 장을 보러가는 길에
(어쩜 그리 적절히 나타나셨던 겐지...)
무열샘 희중샘 수민샘이 아이들을 맞아 들어왔지요.
나머지 일꾼들은 걸레질부터 시작해서 공간에 윤을 더했습니다.
물꼬 계자는 왔던 아이들의 비율이 높기로 이름나 있다던가요.
여전히 맑음을 유지하고 있는 주완(연호가 이름을 바꿨더라구요)이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강아지 같은 세영이와
듬직하고 따뜻한 아이 인영이와
겨울에 지독한 산오름을 하고도 또 온 현주와
틱틱거리기 일쑤이더니 훌쩍 커서 온 작은 동휘와
많은 순간 유쾌하고 감성이 여린 도현이,
여전히 공이 굴러다니는 것처럼 경쾌한 형찬이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 어리광이 갑자기 심해진 듯하다가 다시 제 모습을 찾은 가야가
친구 준하랑 같이 왔고
현빈이가 늘 같이 다니던 쌍둥이 형아랑 계자를 나눠서 왔고
오빠 없이 홀로 세아가 친구 박지윤과 등장했으며
목소리만으로는 그 적극성을 짐작할 수 없는 강지윤,
발이 뼈 산오름을 못한 아쉬움을 이번에는 꼭 달래겠다는 재영이,
양 날개깃에 깃들어 지저귀는 새들 같은 해온이와 자누
(오려면 귀찮다 싶다가 오면 역시 잘 왔다는 생각 든다 자누!),
다른 이들을 더 많이 챙기는 김지현,
대해리에서 만나기를 기다리던 친구와 때를 맞춰 오게 된 승인이,
여전히 넉살좋은 주환이,
너무나 자유로운 이곳이 첫날부터 마음에 들어버린 신명이,
바로 절친한 친구가 되어버린 큰 동휘와 성진,
실내화에 삐져나온 실 하나도 마음이 쓰이는 깔끔돌이 상윤,
하루쯤은 섞이는데 시간이 필요하겠는 정빈이,
그리고 멀리 거제도에서 바다와 혜원이가 손 붙잡고 왔지요.
최지현 누나가 갑자기 앓아 같이 못 오고 있는 태현이를 더해
(그렇게 ‘마흔 넷’, 이 들어왔다고 버릇처럼 쓰려하네요.)
그렇게 아이들 스물여덟이 함께 합니다.
몇 되지도 않는데 동휘가 둘 지현이가 둘 지윤이가 둘이나 되네요.

올 겨울은 아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이런 현상이 있기나 했던가 싶습니다.
2학기 종강식이 늦어져서도 그렇겠고
어렵다는 시절이라는 것도 까닭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유달리 저소득층이 두터운 올 계자이기도 하네요.).
산골의 추위가 매워 여름만 오겠다는 아이들도 많았지요.
오붓한 계자가 될 듯합니다.
하지만 아이들 글집을 위해 시원찮은 복사기 앞에 있느라
두어 시간밖에 눈을 붙이고 못한 희중샘,
그리고 긴 세월을 계자를 겪어왔던 수민샘과 무열샘은
대해리로 들어오는 버스에서 비어있는 자리를 보며
소소하고 평온하기도 하였으나
한편 조금 허전도 하였다지요.
‘잠도 거의 자지 못하고 갔지만 아이들 맞이를 통해서 아이들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오고 피곤이 싹 가셨습니다. 이렇듯 물꼬만 오게 되면 웃음만 나오고 행복한 공간인 것 같아서 계속 오게 되나 봅니다.’(희중샘의 하루정리글에서)

사람들만 들어온 게 아니었지요.
쌀을 보내온 분도 계십니다.
먹고 사는 일의 엄중함을 생각하는 산골 삶이어 그런지
젤루 쌀이 귀하다 싶지요.
지난 여름도 쌀 한 가마니를 실어다 주시더니
올 겨울도 그리 살림을 보태주셨습니다.
바닷 것들 귀한 산골에 바닷 속에서 바닷물 먹고 자란 바닷물고기 가재미를
바닷 것 맛보라고 바닷바람 묻쳐 바닷내 나는 건새우와 건홍합과 함께
찬거리로 보내오신 분들도 계십니다.
물꼬에 잘 쓰이는 파스와 한방소화제, 그리고 한방상처약을
잊지 않고 이 해도 챙겨주기도 하셨네요.
댁의 아이들이 올 때마다 그리 꾸려주시던 분들이십니다.
그것 아니어도 아이들이 작은 작은 밑반찬들을 챙겨왔지요.
풍성한 밥상이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두 모여 자기가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쓸 글집을 만들었습니다.
‘계단’이라는 주제로
4학년 때부터 새끼일꾼이 된 지금까지의 삶을 묘사한 수현이의 그림에서부터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었지요.
거기 물꼬로 오는길과 꿈과 자연과 평화들이 담겨있었습니다.
우리가 그림을 그리고자 함은 그림을 잘 그리자고 하는 게 아니었지요.
그래서 누구라도 제 그림을 활짝 열어 보여주며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자기 소개가 있었답니다.

두멧길을 따라 나갔지요.
학교 앞마을 골목을 지나 큰형님느티나무에 이르고
학교 뒷마을 댓마도 들렀다 당산나무까지 갔다가는
다시 마을 앞길을 타고 돌아옵니다,
겨울들을 지나고 겨울밭을 지나고 겨울나무를 지나.
저기 앞에서는 주완이랑 강지윤이랑 무열샘이
무슨 이야기를 그리 맛나게도 하며 걷고 있을까요?
첫날 산책을 나가면 서로 친해지는 계기가 된다고들 하지요.
처음 온 새끼일꾼 은서형님도 그랬다 합니다.
그런데 이 시간을 처음 진행해 봤던 두 샘이
아이들을 이끌고 가는데 생각보다 힘이 들더라고 고백했지요.
‘길도 잘 모르고 어딜 가느냐는 아이들의 질문에 대답도 잘 못하고
어렵다, 어렵다. 그저 아이들을 끌고 간다는 느낌이었다. 다시 한 번 어렵다.’
그럼요, 차라리 어떤 특정 재료를 가지고 하는 활동보다
즉흥을 요구하는 이런 시간이 어렵다마다요.
그게 구력인 게지요.
사실 물꼬의 아주 큰 강점이 바로 그 즉흥에 강한 것이기도 하답니다,
아무것도 아닌 듯 너무나 자연스러운 듯 보이는 그것에
그 시간의 가치를 잘 담는.
저녁을 먹은 뒤에도 준하랑 가야는 두멧길을 못 다 걸은 길이 아쉬워
애진샘이랑 밖에 나가 여러 집들 사이를 다녔다나요.

이번 계자는 하루를 열며 하던 해건지기 시간의 둘째마당인 명상을
저녁의 춤명상(명상춤)으로 대체합니다.
아이들도 샘들도 반응이 대단했지요.
샘들이 하루를 정리하며 쓴 글에서 옮겨봅니다.
- 서현: 춤명상 신선하고 좋았어요!
다들 잘 따라하고 재밌었어요.
- 수민: 춤명상 정말 좋았어요! 최고!
작은 동휘도 잘 따라하더라고요.
- 무열: 난 그저 몸 쓰는 것이 좋다. 특히 춤명상이 개인적으로 신선했다.
몸을 움직이면서도 고요한 느낌, 요가와 달리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마음이 가라앉고 평온했다. 좋았다.
- 수현: 춤명상은 내게 물꼬에서의 세월을 돌이켜보게 도와주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이 성큼 자라듯이 새끼일꾼과 품앗이 일꾼들의 성장도 눈부시지요.
그들의 하루 정리글에서 역시 옮겨봅니다.
- 아람형님: 어떤 일을 끝마치고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는 건 좋은 건데 그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게 귀찮아서 안하는 경우도 많은데....(생략) 항상 품앗이 샘들 지시하에 따라 움직였는데 새끼일꾼들끼리 해보니깐 색다른 경험이었고 뭔가 더 책임감이 강하게 들어서 이곳저곳 더 살피게 되었어요.
초반엔 잘하려고 해서 아이들한테 잘해주다가 점점 힘들어지면 본색이 나온다고 해서 그 말이 머리에 콕 박혀서 게을러지려고 하다가도 그 말이 생각나서 다시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재래식(큰화장실)화장실 청소를 처음 해봤는데 더러워서 못할 줄 알았는데 더럽단 느낌보단 이 정도면 될까, 한 번 더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꼬에 오면 본연의 저의 모습과 다른 모습을 많이 발견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 아람의 친구로 첨 온 새끼일꾼 지희형님: 아이들이 나에게 의지하는 걸 느낄 수 있어서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 서현샘: 여름, 가을, 겨울의 물꼬는 다 다르지만 역시 산이라 그런지 매번 날씨가 추운 게 좀 걸립니다. 너무나 일상적인 ‘따뜻함’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었는지 느끼게 되었고
아이들이 많이 추워할 거라 생각하고 걱정했는데, 의외로 별말 없어서 신기했구요.

새기일꾼들, 물꼬의 자랑인 그들입니다.
처음 새끼일꾼이 된 수현은 이렇게 쓰고 있었지요.
‘학생으로 올 때 내가 사소하게 넘어갔던 것들(속틀, 청소, 이름표, 글집 등)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정성어린 손길이 담겼는지 느끼게 되었다. 이 착하고 좋은 아이들과 연을 맺어준 물꼬에게도 감사함을 느꼈다.’
그리고 한 줄이 더 있었답니다.
‘하지만 육체적으로 힘들다.’
이들을 보며 아이들이 새끼일꾼에 대해 물어왔습니다.
인영이와 도현이에겐 멀지 않은 얘기이지요.
예약이랍니다.

아, 가마솥방지기 종대샘은 엊저녁 모두에게
빨리 입맛을 바꾸라더니
웬걸요, 아이들 입맛을 어찌 알았는지
아주 많은 양의 음식이었는데도 다 동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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