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계자 나흗날, 2008.12.31.물날. 맑음

조회 수 1254 추천 수 0 2009.01.07 12:46:00

128 계자 나흗날, 2008.12.31.물날. 맑음


그리 이르지 않은 겨울 아침,
체조를 하고 달골에 오릅니다.
산길은 눈으로 다 덮여있었고
다녀간 동물들 발자국이 남겨져 있었지요.
“멧돼지 같애.”
“저건 뭐지?”
9년 만에 뉴질랜드에서 물꼬에 온 애진샘은
달골이 퍽 인상 깊었다 합니다.
“물꼬가 점점 커지는 구나, 이러다 나라라도 세울 수 있겠다....”
그때 멀지 않은 곁으로 산짐승 하나 휘익 지나갑니다.
“고라니다!”
달골에서 바라보는 건너편 골짝은
물꼬의 또 다른 꿈 하나 살고 있지요.
인종도 성별도 계급도 국경도 장애도 초월한
‘아이들 나라’에 대한 꿈.
주완이는 특히 그 나라에 관심이 많습니다.
“빨리 세워요.”
그래서 자기 세대들도 거기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지요.
“물꼬에서처럼 살면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겠어요.”
그렇지만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또한 아는 주완이이지요.
삼삼오오 걸어가며 아이들은 서로를 더 깊이 알거나
새로운 이들을 알게 됩니다.
달골에 거의 이른 곳의 굽어 도는 곳은
햇볕 잘 닿지 않아도 눈이 소복했지요.
얼어버리면 겨우내 빙판길이 될 것입니다.
아이들이 다 올라오고, 또 다 내려갈 때
비를 들었더라지요.
산사를 지키는 행자처럼 말입니다.
지겨울 만큼 눈이 내리는 곳은 아니어
눈을 쓰는 것도 일이 아니라 명상의 한 방법 같이 다가옵니다.
“옛날에 밤산책 가던 길이 생각나요.”
새끼일꾼 민정이였네요.
이곳을 거치며 새끼일꾼 품앗이일꾼이 된 이들은
옛적 계자를 재생시켜주지요.
우리가 걸은 오늘도 훗날 그러할 겝니다.

손풀기를 한 뒤 ‘우리 가락’ 교실이 열렸지요.
얼마 되지도 않는 규모라 나누지 않고
모두 같이 판소리 한 자락 배우고
모두 같이 서서 가락을 익혔습니다.
무척 재밌어 했지요.
미선샘이 고래방으로 건너가서는
풍물오케스트라도 탄생시켰답니다.

그때 무열샘은 빨래를 돌리고 널었습니다.
“물꼬 오래 있다 보면 점점 이게 생활이고 익숙해지는 일상이란 느낌이...”
빨래하고 청소하고 옷방 정리하고 곳간 정리하다보면 그럴 것도 같습니다.
“특별한 일 없어도 소소하게 즐겁고...”
이곳 역시 사람들이 살아가지요.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밥을 짓고 장작을 팹니다.
그러는 속에
이곳이 주는 느낌을 묵어가는 이들도 공유하게 되는 거지요.
물꼬 계자의 특징은
잠깐의 행사가 아니라 이렇게 일상의 느낌들,
그러니까 살아가는 날들의 연장선에 우리가 보내는 시간이 있음을
자연스레 마주치게 합니다.
‘사소한 것에도 감사함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거 같아요. 물꼬에서 지내다보면 좋은 게 너무 많아요.’(새끼일꾼 아람이의 하루평가글에서)
이것 역시도 무열샘의 느낌과 다르지 않은 것이겠습니다.

‘보글보글’.
시작하기 전 모두가 모인 방 앞에서 보자기 하나를 풀었지요.
“떡이요!”
“과자요!”
통닭일 것 같다고도 하고 사과일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와, 만두다, 왕만두!”
찰흙으로 빚은 왕만두 세 개를 보는 순간
아이들은 알아차려버렸습니다.
네, 모두 만두를 빚을 것입니다.
형찬 작은동휘 주환 신명 정빈 현빈이는
용감하게 만두를 태워먹으며 ‘용감한 만두’를 빚고
‘씩씩한 만두’에는 지현 세아 상윤 주완이가 같이 했지요.
‘잘생긴 만두’는 승인 현주 도현 성진 큰동휘가 들어가
잘생기게 하려고 온갖 애를 썼으며
‘훌륭한 만두’는 가야 준하 자누 세영 박지윤을
훌륭한 만두를 먹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도록 했습니다.
‘마음 넓은 보자기’에는
바다 혜원 재영 인영 해온 강지윤이가 들어갔습니다.
“역대 반죽 가운데 최고로 잘됐네.”
가내사업장의 가족들처럼 만두피를 빚으며
수다 한창입니다.
“저도 다른 애들처럼 전에는 남이 쓰던 컵도 잘 안마시고 그랬는데,
형찬이(같이 온 이웃 동생) 것도 안 먹었는데,...”
여기 다녀간 뒤로 이제는 다르다는 거지요.
“그럼 나는 그동안 더러웠구나...”
해온이가 맞장구를 쳐줍니다.
방마다 만두를 구워먹고 가마솥방으로 와 쪄내고,
남은 반죽은 칼국수를 만들어져
아이들의 배를 시원하고 한편 부르게 채웠더랍니다.

옛 얘기는 얼마나 무궁한 놀잇감인지요.
그것은 원래대로든 뒤집기로든 이야기이어가기로든
어떤 것으로도 형태를 바꾸며 면면이 이어가는 훌륭한 문화상품입니다.
연극을 했지요.
다들 주인공에 대한 부담감들이 있나 봅니다.
그리하여 새끼일꾼 민정과 수현이가 대타로 뛰었습니다.
소주를 마셔대며 사랑을 잃은 춘향이 역은
아이들의 환호가 대단했는데,
절망에서 그를 끌어내려는 이들에게
입으로 소주(입)를 뿜어내는 것으로 절정에 이르렀답니다.
변사또로 작은동휘와 주환이가 등장하여
제법 고을을 다스리는 위엄과 한편 포악함을 보여주었으며
상윤이 성진이 포졸 역을 포졸답게 잘 해내었지요.
현주가 월매를, 해온이가 향단이, 세아는 마을사람, 그리고...

분장도구들도 곳간에서 나왔습니다.
의상들도 옷방에서 나왔지요.
‘연극은 언제나 감동이다.
안 될 것 같아도 벅차보여도 어떻게든 된다.‘(무열샘의 하루정리글에서)
처음 시작할 때 막막해도 하다보면 어떻게든 모두 해낸다 말이지요,
그것도 짧은 시간에.
“대학 새터 때 4시간씩 낑낑거렸던 기억과 교차하면서...,
이렇게 쉽고 간단하고 그리고 재미있게 만드는 걸 보고
신기하고 놀라웠습니다.”
서현샘입니다.
흔히 어떤 작업들은 그 결과물에 집중되기 쉬운데
연극은 그 과정의 소중함이 더욱 크지요,
특히 아이들과 하는 이곳의 연극은.
“이거 어때요?”
“분장해야지 않아요?”
이런 게 재밌구나,
옷방에서 옷 찾고, 입어보고, 분장하고, 소품 찾고 하는 속에
많이도 즐거웠다 합니다.

판소리 한 대목으로 춘향가 한 소절을 배운 아침이었고,
그것을 연극으로 무대에 올렸으며
대동놀이에서는 춘향이 이야기로
짝을 나누고 편을 정하여 한바탕 손놀이를 한 저녁이었답니다.

그리고 춤명상.
‘애들이 이번 춤명상을 유독 재밌어 하더라구요.
싱글벙글거리면서 하는데 너무 이뻤어요.’
새끼일꾼 아람이의 하루평가글이 아니라도
대개가 좋은 반응입니다.
엉거주춤하던 모두가
어느새 춤을 추며 자기 세계로 가고 있었지요.

어제 수민샘이 나간 자리(일을 보고 다음 계자에 다시 들어옵니다)로
들어왔던 미선샘이 서현샘이 하던 가마솥방도움이자리로 가고
서현샘은 모둠안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서현샘이 이제 좀 익어질만 했지만
아줌마한테 밀리다마다요.
확실히 아줌마가 있으니까 부엌이 안정감이 있었지요.
가마솥방 분위기가 계자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큽니다.
종대샘과 서현샘이,
그리고 종대샘과 미선샘이 빚어내는 주방의 안정감과 후덕함이
계자를 구성하는 이들의 맘을 더욱 좋게 했지요.
어떨 땐 부엌은 대단한 권력으로 여러 사람을 불편케도 하고
너무 힘이 들어가 있어 사람들을 눈치 보게 한다든지
아니면 무거운 표정으로 일하고 있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도 하는데,
부엌식구들이 유쾌하고 따듯하게 움직이고 있어
어찌나 고맙던지요.
일을 하며 다른 사람에게 마음 쓰이지 않게 하는 게 얼마나 큰 도움인데요...
해본 사람은 알 겁니다.

샘들이 불가에 앉아 아이들의 하루를 돌아보고
낼 움직임을 꼼꼼이 미리 그립니다.
“새해 첫날부터 산오름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내일을 기대하며 한해를 마감했지요.
네, 2008년의 마지막 밤입니다.
아이들 쌔근거리는 위로 별이 무수히 쏟아지고 있었지요.
누구랄 것 없이 한 해를 살아내느라 애 많이 쓰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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