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계자 닷샛날, 2009. 1. 1.나무날. 맑음 / 아구산

조회 수 1347 추천 수 0 2009.01.08 07:24:00

128 계자 닷샛날, 2009. 1. 1.나무날. 맑음 / 아구산


새해 첫날입니다.
나흘을 넘기면 이제 끝이구나 싶지요.
산 오르고 짐 싸면 돌아가는 날입니다.

겨울산을 다녀왔습니다.
고맙지요, 늘 고마운 하늘이지요.
눈이 내렸던 엊그제로 눈길을 보여주었고
꽝꽝 얼었던 날이 산 속 작은 호수를 얼려주었으며
햇살 퍼지며 수그러든 날이 내려오는 길을 밝혀주었습니다.
늘 절묘한 계자의 날씨입니다.

‘김밥 싸는 동안 큰동휘가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도 혼자 모든 이불을 개두고 있었다.
참 듬직하달까...... 그저 재밌는 녀석이라 생각했는데 정말 많이 놀랐고 감동했다.’
(무열샘의 하루정리글에서)

아이들은 옷을 단단히 여미고
어른들은 김밥을 싸고 가방을 꾸렸습니다.
오늘은 아구산을 오르려합니다.
깊은 이 산골은 첩첩이 산이고
그 산마다 옛이야기 한둘 품은 건 예사이지요.
지금은 이름을 잃어버린 산도
그 어느 때고 깃들어 사는 존재들이 있었을 것이고
골 이름이나 산 이름도 지닌 적 있었을 테지요.

“... 임란으로 나라가 어려울 적 왜구에 쫓긴 사람들이
이 산자락 어드메쯤에 둥지를 틀고
제법 규모 있는 마을을 갖추고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바지런하여 해를 거듭하며 밭농사 규모도 늘어갔고
북쪽으로 난 골짝이라 춥긴 하였으나
버섯이며 산나물이 풍성하여
평지의 어느 마을 못지않게 풍요를 누릴 수 있었지요.
어느 해 원인모를 심한 가뭄을 겪었는데
그럴 때 꼭 옛 얘기에 나오는 스님처럼
이 마을에도 덕이 깊은 스님 한 분 나타나
어떤 산을 찾아 어디 어디로 가면 그 까닭을 알리라 했다 합니다.
여기까지 듣고 일단 듣고 길을 떠납시다.
산속의 해는 빨리 지니까.”

마을 뒤쪽으로 길을 잡습니다.
바로 산 아래까지 농로가 다 포장되어 있지요.
오지개발사업이란 이름으로 곳곳에 투입되는 돈들이
이렇게 별 쓸모도 없지 싶은 길까지 다 덮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산골마을조차도 흙길을 보기 어렵지요.
시멘트를 벗어나 비로소 산에 듭니다.
산골 마을에 갑자기 무데기로 나타난 사람들로
꿩이 놀라 날아올랐고
딱따구리가 나무쪼기를 잠시 멈추었지요.
얼마가지 않아 능선으로 오르는 가파른 경사지를 만나고
기어 기어 오르지요, 긴 길은 아니라 힘이 그리 들 건 아니나.
처음부터 형찬이와 현주는 맨 뒤에서 아주 죽겠다 합니다.
현주는 지난 겨울 산오름에서 혼쭐이 났지요.
조금만 기울어진 곳이 있어도 극도의 공포에 시달리는 그입니다.
그것을 극복하게 돕기 위해서도 이 산오름은 필요하다 싶었더랬습니다.

능선에 올라 잠시 다리쉼을 합니다,
앞뒤의 간격을 줄이기 위해서도.
이야기도 이어가지요.
“... 마을에서 돌쇠라는 청년을 그곳으로 보냅니다.
청년이 산을 향해 가는데
외나무 다리를 만나게 되었지요.
거기 산양 두 마리가 해가 다 지도록
서로 가겠다고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마을에서 지난 한 해 동안 벌어졌던
두 성씨들의 싸움이 생각났지요.
그래서 마을은 인심이 사나워질 대로 사나워져 있었습니다.”

다시 길을 떠납니다.
가파른 산 하나를 넘지요.
‘고학년남자아이들이 어린 아이들을 챙겨가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
산을 타는 게 힘들었다기보다는 애들을 잡아주는 게 힘들었다.’
새끼일꾼 수현의 산오름 평가글이 그리 쓰고 있었던 대로
새끼일꾼들과 큰 형아들의 도움으로
모두가 거뜬히 그토록 가팔랐던 산을 넘었습니다.
인영이도 어느새 새끼일꾼에 이르고 있었답니다.
‘물꼬에서 좋은 경험을 한다는 것을 산을 넘으면서 또 느꼈다.’(새끼일꾼 지희의 산오름 평가글에서)
‘서로 도와주고 고맙다고 그러고 챙겨주는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힘들었어도 마음이 즐거워서인지 재밌게 올라갔다가 내려왔어요.’(새끼일꾼 아람의 같은 글에서)
그리고 죽은자들의 집 곁에서 다리쉼을 하며
산자들의 삶에 대해 얘기 나누었습니다.

“... 돌쇠는 커다란 동굴 하나에 이르렀습니다.
마침 날도 저물어 거기 묵었지요.
그 굴에는 멧돼지 부족들이 있었는데
약하고 어린 멧돼지들은 따스하고 깊숙한 곳에서 잠을 청했고
힘이 세고 젊은 멧돼지들은 동굴 밖에서 떨며 밤을 지새고 있었습니다.
‘아니, 저런 짐승들도 약하고 어린 존재들을 배려하며 사는 구나.’
최근 마을 사람들이 갈라져 싸우는 동안
보살피지 못했던 홀로 사는 노인이며 부모 잃은 어린 아이들이 떠올랐지요.
돌쇠는 그만 부끄러워졌습니다.”

우리는 고개 몇 개를 눈길에 미끄러지며 오르고 또 올랐습니다.
아구산을 찾아 가는 길은 돌쇠가 찾아갔던 그 길 마냥
사연도 많았지요.
“옥샘, 이 거...”
상윤이가 열매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굴참 떡갈 상수리열매는 늘 헷갈립니다.
도토리라는 이름으로 통칭해도 무방하지만
그들도 제 각각 차이들이 있지요.
상수리 열매집과 그 열매였더랬답니다.
아이들과 아이들 사이에서도 새로운 만남들이 일어납니다.
거기 눈 내린 산자락이, 잎을 다 떨군 나무가, 푹신한 낙엽더미가
그리고 청명한 겨울 하늘이, 멀리 보이는 다른 산들이
한 몫을 하고 있었지요.

“... 돌쇠가 지칠 무렵 외딴 오두막 하나 발견합니다.
거기 홀로 남은 할머니 살고 계셨는데
산살림에 너무나 귀한 좁쌀을 먹이를 구하지 못한 짐승들을 위해
눈 내린 산 이곳저곳에 뿌리고 있었지요.
돌쇠는 무릎을 칩니다.
‘너무나 풍요로워진 우리 마을이건만
사람들이며 산에 사는 것들이며 두루 살펴주질 못했구나.’
그러다 길을 잃고 밤은 깊어졌지요.
호랑이 한 마리 나타나 무서움에 떠는데,
그는 돌쇠를 해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자세히 보니 그가 언젠가 구해준 어린 호랑이가 그 옆에 있었지요.
어미 호랑이는 그 밝은 눈빛으로 돌쇠의 길을 환히 밝혀주었습니다.
그런데, 아, 겨울나무를 얼마쯤 헤치고 나아가자
바로 아래 돌쇠네 마을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멀지 않은 뒷산 어디쯤이었던 것입니다.
돌쇠는 알았지요,
스님이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를.
돌아가면 서로 사이좋게 지내야겠다고,
산에 사는 다른 존재들과도 조화롭게 살아야겠다 다짐했습니다.
마을에는 아침밥을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지요.”

아이구, 아이구, 반성하며 돌아왔던 산은
그리하야 ‘아이구산’이라 불렸고, 그건 다시 ‘아구산’이 되었지요.
그곳을 향해 우리는 또 나아갔습니다.
‘산은 아이들을 챙기지 않았어도 경사나 길이 쉽지는 않은, 그러나 재미(!)있는 곳이었습니다. 같은 길이고 비슷한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잘가는 애들, 우는 애들, 넘어져도 아무렇지 않은 아이들... 신기했어요.’(서현샘의 산오름평가글에서)

우리의 산오름도 막바지입니다.
상윤이가 다음에 사촌동생이랑 올려했는데,
아무래도 산 때문에 못 오겠다 합니다.
하지만 그 상윤이도 산을 어찌나 잘 타던지요.
현주도 그랬지요.
예전보다 한결 나아졌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산이 어렵다 합니다.
“알았어. 다음에는 절대 산에 안 와.
그러니까 만약 산에 오더라도 거긴 산이 아닌 게야.”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주억거리는 그들입니다.
사탕이 없어 힘이 없다는 형찬이는
새끼일꾼 수현이가 준 사탕 하나에 방긋 웃으며 씩씩해졌지요.
“아이고, 이제야 힘이 나네.”
결국 우리는 옛 얘기 속의 아구산을 만나지 못했으나
이제 아래를 향해 내려가려지요.
그런데 자주 다니던 길목이 벌목한 나무들도 막혀 있었습니다.
이를 어쩐다?
어려울 일 아닙니다.
다른 길을 찾으면 되지요.
그렇게 돌아 우리는 산이 남겨준 선물 하나 받았습니다.
산 속에 꽁꽁 얼어붙은 저수지 위로
엊그제 내린 눈이 소복이 쌓여있었지요.
마치 세상의 처음이 그렇기라도 한 양.
“어, 이건 물꼬 아이스링크잖아.”
네, 바로 마을 뒷산 우리들의 저수지였지요.
그 옛적 바다만한 호수가 있던 이 마을이
어느 해 이른 추위로 얼어붙어
놀던 청둥오리들 놀라 그만 일제히 날아올라
그 발에 붙어 있던 조각난 물들이
다시 툭 떨어져 못이 된 곳, 바로 그 저수지!
“얼음 호수... 꿈꾸었던 것 같은... 두근거리고, 그 위에 서 있다는 게...”
나중에 서현샘이 그 감동의 물결을 고스란히 가진 채 그랬답니다.
드러난 얼굴을 얼리던 바람날이 한낮의 햇살을 녹이고
볕은 더욱 두터워져 날은 푹할 대로 푹했습니다.
거뜬히 산오름을 끝내고
얼음판에서 지치도록 놀았더랍니다.
그 사이 학교에 남은 이들은
불을 때고 청소를 하고 밥을 준비했지요.
‘모두방 청소를 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이런 일을 하고 있는 내가 너무 자연스럽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애진샘의 하루정리글에서)

3시가 넘어가서야 돌아왔네요.
다음은 ‘한껏맘껏’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쉼이지요.
아이들은 여전히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새처럼 재잘대거나 아직도 산 하나 더 오를 수 있을 힘으로 뛰어다닙니다.
조금 고단한 듯 보인 건 죄 어른들이었지요.
그래도 아이들을 위한 숙제를 해냅니다.
달고나!
들불에서 챙겨먹지 못했던 뽑기 말입니다.
샘들이 열심히 국자에 소다를 넣어 저어 판 위에 올리면
아이들은 모양을 찍어냈지요.
아이고, 저 설탕덩이들...

저녁에는 으레 산오름의 후일담을 나누지요.
아구산 전설을 들으면서 가서 재밌었어요,
우리가 걷는 길이 꼭 영화 같앴어요,
등산로를 따라 걷는 것과 달리 나름대로 재밌더라구요,
도와준 이들이 고마웠어요,
산에서 먹은 것들이 정말 맛있었어요,
얼어붙은 호수와 그 위에 내린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이 멋있었어요,
우리가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어서 기뻐요,
모험가가 된 것 같앴어요,...

‘대동놀이 시간엔 정말 즐거웠다. 노래도 흥겨웠고 정빈이도 열심히 했다.’(애진샘)
강강술래는 언제나 흥겹습니다.
달이 좋은 날은 더하지요.
날이 매운 밤이어
장작놀이는 촛불잔치로 대신합니다.
숙연해지기까지 한 아이들이 지난 닷새를 돌아보았고,
그리고 물꼬는 물꼬가 나누고 싶어 했던 이야기를
다시 잘 전하는 자리가 되었지요.
큰동휘랑 성진이는 이곳을 너무 늦게 알아 아쉽다 했습니다.
준비한 것처럼 아이들이 한 마디씩 하고 자리를 정리하려는데
주환이가 더할 말이 있다며 손을 번쩍 들었지요.
옥샘의 훌륭한 말씀을 잘 새기고 살겠다는 겁니다.
그게 뭐냐니까
어려운 일을 만나면 길을 찾으면 된다,
생이 꼭 계획한 대로 되는 게 아니다, 그럴 땐 수정하면 된다,
같이 하면 낫다,
산을 내려온 뒤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을 말하고 있었지요.
그래서, 산에, 아이들과 가고 또 가나봅니다.

아이들에게 한 마지막 약속도 잊지 않고 챙깁니다.
곶감 맛을 보인다 하였지요.
감자가 익기를 기다리며 아이들이 곶감을 먹는데,
먹기 좋으라고 잘라주는 앞에서
준하가 그랬습니다.
“아직 가지도 않았는데 물꼬가 그리워요.”
어린 시인이 거기 있었지요.

샘들도 닷새를 돌아봅니다.
“너무 즐거웠어요. 내가 잘 쓰였단 느낌이 좀 들었어요.... 아이들 수가 적었던 것도 그 나름대로 너무 좋았구요.”
새끼일꾼 아람입니다.
아이들 하나 하나 얘기도 불가에서 다 꺼내지요.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너무 말하는 게 너무 예뻐요. 눈 마주치면서 이야기하다보면 손 잡아주고 싶은 그런 다정함이랄까, 사람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기분 좋게 해주는 아이 같아요. 주완이도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아이 같아요. 저희 모둠에서 분이기 메이커나 다름 없었구요.”

‘마지막날이라 아쉬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이 이쁜 애들을 놔두고......’
(새끼일꾼 수현이의 하루정리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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