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계자 닷샛날, 2009. 1. 8.나무날. 맑음

조회 수 1349 추천 수 0 2009.01.23 18:32:00

129 계자 닷샛날, 2009. 1. 8.나무날. 맑음


“5일 동안 재미있는 거 갚아주려고 산에 올라왔죠?”
성재가 그랬던가요.
여태 잘 먹고 잘 놀았으니 이제 고생 좀 해봐라,
그렇게 갔다고 할 만치 힘이 들었다는 말이었을까요?
산오름이 있는 날입니다.
이곳에 사는 아이는 어제 읽기에 이리 쓰고 있었지요.

2009. 1. 7. 물날, 맑음(내일이 산행!)
우리 학교는 언제나 계자 끝에 산을 탄다. 여름에는 ‘민주지산’을, 겨울에는 갖가지 전설의 산으로 모험을 떠난다.
내일 갈 산은 아직 엄마가 그 전설에 대해서 안 알려줘서 아무것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디를 가건 준비가 필요하다.
바로 이것들이다. 등산화, 물통, 물통허리띠, 시계, 사탕 등이다.
너무 기대되지만 불안하고 막막하기도 하다.
“함~ 빨리 자야지.”
(4년 류옥하다)

산오름은
전면적으로 자연 속에 자신을 두는 시간이고
자신의 한계랑 마주하는 시간이며
계자에서 우리가 얻으려는(함께 그러면서 스스로) 걸
총체적으로 되짚어보는 시간쯤이라 하겠습니다.
마치 사지 앞에 선 사람들처럼
이제는 사람들 발길 끊긴 지 오래인 산으로
모험을 떠나지요.
그리고 그 길은 사람을 알게 하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자기 못잖게 타인을.
여태 안에서 보던 만남들과 또 다른 만남이 기다리고 있지요.
어떤 극한의 상황이 놓일지도 모를 일일입니다.
언젠가는 펑펑 쏟아지는 눈 속을 헤쳐 나오다
아이 하나 바위에 거꾸로 미끄러져 머리를 꿰맨 적도 있고
큰 비를 만나 불어난 계곡에서 정말 사선을 넘은 적도 있었지요.
돌아온다는 결론만 가지고 갑니다.
올 겨울에 우리가 숙제로 놓은 산은
‘아구산’입니다.
깊은 산만큼 주절이 주절이 달린 이야기도 많은 산골이지요.
역시 이곳에 사는 아이는
아침에 산에 오르기 전 들려준 이야기를
날적이에 이리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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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 8.나무날. 추움. <아구산>

우리는 이번 계자 때 ‘아구산’에 오르기로 했다.
이 아구산도 전설이 있다. 지금부터 얘기하겠다.
옛날 옛날에 임진왜란이 일어날 즈음, 여기 대해리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 약초 등을 캐면서 이때쯤에는 평지마을 못지않게 부자마을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해 봄에 쑥, 냉이가 안자라고 여름에는 고사리 등이 안나서 마을 사람들이 걱정을 하고 있을 대 마을을 지나가던 스님 한 분이 마을 사람들에게 지나가던 스님 한 분이 마을 사람들에게 ‘아구산’을 알려주시면서 거기에 가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이 누구를 보낼까 생각하다가 평소에 영리하고 힘이 센 ‘돌쇠’라는 건강한 청년을 보냈다.
돌쇠는 맨 처음에 외나무다리를 봤다. 그런데 그 외나무다리에는 두 산양이 마주보며 서로 한치도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돌쇠는 그것이 재미있어서 해가 떨어질 때까지 그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돌쇠는 자기네마을에서 오랫동안 이어진 윤씨와 이씨의 싸움이 생각났다. 이 마을은 무슨 일을 하든 윤씨와 이씨들의 의견이 맞지 않고 모든 일에서 이 산양들처럼 팽팽하게 대립했다.
해가 지자 돌쇠는 잠잘 곳이 필요했다. 그런데 근처에 동굴이 있었다. 들어가보니 거기에는 멧돼지들이 엄청 많았다. 그런데 그 멧돼지들은 약한 동물을 공격하지 않는 거였다. 그리고 잠자는 위치는 맨 안에 아이들과 여자들, 그리고 중간에는 노인들이, 문 앞에는 남자들이 잤다. 그것을 보고 돌쇠는 자기네 마을에 윤씨들과 이씨들이 다투느라 노인, 여자, 아이 등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것을 생각했다.
이 짐승들도 이렇게 배려를 아는데 우리 마을은 이 짐승들보다 못하구나 라고 돌쇠는 생각했다.
다음날 돌쇠는 동굴을 떠나 아구산을 찾으러 갔다. 그런데 그 도중 어떤 홀로 사는 화정민 할머니가 조금 남은 좁쌀을 새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그것 보면서 돌쇠는 자기네 마을에 윤씨와 이씨들이 다투면서 동물들이 굶어죽는 것을 보지 못했던 것을 생각했다.
해가 진 후 돌쇠는 호랑이 새끼와 어미 호랑이를 봤다. “이제 죽었구나.”라고 생각하는데 새끼 호랑이가 낯익었다. 새끼호랑이는 돌쇠가 전에 치료해줬던 새끼호랑이였다.
어미 호랑이는 눈을 밝혀 얼마동안 돌쇠를 따라오게 했다.
돌쇠는 이 아구산이 동네 뒷산이란 걸 알았다. 어미호랑이가 데리고 간 곳은 바로 자기네 동네(대해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마을사람들에게 들려주자 그제야 마을 사람들은 모두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우리는 이 전설에 나오는 곳들을 모두 가봤다.
재밌었다.
(4년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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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아이구 아이구 그랬구나 그랬구나 해서
이름 없던 그 산이 아이구산이란 이름을 얻었고
세월이 흐르며 ‘아구산’으로 변하게 됐다는 옛날 이야기를 안고
우리도 산에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른 아침 샘들은 김밥을 쌌고
아이들은 아침체조로 몸을 풀고 옷이며 신발이며 단도리를 했지요.
임수와 희수의 거추장스런 신발이 좀 걸리긴 하나
눈은 거의 녹았겠다 하고 나섰습니다.

오늘은 좀 가벼이 산을 탈까 합니다.
이야기를 끊어가며 사이 사이 전하니
마치 이야기 줄을 타고 그 길을 따라 가는 듯했답니다.
학교 뒤란으로 해서 낮은 산 하나를 타고
능선길을 따르다 다시 다른 산 하나를 넘고
다시 능선을 따라 이 골짝과 저 골짝을 내려다보며
한없이 걸었지요.
올라갔다 내려갔다 마치 우리 사는 생의 모습처럼
산길은 하염없이 위아래 곡선을 그리며 이어집니다.
사람이 떠난 곳에서 여전히 꽃피고 지고
열매 맺고 그 열매 떨어져 다시 흙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 여러 짐승들이 다녀간
발자국과 똥들이 늘려 있었지요.
죽은 자들의 집을 통해 산 자의 삶도 생각하고
우리가 잊고 있는 동안에도 세상을 채우는 다른 존재들에 대해서도
생각 한 자락 가져보는 시간이 됩니다.
눈이 녹은 산은
가을산처럼 푹신한 마른 낙엽 이불을 덮고 있었지요.
우리는 방석 삼아 깔고 앉아
어드메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깔끄막을 한참 기어올라
저어기 아구산 쯤으로 보이는 곳을 건너다보며
다리쉼과 함께 참도 먹습니다.
사과즙은 참말 달기도 했지요.

그리고 다시 길을 잡고 길을 헤쳐 갑니다.
아이들을 아이들이 받쳐주지요.
“여자애가 칠칠맞게 뭐하는 거냐?”
건표가 핀잔을 주면서도 금비를 챙기고
철현이가 샘들 가방을 짊어지기도 합니다.
그대로 굴러 떨어지겠는 바위산을 기어 내려가
겨우 작은 짐승 하나 건너갈 듯한 곳으로 길을 내어 나아가다가는
잠시 주춤거렸지요.
뒷 패와 앞 패가 너무 멀어 서로를 확인합니다.
“어이!”
“어이!”
모두가 모였을 적
우리는 결단 하나를 해야 했네요.
아래로 질러가는 길이 있는데,
그 경사가 여간 급하지가 않습니다.
“가요!”
그래요 가면 되지요, 그러면 길이 됩니다.
아, 결코 서서 걸어 내려올 수 없지요.
모두 엉덩이를 발 삼았습니다.
쑤욱, 쑥, 그냥 미끄러집니다.
낙엽미끄럼틀이 거기 있었던 게지요.
속도가 걷잡을 수가 없습니다.
멈출 즈음엔 같이 끌려온 낙엽들로
아주 낙엽온천욕이 되었지요.
낙엽물통 속에 몸이 버둥거렸답니다,
선물입니다, 이 자연이 이 아름다운 날에 준.
모두 어찌나 환하게 일어서던지요.

덤불을 헤치고 나오자
딸기나라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산 끝자락에 천여 평의 공터가 있지요.
봄날이면 온 둘레에 산딸기가 천지를 채우는 곳,
그걸 못 다 따먹고 여름이 오는 곳이랍니다.
한 때 물꼬의 전용헬기가 있었다는 전설(?)도 있는 그곳에서
긴 행렬이 다 닿을 때까지 철퍼덕 주저앉아
다리를 쉬지요.
“아이구, 이 할미 죽거었다.”
그러자 아이들이 양 다리로 달겨들어 주무르기 시작했습니다.
왼쪽 셋, 오른 쪽 셋,
현진이가 있었고 성재가 있었고 하다가 있었고
임수가 있었고 동규랑 수연이도 있었던가요,
마치 개미 다리들이 되었더라지요.
어느새 개미 다리들은 늘어나
문제가 생긴(?) 다리가 물러나면
다른 다리가 몸에서 생겨나 말짱한 개미가 됩니다.
이게 또 놀이가 되어 우리는 딸기나라 떠나도록
웃어제꼈지요.
아이들이랑 함께 하는 날들은
온통 놀이고 온통 즐거움이랍니다.

어디 산에 오를 때만 그런가요,
애들이 아니라 늘 샘들이 문제입니다.
“내 깊은 고민이 뭐라 그랬지?”
“샘들요!”
그러게 말입니다.
아이들의 대답 아니어도
몇 샘이 아이들을 좇지 못해
눈이 핑핑 도는 비탈을 내려오지 못하고 울먹일 양입니다.
자주 안내자한테 집중하지 못하는 걸로
핀잔을 듣는 것도 샘들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계자이고 그러면서 어른들의 계자이기도 하다지요.
“내 깊은 병은 뭐라 그랬지요?”
“마음 넓은 거요!”
“그러하니 용서해주고 간다.”
그러면서 놀고 갑니다, 이 가을 같은 겨울산을.
더러 눈이 남아있기도 하였으나
독한 겨울산은 아니었지요.

그 끝에 또 다른 선물 하나 있었지요.
바다 같이 넓었던 대해리의 호수가 어느 해 11월 갑자기 얼어버려
놀란 청둥오리들 날아오를 적
그 발목에 언 호수가 딸려가다가
그만 툭 떨어져 작은 못이 된 곳,
대해리 뒷산에 예쁜 못은 언 몸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달겨들었고
모두 뒹굴고 아주 난리가 아니었지요.
애도 없고 어른도 없고,
다른 때와 달리 유쾌하고 잡았던 산오름이어
아직 기운 펄펄하여 더욱 잘 놀았겠습니다.
대신 사지를 넘어온 이들이 느끼는 벅참은 좀 덜할지도 모르지요,
영웅담도 별 없을 테구요.
그러나 이런 산오름은 또 이런 산오름 대로
우리에게 남긴 게 있겠지요.

마을로 내려서기 전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
잘려진 나무 한 그루씩 끌고 왔습니다.
땔감으로 쓰려지요.
산판을 하고 거두어간 둥치 끝에 남은 것들입니다.
마당까지 끌고 온 선짐샘이며 아이들이 물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손질할까요?”
가지를 자르고 불 때기 좋게 정리해야지요.
계자가 끝날 때마다 마치 그 계자를 대표하는 듯한 풍경이 남습니다.
그래서 숱한 계자를 하나 하나 각별하게 기억케하기도 하지요.
오늘 이 풍경이 이번 계자의 특징적인 한 장면으로 남지 않을까 싶데요.
또 다른 잔치였던 게지요.
마침 ‘한껏맘껏’입니다.
낮잠을 자기도 할 테고, 씻기도 할 테고,
공기도 하고 수다도 떨고 안팎을 들락거리기도 할 텐데,
샘들 중심으로 밖에다 일거리를 벌여놓으니
이 녀석도 나오고 저 녀석도 나옵니다.
‘여기 사는 사람들처럼, 이웃처럼, 형제처럼’
산골에서 날마다의 삶을 이어가는 이들처럼
(땔감을 하는 일은 너무도 중요한 산골 겨우살이의 일상이지요)
그렇게 모두 달려들어 분지르고 정리하고,
어느새 한 짐 나뭇단이 거기 있었지요.

저녁을 먹고 산오름 후일담들을 정리하고
고래방으로 건너가 강강술래도 하고 놀지요.
남생이들이 나와 춤도 추고
그 가운데를 금비가 날아갈 듯 튕겨 나오고
태현이가 물구나무를 서고
동규가 흔들춤을 춤을 추고
그런 신명이 없었답니다.
한동안 ‘청어엮기’는 아는 이들이 원 가운데서 소개를 하는 것으로만 그쳤는데,
오늘은 산오름도 가뿐했던 덕에
아이들도 모두 다 마지막 사람이 빠져나올 때까지
청어를 엮고 풀었습니다.

그리고 촛불잔치.
잘 말하고 잘 듣는 아이들입니다.
닷새를 돌아보며 아주 낮은 목소리와 큰 귀들이 둘러앉았습니다.
물꼬가 전하는 마지막 말이 끝나자
어, 아이들이 울기 시작합니다.
철현이 원석이를 시작으로
자주 오가던 현진이도 지인이도 해인이도 울고
천방지축 금비에 재용이까지 울며
샘들이 당황할 만치 아이들이 아쉬움을 토했지요.
그 옛날 지금 대학생인 샘들이 모였던 10여 년 전 어느 밤처럼.
꺼이꺼이 울기까지 하던 그 아이들이
지금 주축으로 계자를 꾸려가고 있답니다.
지금 울음을 터뜨린 이 아이들도
또 10년 뒤 이곳에서 우는 아이들과 함께 있게 되려나요?

온 마을이 들썩이도록 아궁이에서 막 나온 감자 숯댕이싸움 한 판하고
가마솥방에서 특별식으로 나온 누룽지튀김을 씹으며
마지막 밤의 모둠 하루재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4모둠방을 지나갑니다.
샘이 묻데요.
“물꼬에서 얻어가는 것이 있으면 말해볼까?”
희수: 잘 모르겠다.
성빈: 이메일 친구 하다
금비: 손뜨개질법
화원: 친구
재용: 우정, 재밌는 놀이
윤정: 공기실력, 친구
성재: 친구, 배려, 나눔, 독립

고마울 일입니다.
이 고운 시간들...
아이들이 이렇게 훑고 가면 저들을 잘 지켜야지 싶고
잘 살아야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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