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봄길 사흘째, 2월 27일

조회 수 1609 추천 수 0 2004.02.28 08:02:00
< 봄 들판 심메마니들>

4337년 2월 27일 쇠날 다시 봄 햇살

시 ‘냉이’로 아침을 열고
낮엔 봄 들로 냉이를 캐러 나갔다가
저녁엔 그 냉이로 국을 끓여먹은 하루였네요.
살아있다는 게 기쁘기야 어느 계절이 그렇지 않을까만
부산한 봄 들에 서면 기쁨이 마냥 차오릅니다.
모든 것이 믿기지 않을 만치 아름답지요.
새들은 저마다 바쁘고,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은 나무에서 툭툭 불거져 나오는 새순들,
이 봄, 정말이지 천지가 분주합니다.
봄 햇살 무색하게 물은 아직도 얼마나 차가운지,
아직 눈이 깔렸는데 봄풀들은 어쩜 그리들 뻗쳐올랐는지,
어깨에 내려앉는 햇살은 어찌나 다정스러운지,
차례를 놓치지 않으려고 바삐 온 봄의 흔적들로
까무라칠 만큼 황홀해집니다.
그런 들녘으로 나간 거지요.
대해리에서 봄이 젤 먼저 왔지 싶은 언덕배기 밭 가에
도르륵 한 줄로 섰더랍니다.
남의 밭둑을 그만 다 뭉개고
요만한 것까지 냉이 씨를 아주 말렸습니다.
그 서슬로 아이들은 묵은 도라지에 묵은 더덕도 건져올렸답니다.
밭 주인한테 지청구 안들을려나 모르겠네요.
아니다, 까닭이 있는 일이니 지청구라 하면 아니 되겠고,
혼쭐나지 않을라나…
태정이 연규 지윤이 하다 유진네들이
너무나 뿌듯하게 부엌 선반에 올려놓은 냉이들은
아, 글쎄 씻으니 흙이 반입니다요.
태정이가 한데모임에서 그럽디다.
“저는 오늘 봄들 시간에
냉이 냄새도 맡고 그 느낌이 참 좋았어요.”
냉이 내음, 봄 내음, 봄 들, 봄 산, 봄 시내…
원영이와 헌이는 뿌리들을 내밀며
졸음에 겨운 저를 흔들어 산삼 아니냐 묻습니다.
묵은 뿌리들은 사람 흉내를 내며
마치 산삼 혹은 인삼을 연상케 했지요.
엄마를 위한 선물이라며 꾸역꾸역 흙을 묻힌 채 가방에 쑤셔넣는 아이들…
냉이국 저녁으로 얼마나들 풍요로웠던지
김장해놓은 겨울살림 같은 풍성함으로
배들을 두드리며 앉아서
더러는 뒹굴고 더러는 책을 읽고 더러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현규랑 태한이랑 연규랑 저는
강당에서 팔이 떨어져라 풍악을 울렸지요.

오전에는 오는 학년을 맞느라 법석댔네요.
새로 맞은 학년을 위해
지닐 마음들, 지닌 마음들에 대해 오래 얘기를 나눕니다.
참 귀한 시간입니다.
애고 어른이고 같이 앉아서
꿈을 나누고 삶을 얘기하는 자리는
언제고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어쩜 이리도 잘 얘기하고 어쩜 이리도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는지,
우리가 언제 또 이렇게 다른 이의 삶에 이토록 귀기울여 본 적이 있었나 싶게
경이로운 시간들입니다.
봄이어서 더 생동하는 느낌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얘기가 그러모아지고 난 뒤 그림놀이들을 했습니다.
벽걸이도 만들고 나무도 깎고 매듭도 하고
한 해 내내 공부방에 걸어두고 처음 이 마음들을 새기자 하였지요.
그 끝의 일본어 시간엔
일본 문화에 대해 휘저어 봤더이다.

어제는 여러가지 음식을 골라가며 내었는데
오늘 보글보글방은 죄다 만두를 빚었습니다.
온 식구가 다 말입니다.
만두피를 밀고 만두소를 만들고
빚어오는 만두를 한 켠에서 구워내고
돌아가며 서서만두를 먹었지요.
다시는 쳐다도 안볼 만큼 먹었더랍니다.
마지막엔 만두국까지.
햐, 좋데요, 맛있데요, 그리고 재밌데요.
일곱 번 계절학교를 왔는데 여섯 번 호떡을 빚은 원영이는
이제는 만두가게 낸다 하겠습디다.
유진이는 만두피를 미는 것도 만두소를 넣는 것도 참 참합니다.
오빠보다 더 의젓한 태린이, 천방지축 경은이, 시끄러운 하다, 여우 지인이,
일곱 살들도 다 지먹을 것들 빚어냅니다.
유선샘은 첫날 우리들이 노래부를 때 이 일곱 살들 보며
글씨도 모르는 이녀석들은 그들에게 맞는 노래를 따로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고개 갸우뚱거리다가
아, 노래란 것이 어차피
구전으로 듣다가 알게 되는 게 그 속성 아닌가 깨달았다지요.
유선샘은 돌아가서 좋은 후원자가 되겠다 약조를 합니다.
이 공간이 아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치유’의 장이 되겠다는 생각이 오래 붙들더라지요.

바다싸움도 기를 쓰고 하고
강강술래도 하늘에 닿을 듯이 뛰고
낼 죽어도 좋을만치 감자싸움을 즐기니
오늘 하루도 다 저물었네요.
아이들이 소박하고 단순한 이런 삶을 살다가
어느날은 지겨워지면 공부도 좀 하겠구나,
짐작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 학교의 움직임을 그려볼 수 있고,
더욱 신뢰가 간다는 무지샘,
두 아이의 학부모로서, 훗날 아이들을 맡길려고 작정한 이로서
그의 긍정적인 눈은 물꼬를 참 힘나게 합니다.
시작하자마자 마지막 밤이 된 영동 봄길,
대해리로 성큼성큼 들어선 아이들로부터 이 봄으로부터
불쑥불쑥 살맛 솟는 시간들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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