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13.나무날. 맑음 / 영동초 특수학급의 물꼬 방문


한 초등학교로 출퇴근을 하게 된 5월이지만
오늘 하루는 대해리에 있었습니다.

심하게 앓고 났더니 세상이 참 싱그럽게 다가오지요.
이른 아침 아이랑 숲에 들어갑니다.
나무 아래선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마침 오늘 영동 초등학교 특수학급 아이들이 들어오기로 했습니다.
아이들과 거닐 곳들을 두루 살핀 뒤 달골을 내려왔지요.

청소를 한바탕 하고,
어젯밤 꺼내두었던 빙수기계를 살폈습니다.
서울 황학동에서 그 옛날 분식집에 있던 묵직한 빙수기를
오래 전에 사두었더랬습니다.
가끔 사람들이 모이는 여름날 이렇게 꺼내지요.
얼음은 몇 날을 얼려두었더랍니다.
불려두었던 팥을 삶아 고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빙수기 날에 녹이 슬어있습니다.
그 큰 걸 뒤집고 분해한 다음 사포로 밀고
숯돌 가져다 갈았답니다.
이런 순간, 참 좋습니다.
무슨 대단한 기계를 만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기술자라도 된 양 뿌듯해지는 거지요.

10시, 담임교사와 보조교사 둘, 그리고 아이들 여섯이 들어왔습니다,
아주 아주 커다란 수박을 둘이나 싣고.
순찬, 종문, 문영, 경미, 현성, 민지.
빙수기계를 살펴보느라 부엌 준비가 좀 늦어졌는데
류옥하다가 그들에게 학교를 안내하는 동안
시간을 벌어 정리를 마저 할 수 있었지요.
종도 쳐보고 마당에서 공도 한 번 차보고,
고래방에서 조명도 켜서 무대에도 서보고,
시커멓고 커다란 새로운 세계가 보이는 재래식 화장실도 들여다보고,
다시 가마솥방으로 사람들이 돌아왔습니다.
“다음 안내를 하겠습니다.”

달골에 오릅니다.
길가 나무들이 제법 그늘을 만들고
풀들이 오뉴월 볕아래처럼 키를 키우고 있어
달맞이길이 마치 숲길 같았지요.
계곡을 지나고도 한참을 걸어 창고동에 닿았습니다.
마침 먹기 좋게 녹은 얼려두었던 인절미를
바닥에 모여앉아 먹었습니다.
창으로 하늘이 성큼 걸어들어오고
키 큰 호두나무 가지 끝이 자꾸 기웃거리고 있었지요.
춤명상 곡들이 그 위를 흐르고 있었습니다.

달골 뒤란을 지나 숲에 들었습니다.
더덕을 캐려지요.
더덕향이 세상을 다 채울 듯하더이다.
학교 부엌 뒤란에서 이미 더덕 하나를 보여주며
잎의 특징, 잘랐을 때 나오는 하얀즙, 그리고 뿌리를 보았던 터였지요.
엉덩이를 높이 치켜들고 열중입니다.
뭔가를 캐면, 그게 퍽 재미가 있지요.
고사를 꺾을 때도 취나물, 참나물을 뜯을 때도,
그리고 버섯을 딸 때도 그러합니다.
애고 어른이고 일어설 생각을 않습니다.

1시, 내려와 국수를 먹습니다.
색깔이 화려한 물꼬 국수!
“세상에서 젤 맛있는 국수예요.”
아이들의 극찬이었지요.
배가 얼마나들 고팠던 걸까요.
2시에 류옥하다의 안내를 받으며 계곡으로들 갔습니다.
어쩌다 평일 하루를 대해리에서 보내고 있으니
홀로 점심을 드실 이웃 할머니 두 분 오십사하여
국수를 더 말아냈지요.
사는 거 별 거 없다,
이렇게 밥상을 나눌 때도 그런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첨벙대고들 돌아왔지요.
간식을 냅니다.
어른들을 위한 월남쌈,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후렌치토스트와 사과잼, 팥빙수, 레몬에이드.
3시를 넘기며 사람들이 떠났지요.
“아, 좋다.”
어디가 안 좋을 것인가요, 이 5월의 산골.
좋은 어른들이 있어, 예쁜 아이들이 있어 더 좋았습니다.

들어왔던 차들이 나가자마자
뱀할아버지랑 앞집 할머니 건너오십니다.
“오늘은 안 바빠?”
“어디요, 그런데 막 왔던 사람들이 나간 참이라...”
술 한 잔 내지요.
오랜만의 오후의 여유를 같이 즐겨주셨습니다.
젊은 날의 시름겨웠던 가난한 삶을 들려주시는 조중조할아버지는
늘 당신을 챙겨주는 학교가 고맙다, 고맙다 하시고,
홀로 외로운 이모할머니(앞집 할머닐 우린 그리 부릅니다)는
가까이 젊은 사람 있어 고맙다, 고맙다 하십니다.
하지만 어르신들한테 학교가 더 고맙단 걸
굳이 말해야 어디 아나요.
“바쁘쟈?”
괜찮다고 더 앉았다 가시라 해도
이 너른 살림 모르지 않으시니 일하라 배려도 하는 당신들이라지요.
기분 좋게 돌아가시는 뒷모습에
덩달아 사는 일이 따숴집디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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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5.13.나무날.더움 / <더덕>

오늘은 영동초 특수학급 애들이 와서 더덕도 캐고, 장난감으로도 놀고, 재밌는 물놀이도 했다.
더덕은 잎이 네 장이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구조다. 그래서 발견하기가 쉽다. 그리고 줄기를 자르면 하얀색의 피같은 액체가 나온다. 향은 진하면서 톡톡 튄다.
먹는 부분은 뿌리이고, 뿌리가 다치지 않게 겉을 캐야 한다. 그러나 줄기가 크다고 뿌리가 큰 건 아니다. 오히려 줄기가 작은 게 더 굵은 경우가 많다.
더덕의 서식지는 햇발동 옆의 무덤 뒤쪽, 봄~가을에 캔다.

(열세 살,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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