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자 둘쨋날 1월 6일

조회 수 1926 추천 수 0 2004.01.07 08:58:00


관계에서 서로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그게 얼마나 귀한 일인지를 누군들 모를까요.
나아가 서로를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이
얼마나 살 맛나는 일인지 누구인들 모를 수 있을까요.
오늘 한데모임에서 인석이가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도서관에 있을 때
연규가 원교에게 책을 읽어주고 발음도 고쳐주는 걸 보았는데
감동적이었습니다."
세이샘도 하루재기에서 연규 얘기를 합니다.
"도서관에 가서 그런 걸 했더니
원교가 착한 걸 알겠더라고 하는
연규한테 감동받았어요."
혹 꺼릴 수 있는 원교(약간의 장애가 있는)를 잘 안아내는 연규도 연규지만
모두 앉은 자리에서 그것에 감동했다고 전하는 인석이도
참으로 감동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 참말 자랑스럽습니다!

오늘 저녁 먹기 전 동네어른 특강에
대해리보건진료소장님 오셔서 국선도를 한 수 전하셨지요.
다 끝내고 일어설 무렵 조 뒤에서 어느 녀석,
"아이구, 시원하다!"데요.
동네어른들을 모시고 하는 공부,
물꼬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상설학교로 문을 열면
와 주시겠단 어른들이 예순은 족히 된답니다.
정육점 주인도 있고, 자전거 수리점 아저씨도 있고, 시계방 주인,
버섯농사, 벼농사, 호도농사 지으시는 분들도 있고,
감물 들이시는 분, 소리하시는 분,...
"어르신께서 살아오신 지난 세월에 깊이 고개 숙입니다.
그동안 얻으신 삶의 지혜를
저희 아이들에게도 나눠줄 수는 없으실지요?"
그렇게 어른들께 부탁했더랬습니다.
그 시작을 소장님이 해주신 게지요.
기꺼이 와 주셔서,
(일찍 오셔서 아이들 하는 양을 돌아보기도 하시고)
어찌나 마음 고마웁던지요.
평생 이곳에 살며 그 덕들을 갚으며 살자 합니다.

떡을 중심재료로 놓고 보글보글방을 하고 있을 때
오랜만에 교실을 맡지 않은 참에
면내 우체국에 급한 우편물들을 보내러 갔습니다.
쌀도 사야겠고.
마침 임산 장날입니다.
마을 가까운 곳 어른들도 뵙고.
장 한 차례 휘 둘러보고 강정도 사서 실었습니다.
올 겨울은 만들지 않고 파는 강정 한 번 먹자 합니다.
짧은 계자 일정 안에서 이런 나들이는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일정이 기니 정말 일상 같아서
이렇게 학교안 일말고도 밖으로 나올 수가 다 있습니다.
아, 이렇게 학교가 일상이 되어가나 봅니다.

오늘은 손말(수화)을 배우기 시작한 첫날입니다.
자유학교 노래 1, 2를 부릅니다.
어쩜 이런 시간표에 물꼬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들어있지 않을지요.
우리가 우리말을 공용어로 쓰고 있듯
손말이나 점자도 공용어로 배우고 익혀야 한다 주장합니다.
외국어 배움처럼.
아니, 그 보다 먼저해서.
계자를 왔던 놈들이 좋은 스승이 되어줍디다.

열린교실에서는 학과 공부가 시작되었네요.
갈갈이 갈라놓은 과목이 아니라
이름이야 그 이름을 지녀도
보다 통합된 교과에 예술이 고명으로 얹힌 공부를
대학 수강신청처럼 저들이 골라잡아 들어갑니다.
이것 또한 자유학교 물꼬가 오래 실천해오고
앞으로 더 많이 다듬어야할 꿈이지요.

대동놀이 풍경,
이렇게 재밌는 날이 없었지 싶습니다.
진행자로서 평가하자고 들면 최상의 놀이였다 말할 순 없는데
그게 한 프로그램으로서의 자리가 아니라 일상의 한 부분으로 보자 드니
보는 재미도 달라지더이다.
토끼 사냥꾼 다리 사이로
잡힌 토끼가 다른 토끼한테 구원을 요청하는 팔을 내미는 것하며,
자잘한 움직임 하나 하나가 어찌나 웃음을 만들던지...
마칠 무렵, 아이들이 간절한 눈빛으로 하나만 더 하잡니다.
"길잖아!(날 많잖아!)"
군말없이 강당을 나섭니다, 우리 아이들.
보름, 참 좋습니다.
그리고 역시 새끼일꾼들이 있어야 합니다.
양념이라니까요, 양념.
동애따기 한 판하는데 새끼일꾼을 앞세운 두 패가
머리끼리 엉켜서 도저히 앞으로 나아가지가 않는데
그 질긴 엉킴이 하는 놈도 보는 놈도 마냥 신나게 합니다.

양 덩어리 어린 녀석들이 가만히 앉아서만 얘기를 나누자 하면
어찌 지루하지 않을라구요.
그런데 한데모임이 꽉찬 한 시간을 좀 넘기는데,
죄다 갈수록 진지함을 담아 열띠게 의견을 나누는데,
허 참, 그 무게도 무게지만
잘 듣고 잘 말하는 풍경의 강도가 갈수록 깊어지는데,
홍주같이 나서기 꺼리는 녀석도
말 좀 해보라 할 때 얼굴 찡그리며 고개 가로젓다가
금새 마음 고쳐먹고 할 말을 하는데,...
동주, 효석이, 채규, 승진이, 혜린이, 예님, 윤님, 인석이, 도형이,...
어찌나 야물게들 자기 생각을 전하고
또 어찌나 잘 듣고 답하는지,
책방에서 음식을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모둠방 안에서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가 없는가,
강아지 저미를 조물딱거리는 문제를 어찌할 것인가,
그냥 다수결이 아니라
서로 충분히 왜 그래야 하는가를 설득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말하기라면 참 할만하겠다 싶습니다.
굳이 우리 정치판이 아니더라도
세상 누구든 와서 좀 보아주었음 좋겠다 싶기까지 합니다.
이런 학교면 정말 선생질 할만하지 않겠는지요.

오늘 승진이는 또 명언을 남겼습니다.
"냅둬!"
누가 강아지를 만졌는데 좀 달래니 자기는 안줬다고 싸운 이야기가 시작이었는데,
그럼 강아지를 어찌할 거냐로 이야기는 이어지고
그에 대한 승진이의 의견 한마디였습니다.
모두 그냥 박수를 쳐댔지요.
아까 연규의 소식을 전한 인석이의 말끝처럼.

운동장엔 마사토가 첩첩산중을 이루고 있고
아이들은 돌과 마사토 사이에서
저마다 놀이법을 발견하고 정신없이 하루를 흘립니다.
건물 안에선 때로 고요하게 때로 대단한 일렁임으로
하루를 채워나갑니다.
평화, 그래요 평화는 이럴 때 주려고 준비한 말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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