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자 세쨋날 1월 7일

조회 수 1922 추천 수 0 2004.01.08 09:45:00
< 계자 세쨋날 1월 7일 >

* 이번 계자에선 학교에서 사는 이야기를 날마다 써 보려합니다.
평가글이라기에는 터무니없이 모자라겠고
그저 드는 마음을 가벼이 꺼내는 정도이겠습니다.
예전같으면 빠듯한 일정에 상상도 못할 일이겠는데
보다 일상적이어서 시도해보는 거지요.
얼마나 지켜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아이를 지금 이곳으로 보낸 분들껜
작은 위안일 수 있지 않을까 헤아려봅니다.


무지 뛰어다녔던 아이들은 픽픽 쓰러지듯 잠이 들고
갈무리하던 샘들도 방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곧 작은 해우소만 빼고는 건물 안 불이 다 꺼지자
사물들의 세계가 달그락거리기 시작합니다.
달빛 앉은 지붕,
달빛 걸친 나무,
그 달빛 이제 제 어깨로 앉습니다.
달빛만으로 세상이 얼마나 화안한지,
운동장을 오래 거닐어봅니다.
돌 깔린 마당은 마치 바다같아 보입니다.
쌓아놓은 흙들은 이제 떠 있는 섬들이 되네요.
거인이 되어
그 섬과 섬 사이를 뚜벅뚜벅 걸어다닙니다.
아이들도 그렇게 놀았겠습니다.

아이들로부터 가장 크게 배우는 것이 무엇이더냐 물으면
용서라고 맨 먼저 대답하겠습니다.
우리는 두고 두고 얼마나 곱씹더이까.
그래서 내 상처도 더 커지고 그의 상처도 더 아리게 하는.
그런데 아이들은 돌아서면 잊지 않던가요.
그 건강함을 날마다 날마나 경험하며 배운다 하겠습니다.
아이들끼리 갈등이 일면
이놈의 선생이란 작자들 혹은 어른들은
먼저 자기가 뭘 해야만 하는 줄 압니다.
도대체 가만두지를 못해요.
그래서 때로는 잠시 지나면 아무것도 아닐 일을
긁어 부스럼 만들거나,
반면 정말 아이들에게 첨예할 수 있는 문제를
암 일도 아닌 양 스쳐서 어린 가슴에 상처를 안기기도 하고.
아이들일수록 정작 다른 일을 통해 관계를 쇄신하기 잘하지요.
치고 박고 싸워서 분이 풀리지 않은 채로도
같이 연 한 차례 날려보고 나면
그만 훌훌 그 연처럼 아무렇지 않은 일들도 쌨지 않더냔 말입니다.

별 것 아닌 것들로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지를 배우는 것도
아이들로부터 얻는 큰 지혜지요.
돌을 던져 살짝 언 가장자리 얼음 좀 깨는 일로도
작은 흙더미를 오르내리는 일로도
겨울 나뭇가지를 올려다 보는 일로도
세상을 다 얻은 듯 웃어대는 걸 보면
그 소박함에 진리가 다 있다 싶지요.
별 것 아닌 걸로 행복할 수 있는 시기가 많지 않다 하지만
틀린 표현이다 싶어요.
그 시기는 널려있는데
그걸 알고 누리는 때가 많지 않은 거지요.
소박함이 빛나는 자리,
그 빛을 누리는 자리,
대해리의 계자입니다.

오늘은 아침이 참 부산스러웠지요.
꼭 3년 전 그러니까 2001년 1월 6일 어느 모둠에서 타임캡슐이란 걸 묻었습니다.
3년 뒤 판다하였지요.
그때 바로 그 모둠에 있었던 무열과 호열이
이번 계자에 함께 한 새끼일꾼들입니다.
기억을 잘 살펴 땅을 팠으나 찾지 못하고 힘을 빼더니,
그때의 계자 사진모음을 뒤적여 다시 파도 역시 못찾더니만,
오늘 새벽같이 기어이 찾아낸 거지요.
아침 산책을 나갈 참인데
아이들은 거기서 나온 선배들의 옛적 편지를 뒤적이느라
한참을 꼼짝 않았네요.

물꼬생태공동체 식구들은 꼭 아이들 같습니다.
아니 이곳을 오면 누구라도 그리 된다 싶어요.
맑다고 해야 하나, 좀 덜 떨어졌다 해야 하나...
여튼 누군가 다녀가면 어린애들처럼 그들의 말투를 한참을 따라하는데
마치 아이들처럼요,
연극을 올리고 난 뒤 오랫동안 그 연극대사를 일상에서 되내이는 것처럼,
괴산에서 달포 전 총각 하나 다녀갔는데,
"거기 서시오! 저리로 가시오!"
그게 그 총각의 어투였댔지요.
근데 한참 물꼬에서 그 총각을 따라 말하고 있습니다.
"앉으시오!"
"나오시오!"
특히 대동놀이를 할 량이면 그 말 땜에 더 많이 웃는다지요.
그렇게 이곳을 다녀간 이들을 오래 추억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또한 그리 기억하듯이.

재철샘과 의정샘,
이 계자에 함께하고 있는 원교의 부모님이며 도움꾼으로 오셨지요.
샘들 하루재기 할 동안
밤마다 두 사람이 돌아가며 빠져 여자방 남자방으로
아이들 잠바라지도 하고 동화책도 읽어주러 들어가는데,
마침 두 분이 그 일을 맡으셨습니다.
두 분은 아이들 동화책을 미리 읽고 있습니다, 난롯가에서.
그 준비가 얼마나 따스한지...

'하다'가 저녁답에 달려와 자기 콩 먹었다 자랑합니다.
먹어보랬더니 콩자반을 들고 와 젓가락질 한창입니다.
"나름대로 맛있어."
자기 한계를 뛰어 넘는 지점, 혹은 뛰어넘는 계기들이
살다보면 있지요.
여기가 그런 계기의 장이 되는 아이들을 참 많이도 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어른이든 아이든)이 겪는 변화가
이곳에 사는 기쁨을 배가시켜줍니다.

중 2가 되면 물꼬에서는 새끼일꾼 자격을 얻습니다.
초등 6년까지는 아이편이었다가
한 해의 간격을 둔 뒤 어른들편으로 설 수 있는 거지요.
정확한 자리매김이야 어른과 아이 사이 다리 역할을 하는 거지만
그 움직임으로 보자면 고스란히 어른과 함께입니다.
샘들 하루재기에서 새끼일꾼도 함께 앉아 있으면
어데서 그 나이들이 어른들이랑 같은 처지에서
의논을 하고 생각을 나누고 하겠는가 싶어요.
여기니까, 여기라서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는 게지요.
새끼일꾼들의 자람이 늘 기대됩니다,
정말 괜찮은 어른들이 될 거라는.

아침 산책길,
물꼬 2004학년도 새학생이 되려 준비하는 녀석들도 몇 있었는데
저들끼리 나름대로의 각오와 살 날에 대한 그림들을 내놓습니다,
진한 연대감까지 교환하면서.
소리 없이 웃으며 곁에서 걸었지요.

오늘 대동놀이는 달음박질과 물꼬축구를 하였지요.
지후 영후 채경 하다 윤슬 승진 경은...
조막만한 녀석들이 젤 바쁩니다.
상대편의 거물들을 팔다리 잡아 답체 놓아주지 않고
그 격렬한 틈바구니에서 몸을 비벼대는데
이야, 이건 도저히 실황중계가 안돼요.
사이에 낀 음악에 따라 춤을 추노라면,
그만 훨훨 하늘도 날지 싶습니다.
힘이 세면 센대로 약하면 약한대로 신이 나는
물꼬식 대동놀이는 참말 명품입니다.

손말(수화)로 자기 소개하는 걸 배웠구요,
열린교실 겨울살이는 이틀로 접어들었습니다.
동네어른 특강이 오늘은 우리 가락 시간이었고
학교 구석구석에서 소리도 하고 장구도 치고 쇠도 북도 쳤습니다.

아이들이 물꼬를 오면 가장 힘들다는 것이 화장실이었습니다.
그 깊고 넓은 시커먼 세계가 주는 공포가 참 컸지요.
위에서 볼일을 보면 한참이 지나서야 소리가 들리는,
우리 상상력의 모든 무서움이 들어있는 푸세식
냄새도 유쾌하달 수는 없는.
그런데 아직 타일이며 벽칠이며 남은 일이 많긴 하나
작은 화장실을 지금 쓰고 있습니다.
왔던 녀석들은 그저 탄복하고
큰 화장실을 다녔던 무용담을 들려주는 것 또한 잊지 않습니다.
일을 시작해주고도 멀리서 걱정많던 도움꾼 한대석님,
직접 움직여 배관을 해주신 박득현님,
작은 화장실에 함께 한 모든 손과 마음에 다시 고마웠지요.

몸풀기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네요.
그저 몸 건강하게 모두 운동 좀 하자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평생 짊어지고 갈 몸뚱아리이므로
(그래서 물꼬에서는 올바른 먹을 거리에 많이 집중하지요)
요가를 하든 국선도를 하든 몸을 들여자 보자합니다.
그래서 몸풀기는 결국 몸을 마주대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내 몸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거지요.
알고도 모르고도 우리는 몸을 얼마나 혹사시키고 사는지.
몸에 의식을 집중해보자는 겁니다.
결국 그것이 결과적으로 건강을 불러들이는 거겠지만.
몸을 풀고 고요하게 오래 자신을 바라봅니다.
아이들 속에 흐르는 그 고요가
고스란히 내적인 힘이 될 것을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겨울계자에서는 털실로 뭘 하나 꼭 만들었지요.
목도리든 귀마개든 조끼든 덧버선이든.
이번 참은 날이 길기도 하여서 아직 실과 바늘이 머네요.
햇볕 넘쳐오는 창가,
아이들의 재잘거림 사이에서, 배를 깔고 책을 읽는 아이들 사이에서
뜨개질하며 가끔 부르는 소리에 대답을 해주노라면
천국이 이렇게 이름지어졌겠구나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아직 시간이 있다,
그것이 얼마나 많은 걸 뜻할 수 있는지 새삼스럽네요.
아직 살아 계신 어머니,
아직 남아있는 길,
언젠가 돌아올지 모를 그리운 이,
아직, 아직, 아직!

시간과 시간 사이 무수한 노래들과 소박한 놀이들
그리고 우리들의 깔깔거림으로
계자 세쨋날도 술러덩 넘어갑니다려.
그저 세상이 고맙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1816 2009. 1.29.나무날. 흐림 옥영경 2009-02-06 1212
1815 2009. 1.27.불날. 맑음 옥영경 2009-02-06 1171
1814 2009. 1.26.달날. 날은 맑으나 또 눈 옥영경 2009-02-05 1076
1813 2009. 1.25.해날. 내리고 또 내리는 눈 / 설 옥영경 2009-02-05 1517
1812 2009. 1.24.흙날. 눈발 옥영경 2009-02-05 1168
1811 2009. 1.23.쇠날. 눈 옥영경 2009-02-01 1030
1810 2009. 1.22.나무날. 흐림 옥영경 2009-02-01 1061
1809 2009. 1.21.물날. 흐림 옥영경 2009-01-31 1154
1808 2009. 1.20.불날. 봄날 같은 볕 옥영경 2009-01-31 1152
1807 2009. 1.19.달날. 싸락눈 내렸네 옥영경 2009-01-31 1037
1806 2009. 1.18.해날. 오전 비 옥영경 2009-01-31 1021
1805 2009. 1.17.흙날. 맑음 옥영경 2009-01-31 1029
1804 2009. 1.16.쇠날. 맑은 속에 눈발 잠깐 옥영경 2009-01-29 1092
1803 2009. 1.15.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9-01-29 1060
1802 2009. 1.14.물날. 맑음 / 이장 취임식 옥영경 2009-01-28 1230
1801 2009. 1.11-13.해-물날. 눈, 눈 옥영경 2009-01-27 1535
1800 2009. 1.9-10.쇠-흙날. 맑다가 눈발 / 129-1 계자? 옥영경 2009-01-24 1266
1799 129 계자 닫는 날, 2009. 1. 9. 쇠날 / 갈무리글들 옥영경 2009-01-24 1639
1798 놓쳤던 몇 가지 옥영경 2009-01-27 1112
1797 129 계자 닷샛날, 2009. 1. 8.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9-01-23 1349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