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자 여섯쨋날 1월 10일

조회 수 2042 추천 수 0 2004.01.11 21:44:00
< 한껏맘껏요! >

"지금 무슨 시간이니?"
"한껏맘껏요."
"그럼, 다음에 뭐 할 거니?"
"한껏맘껏요."
한껏맘껏을 좀 길게 하나 부다 했대요.
"그럼 앞에는 뭐 했니?"
"한껏맘껏요."
애들이 장난치나부네 했답니다.
그런데 죙일 한껏맘껏이더라는,
오늘 합류한 새끼일꾼 형석의 말.
그래요, 해날 흙날이 서로 일정을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곰사냥은 낼 떠나기로 했고
오늘은 죙일 한껏맘껏이었습니다.
운동장에서는 죙일 축구를 하고
1,2 모둠방에서는 죙일 바느질과 스킬을 하고
부엌 불가에선 죙일 매듭을 땋고 종이를 접고
(연규는 젊은 할아버지의 종이접기 전수자가 되었습니다.)
책방에서는 죙일 책을 읽었더랍니다.
인석은 자기도 어려워하면서도
효석이를 챙겨가며 매듭을 하고
그 인석,
축구가 좋아서 집에 안가도 좋다, 9일 정도는 견딜만 하다더라네요.
그 효석은 온몸으로 달려 공을 좇아다녔구요.
더러 산책을 나가고
작업실에선 곰사냥을 위한 무기생산에 여념이 없고
못다한 청소를 하기도 하고
우르르 머리도 감으러 가고 귀도 닦고...
우리 원교는 손으로 하는 걸 그리 잘 하더랍니다.
스킬도 원교가 갖고 온 거였고
매듭도 의정샘이 오래 가르쳐서 기어코 해내고
수학에서 하던 배열 색칠하기도 오래 즐겼다더이다.
그러고 보면 지 몫 지 재주가 다 있어요.

아침엔 호숫가 나무아래 있었습니다.
촛불 앞에서 깊이 바라보기를 했고 마음 다스리기를 했습니다.
내 마음에 들어앉은 나쁜 마음들을 모두 꺼내
종이 위에 하나 하나 옮기고
그걸 갈갈이 찢어내었습니다.
"문정아, 너는 원래 착한 아이야."
"지후야, 동주야, 진만아, 너희는 본래 착한 아이들이야."
'나'는 본래 착한 사람이라고
하나 하나 이름자를 불렀지요.
그 끝에는 집으로 편지도 썼습니다.
벌써 한껏맘껏을 즐기는 아이들도 있고.
"오늘은 내가 대구 좀 다녀올게."
"왜요?"
"가지 마세요."
"안가면 안돼요?"
허허, 진짜 엄마가 애들 두고 나들이 가는 것 같습니다.
"괜찮아, 무슨 일 있으면 상범샘한테 얘기하고
또 다른 샘들이 도와주실 거야."
애처로운 눈으로 꼭 가야 하느냐 물어옵니다.
"사탕 사 오께."
그 말에 그냥 눈빛을 접어버리더이다.
예 있으면 단 게 참 그립거든요.

점심 때건지기를 하고 있을 때
새끼일꾼 형석 동환 운지가 초코파이 들고 나타났습니다.
"서울역이예요. 뭐 필요한 것 없으세요?"
"많지... 그래, 아이들이 다 나눠먹을 수 있을 만큼 초코파이나 좀 사와라."
우리 아해들의 환영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요.
"여기서는 뭐든 맛있어요."
집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겠지요.
"초코파이가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어요."
그렇게들 들어오고
미국 라스베가스를 간다고 인화샘이 나갔고
직장 휴가기간이 끝난 한혜영샘이 돌아갔고
성현미샘이 한 주내내 빨래방을 맡았다(사실은 부엌에 더 많이 붙은) 돌아갔습니다.
교사로 있는, 물꼬의 오랜 품앗이 순옥샘이 들어왔고
오늘은 새끼일꾼 셋이 들어온 것입니다.
빈자리가 나지 않도록들 잘 주고 받으며 오가는 일꾼들입니다.

오늘은 아팠던 놈들 죄다 팔팔 뛰어다녔지요.
정욱이 하나만 열이 조금 났구요,
그래서 그 끊임없는 말운동을 잠시 쉬었더랍니다.
채은이가 저수지 산책 가는 길,
버젓한 길 두고 굳이 언덕으로 오르다가
앞서간 연규가 미끄러진 바람에 입 안쪽을 깨물었답니다.
그냥 깨문거지요, 그게 전부랍니다.
어째 좀 조용한 날이다 싶더니
'하다'랑 호준이가 무기 때문에 한판 붙었답니다.
곰사냥 무기(정확하게는 곰 눈을 찔러 앞을 못보게 해서 잡는)를
서로 자기 꺼라고 싸웠답니다.
만장일치로 하다 꺼라 결정났다는 사실이 호준을 더욱 화나게 했지요.
호준이가 무기를 만들다 만 작은 판때기가 있었는데
그걸 잃었답니다. 시들해져서 그냥 던졌다고도 하고.
그런데 하다는 다음날 무기를 만들 때 작은 판 하나 뵈길래 것다가
이것 저것 붙여서 무기를 완성하였더랍니다.
예 제 무기를 자랑하고 다니는데
호준이가 보니 맨 아래 그 판이 자기 꺼더란 말이지요.
결국 누가 가져도 좋다고 서로 양보했다는데
온 동네 애들 죄다 붙어서서
그 오래고 질긴 싸움에 함께 했더라지요.
어째 또 하루가 무사하다 했더니
예님이가 신발을 잃었더랍니다.
그게 화장실에서 발견되었는데
그걸 새끼일꾼 형석과 무열이 건져서 빨아주었더랍니다.
신발이 왜 게까지 갔는지는
낼이나 한데모임에서 얘기해보자 하였다네요.
오늘은 모둠끼리 하루재기로 한데모임을 대신하니까요.

의정샘과 재철샘은
부엌에서 운동장에서 그리고 잠자리에서
어찌나 자리를 잘 잡고 계시는지
그런 부모님이면 얼마든지 학교에 날마다 오십사 하지요.
"어릴 때 들을 땐 몰랐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참 심오해요."
의정샘이 아이들 옛이야기를 읽어주는데 그런 생각드시더래요.
푹한 품성을 지닌 분들이 아이들 곁에 있어주어서
(원교의 부모님이 계시니 원교에게 자꾸 눈이 덜 가는 나쁜 점도 있네요)
이번 계자의 큰 복이다 싶습니다.

엊저녁 정도가 고비였던가 봅니다,
집에 대한 그리움요.
"지낼 만하니?"
"네. 그런데 엄마 보고 싶어요."
그런데 웬걸요,
오늘 저녁은 마치 여기가 정말 모두의 집이 돼버린 듯 하답니다.
텔레비전이 보고파서 집에 간다고 울먹이던 나영이조차
오늘은 웃고 있습니다요.
이러다 이 녀석들 안간다 그러면 어쩌지요,
우리야 다 키워놓은 애들 얻어서 그만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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