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자 열쨋날 1월 14일 물날

조회 수 2097 추천 수 0 2004.01.16 09:35:00
< 때빼고 광내고 >

예, 짐작대로 목욕탕을 갔습니다.
손에 손마다 작은 비닐봉투 하나씩 들려있었지요.
팬티 하나와 양말 한 켤레가 든.
목욕탕 입장권인셈입니다.
한데모임에서 목욕가면 빨래도 하자 했는데
한 녀석 벌떡 일어나 그랬더랍니다.
"목욕탕은 빨래하는 곳이 아닙니다."
"주인한테 미리 양해를 구했지이-."
중국집 들어가는 표는
빨아진 팬티와 양말이 든 비닐이 되는 거지요.
대동놀이 오늘 왜 안해요, 쟤 왜 울어요, 선생님 무슨 일이예요...
좇아다니며 내내 묻는 그 석현이가 또 묻습니다.
"왜 안가요?"
"니들 없는 학교를 지켜야지."
부엌에서들 읍내에 장도 보러나가고
형길샘은 실밥 빼러 가고
젊은 할아버지와 저는 남았습니다.
젊은 할아버지는 아이들 방 두 칸을 구석구석 치워주셨습니다.
한데모임에서 고맙다는 인사가 넘쳤지요.

황간까지 나가는 버스 안에서 아이들은
이번 계자에서 배운 노래들은 다, 다 불렀답니다.
모임마다 앉아서 노래 풍성히도 불러왔더라지요.
나가는 길 '가뭄'도 불렀는데
그 노래가 후렴으로 넘어갈라치면
꼭 제가 추임새를 넣었더랬는데
우리의 석현선수가 '갈잎물고 나는 간다' 다음
너무나 자연스레 "허이!"했다나요.
그 순간 이게 무슨 소린가 싸아하니 정적이 잠시 흐르고
아이들 갑자기 "와아!" 감탄사를 연발했다나요
제법인데, 뭐 그런 뜻이었겠습니다.
아쉬운대로 만든 물꼬노래집,
나름대로 성공했습니다요.
올해 초등 교사 3년차인 순옥샘은 돌아가면서
노래집에서 몇 개 복사해갈 수 있겠냐 물었더이다.

대중목욕탕을 첨 가본 아이들도 많았지요.
그래서 다녀본 아이들이 나름대로 안내를 맡기도 했다더이다.
모둠별로 늘어서서 때를 미는데,
때, 때, 때, 많이도 밀려나오더라나요.
남탕,
새끼일꾼 동환은 손발톱을 깎아주고
형석은 로션을 발라주었다지요.
돌아오는 버스 시간이 1시간여 여유가 있어
황간역 너른 마당으로 올랐더랍니다.
얼음땡에 숨바꼭질에 추워서 못했던 바깥 대동놀이를
걸루 대신들 하였다네요.
돌아오는 버스,
한 아주머니 우리 애 둘을 무릎에 앉혔다는데,
내리려던 전 역에서 일어서서 자리를 주셨답니다.
아주머니는 일찌감치 일어서 차가 섰을 때 문 앞으로 가 있다
다음 역에서 내릴 량인데
문이 닫히고 버스가 움직이려 하자
아주머니가 내릴 건데 못내린 줄 알고
의기의 진만 선수,
"잠깐만요!"
외쳤더랍니다.

한데모임 전에는 꼭 싸움 한 판이라니까요.
그게 말입니다, 역시 죄다 모여들다 보니 그런가봐요.
요새 딱지치기가 아주 유행인데
호준이 경민이 석현이가 얽혀들어간 소란이었지요.
그 전에 막 재헌이랑 호준이가 한판 했대나 어쨌다나.
호준이 종합장 앞 뒤가 찢겨져 있었는데
걸루 경민이가 버려진 종인줄 알고 딱지를 접었겠지요.
호준이는 나중에 쓰겠다 한쪽에 치워둔 건데...
석현이가 경민에게서 그 딱지를 땄는데
호준이가 석현이 걸 뺏아갔다지요.
자기 종이니까.
내가 만들었는데 왜 뺐냐,
내 종이 아니냐,
그랬겠지요.
곁에서 상범샘이 그럼 돌려주면서 접은 걸 풀어서 줄 거냐,
그러면서 조율을 하고 있는데,
둘은 너무나 심각한데, 무지무지 심각한데
둘의 상황이랑 전혀 상관없이 앞에 있던 석현,
내 딱지 내놓으라고 퉁퉁거리더랍니다.
그래서 또 웃고 웃었지요.
그 뚱한 얼굴이 끊임없이 우리를 웃게 합니다.

한데모임은 경민이랑 연규가 사회를 보았습니다.
언제나처럼 무성한 노래 뒤끝입니다.
연규가 사회 본 적 있는데
다시 기회를 주는 게 좋은지 어떤지는 벌써 아이들이 결정을 했던 터지요.
부엌샘들이 때마다 고생한다고 박수를 받았습니다.
아이들 말이 떨어질라 얼른 받습니다.
"고맙습니다."
"맛있어요."
"아침 국밥이 짱이예요."
누군가 붕어빵이 먹고 싶다 합니다.
아예 빵틀을 사는 건 어떠냐,
내년 겨울까지 저금을 해서 그걸 다 모아 기계를 사서 날마다 구워먹자,
뽑기 달고나 그런 것도 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재헌 선수,
"저는 겨울에 말 안들어서 샘들이 오지 말라 그럴 것 같애요."
그때 이구동성으로 "알긴 아네."합니다.
"그런 줄 아니까(스스로) 다시 와라"
정말 우리들은 붕어빵틀을 사볼까 합니다,
저금을 하자는 결의를 잊지만 않으면.
애들은 자기 집에 있는 뽑기틀이며를
엄마한테 잘 말해서 후원하겠다 나섭니다.
며칠 전 화장실에 빠졌던 신발 사건이 또 들먹여집니다.
윤님,
"원교 언니가 그런 것 같애요."
아마 큰 놈들이 잠시 그렇게 들먹인 걸 들은 모양입니다.
인석이 벌떡 일어서더니,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대봐."
하고 나옵니다.
호준: 말만 잘 못할 뿐이지...
기태: 생각은 다 할 수 있어.
재헌: 맨날 원교가 그랬다 그래.
그때 분위기도 모르는 하다 선수가
무슨 낙서도 원교누나가 한 것 같다 합니다.
정한: 원교가 팬이 어디서 했겠니?
갑자기 기세가 등등해진 원교보호단들이었네요.
원교가 사흘 전부터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간지럼을 태워옵니다.
딴에는 편해지고 친해졌다는 뜻인 가봐요.
다온이는 원교 옷까지 챙겨 입혀줍니다.
"아이고, 한참이 걸렸네."
다온이가 저녁 때건지기할 즈음 부엌에 왔습니다.
원교가 소리지르고 운다고.
좇아갔지요.
책방 불가에 아이들이 앉았고 쇼파에 원교가 누워서 짜증스레 울고 있습니다.
세이샘이 달래주고 있고.
전들 특수교육에 대해 아는 게 있어야 말이지요.
그냥 직관 혹은 직감에 목욕을 다녀오고 해서 곤할 수 있겠다 싶었지요.
업자 했습니다.
나가고 싶다고 해요.
현관통로에서 자장가를 불러줍니다.
그제야 마음도 편했나봅니다.
제 볼을 등에서 당기더니 입을 맞추고 손뼉을 칩니다.
기분 좋은가봐요.
좀 춥길래 부엌 불가로 갔는데 애들 무데기 거기도 시끌시끌이네요.
원교가 날 서겠다 하고 도로 나와 있다가
이불 깔아 눕혔지요.
연규, 다온, 예린, 지후가 그 곁에서 같이 노래도 부르고
쓰다듬어도 주고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한참을 끌어안고 있다 아이들에게 맡기고 제 일을 하러 나갔지요.
아이를 길러봐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엄마가 되는 것이 교사에게 어떤 경험보다 큰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이럴 때마다 합니다.
'엄마'여서 정말 고맙습니다.

아이들이 돌아왔습니다.
교문 저어기까지 마중을 갑니다.
하하, 훤합니다.
아직 묻은 자장면 자국이 더러 있기도 하나.
목욕탕을 다녀오니 또 새로운 관계들로 편재되더니
콧바람 쐬어선지 답체 시끄러워죽겠습니다.
수학에서 칠교를 끈질기게 붙들던 은근의 홍주부터
배움은 배움대로 깊어갑니다.
아이들이 있어 좋습니다.
단순해서, 분명해서, 작은 걸로도 웃을 수 있어서,
이 아이들이 있어서 참말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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