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6.달날. 날은 맑으나 또 눈

조회 수 1107 추천 수 0 2009.02.05 00:07:00

2009. 1.26.달날. 날은 맑으나 또 눈


뽀오얀 아침입니다.
눈 내린 산마을은
잠시 시간이 거기서 멎은 듯 웅크리고 있습니다.
복슬거릴 것 같은 눈은 풀밭처럼 펼쳐져 있지요.
푹합니다.
명절이라고 북적일 법도 한 마을은
오지 못하거나 왔더라도 서둘러 나가
여느 날들처럼 고즈넉하네요.
윗집 할머니 수돗가에서 쓰고 버린 물이
쫄쫄거리며 또랑을 따라가는 소리가 내려오고
아랫집 할머니의 솥뚜껑 여는 소리가 건너오고...
서울에선 거슬리거나 신경 쓰이던 소리들이
예선 정겨움이 됩니다.
소리들이 이 집과 저 집을 경쾌하게 ‘건너다니’지요.
산골의 날들,
움트는 것들이 들려주는 소리로 봄밤 잠 못 들고
꽃봉오리 피는 소리에도 잠을 뒤척이고
봄 언덕에 내려앉는 햇살 같이 달빛이 어깨 위로 내립니다.
더덕향으로 잠을 설치는 늦봄이 있고
개구리소리 천지를 채워 잠 못 드는 초여름 밤이 있고
단풍이 뒤덮이는 가을이
낮에는 눈으로 밤에는 귀로 스며듭니다.
산골에선 산다는 건 그런 ‘소리’들 속에 산다는 것이지요.

“류옥하다, 자네는 이제 열두 살일세.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그만큼 나이 값을 해야 한단 뜻이지.
열두 살은 열두 살의 나이 값이 있는 게야.”
“엄마, 그런데 열두 살의 나이 값도 있지만
그만큼 이런 말도 있어, 열두 살의 ‘대접’!”
아하, 그렇겠습니다.

낮,
남자 어른들은 뒤란에서 장작을 패고
여자들과 아이는 마을 뒤 산기슭에 갔습니다,
거기 비밀 이야기처럼 숨은 물꼬아이스링크,
눈을 뒤집어쓰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그 위에서 뒹굴고 우리가 가치로이 여기는 글씨들을 발자국으로 쓰고
가장자리를 걸으면서 버들강아지 막 피어오르려는 양을 봅니다.
내려올 적엔 잘려진 나무 한 그루씩 끌고 와
땔감더미에 더했지요.
다시 마을 앞으로도 나갑니다.
그곳엔 물꼬 눈썰매장이 있지요.
지치도록 썰매를 타고
먼 하늘을 채운 마른나무들을 올려다 보다 돌아왔답니다.
굴뚝새런가, 작은 작은 새들이 포르릉 포르릉 날고 있었지요.

밤,
아궁이에 불 때고 몰려 잤던 지난 밤과 달리
오늘은 달골로 모두 올라 놀았습니다,
서양식 윷놀이를 하며 밤 깊도록 놀았습니다.
설(연휴)입니다,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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