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27.흙날. 맑음 / 한살림 강연

조회 수 1385 추천 수 0 2008.10.10 18:01:00

2008. 9.27.흙날. 맑음 / 한살림 강연


서울 장충동의 한살림 교육장에서 강연이 있었습니다.
50여 명 한살림 조합원 교사들이
무려 네 시간 반 동안이나 함께 달린 시간이었지요.
오래전엔 슬라이드를 준비하기도 했고
요새는 더러 파워보인트로 강의를 하기도 했는데,
미리 이번 강연에선 어떤 시각매체도 쓰지 않겠다 했습니다,
강의록도 따로 내지 않는다 했고.
“사례중심이 될 거라...”
현장 워크샵처럼 진행하겠다 했지요.
그래서 걱정들이었다나요,
‘아니, 네 시간을 말로 혼자’ 끌고 가겠다고 해서 말입니다.
“자기 사는 얘기가 제일 쉽지요,
그걸 또 젤 잘할 수 있구요.”
물꼬 사는 이야기이고 아이들 얘기이고
그리고 십오 년은 족히 되는 계자이야기이니 무에 어려울라구요.
끝나고 참을 먹는 자리에서들 그러셨습니다.
“하루 종일도 하시겠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어디 하룻밤만 하겠는지요.
그런데 얘기하는 제가 아니라
듣는 그들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어찌나 귀기울이시던지요.
그게 또 한살림의 힘이겠다 싶습디다.
생명학교를 십여 년 꾸려오며 했던 시간들을 놓고
(교사와 학생 사이, 교사와 교사 사이, 학생과 학생 사이, 프로그램,...)
치열하게 고민하고 길을 함께 찾았지요.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참, 그런데 한살림 안에 있는 연구소에서
한 선배의 이름자를 보았습니다.
제 나이 스물 무렵 시민단체에서 같이 공부했던 선배고
오래 곁을 지켜주기도 했던,
그리고 지금은 같은 길을 걷는 선배쯤 되려나요.
더러 소식을 모르지야 않았지만 거기가 거긴 줄은 몰랐던 게지요.
“그렇잖아도 선생님 오신다는 말씀 듣고는 반갑다시며...”
마침 괴산으로 농활을 가서 보지는 못했는데,
그찮아도 안부를 남겨주었다 합니다.
공해추방운동연합시절부터 환경연 일을 했고
공동체운동센터에서도 일하다 지금은 거기 있는 거죠.
다 끼리끼리란 생각이 새삼 들었네요.
젊은 날을 거리에서 보냈던 마흔대의 나이들이
이제 다들 자기 자리들을 찾아 이리 뿌리내려가고 있답니다.

강연이 끝나고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시간 맞춰 기다리고 있던 영수랑 승윤이가 먼저 얼굴을 비쳤지요.
서울에서 몇 해를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입니다.
‘솔개’모둠, ‘겨울은 지나가고’모둠.
글쓰기를 하고 논술을 하던 모둠들이랍니다.
대웅 영수 승윤 민수 보배는
학교 선생이 되어있거나 아직 대학에 남아있거나 연구원이 되거나
스물 예닐곱의 나이들이 되어있었습니다.
송희는 주말이면 하는 일이라 양평으로 가 있고
세온이는 멀리 거제도에 있는 병원에서 인턴과정에 있다지요.
동대 앞에서 같이 밥 먹고
주점으로 옮겼습니다.
이제 커서 같이 술집도 들어가게 되데요.
보배는 중학교 수학교사 3년차였고
대웅이는 막 현장으로 갔습니다.
알까요, 그가 내민 공무원증을 보며 울컥 했단 걸?
제가 키운 것도 아닌데, 어찌나 고맙던지요.
그예 교사가 되었더라구요.
달포 전이던가 통화했던 날 제대했다 하였으니
막 2학년 담임이 된 신출내기인 거지요.

우리는 모둠활동을 하던 때처럼
북한 아사문제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생각이야 제각각이었지요,
저는 그 다양함이 좋았습니다.
서로 적당히 옛날의 즐거운 날을 추억하고 곱씹는 것만 아니라
지금 우리를 둘러싼 현실을 논할 수 있어 기뻤지요.
동창회같은 모임을 썩 내켜하지 않는 것도
그저 좋은 옛기억을 우리고 또 우리며
불편할 수 있는 현실의 문제는 적당히 피해가는,
그 과거 회귀가 달갑지 않은 까닭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첨예할 수 있는 문제들을 잘 다루고 있었지요.
관건은 우리가 서로 얼마나 잘 수용할 수 있느냐 하는 것 아니겠는지요.
서로 열심히 생각을 끄집어내고, 그리고 나누는 것,
퍽 귀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생각이 다르면 언성을 높이거나,
아니면 피해 가기 일쑤니까요.)
그러다가 서로가 어떤 변화들을 겪을 수도 있겠지요.
아름다운 아이들이었고,
여전히 아름다운 청년이었답니다.
잘들 컸데요, 고맙습디다, 자랑스럽고.
이제 우리들은 대성리 갈 일 쉬 없을 겝니다, 이곳이 있으니.
중고등학생이던 녀석들이랑
해마다 2월이면 대성리로 모꼬지로 갔더랬지요,
해를 어찌 살았나 돌아보고 어찌 살까,
날밤을 새웠더랬지요.

“선생님 빨간 내복 사드려야 되는데...”
대웅이는 첫 월급을 꼭 그리 쓰고 싶었다며 술값을 냈고
아이들은 저마다 추렴을 해서 대접을 해주었더랬지요.
컸다고 저들이 저를 멕이고 태우고 그럽디다.
“올해 안에는 다 모여서 내려갈게요.”
“그래, 그래, 서로 손 붙잡고 오고...”
그러다 여자 남자 잡고 오고,
어느 날 아이 손을 잡고 오고...
오래 그리 보고 싶습니다.
이 골짝을 잘 지켜야겠다 싶었지요.
“건강해라, 그리고 유쾌하게 살고.
두루 안부 전해다고, 아, 어머님께도.
그리고 함께 하지 못했던 송희와 세온이랑도.”

아이들이, 고맙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1756 2008.11.24.달날. 비 옥영경 2008-12-08 1135
1755 2008.11.23.해날. 흐려가는 오후 옥영경 2008-12-06 1239
1754 2008.11.22.흙날. 맑음 / 산오름 옥영경 2008-12-06 1298
1753 2008.11.21.쇠날. 맑음 옥영경 2008-12-06 1074
1752 2008.11.20.나무날. 진눈깨비 옥영경 2008-12-06 1127
1751 2008.11.19.물날. 맑으나 매워지는 날씨 옥영경 2008-12-06 1190
1750 2008.11.18.불날. 낮 잠깐 흩날리던 눈, 초저녁 펑펑 옥영경 2008-12-06 1038
1749 2008.11.17.달날. 흐림 옥영경 2008-12-06 983
1748 2008.11.14-16.쇠-해날. 더러 흐리고 바람 불고 / ‘빈들’ 모임 옥영경 2008-11-24 1335
1747 2008.11.13.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8-11-24 1018
1746 2008.11.12.물날. 맑음 옥영경 2008-11-24 1025
1745 2008.11.11.불날. 맑음 옥영경 2008-11-24 1044
1744 2008.11.10.달날. 맑음 옥영경 2008-11-24 1069
1743 2008.11. 9.해날. 비 지나다 옥영경 2008-11-24 1146
1742 2008.11. 8.흙날. 흐림 옥영경 2008-11-24 1078
1741 2008.11. 7.쇠날. 비 온다던 하늘 흐리기만 옥영경 2008-11-24 1057
1740 2008.11. 6.나무날. 경제처럼 무거운 하늘 옥영경 2008-11-24 1186
1739 2008.11. 5.물날. 맑음 옥영경 2008-11-14 1333
1738 2008.11. 4.불날. 맑음 옥영경 2008-11-14 1043
1737 2008.11. 3.달날. 바람 불고 하늘은 자주 흐릿하고 옥영경 2008-11-14 1087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