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12.해날. 그럭저럭 맑은

조회 수 1318 추천 수 0 2008.10.20 04:55:00

2008.10.12.해날. 그럭저럭 맑은


귀농사랑방모임 2탄.

“정우야, 올라오길 잘했지?”
엊저녁 다른 사람들을 구제(?)할 순 없어도
아이들은 차게 재울 수는 없겠어서 어른들 딸려온 아이 셋을 찼는데,
남자 아이 하나는 부모들과 숨꼬방에 이미 들었고,
여자 아이는 부모들과 차에 남는다 하고,
그렇게 한 녀석만 같이 올라갔지요.

이른 아침 서둘러 내려옵니다.
몇몇은 숨꼬방으로 들고 더러는 강당에서 매트를 깔고 자고
또 한 무리는 장작불가에서 밤을 지새우고
한편은 도저히 안 되겠다고 이웃의 다른 숙소를 찾아갔다 했습니다
(그럴 것 같았으면 더욱 달골 창고동을 쓰지,
안타까워라 하지만 이미 흘러간 시간이지요.).
물꼬 식구들도 묻혀서 밥을 먹기로는 하였으나
가마솥방이 어이 되나 살펴보는 게 예의겠지요.
막 아침 준비를 하러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습니다.
물 묻은 손을 닦고 도로 나왔지요.

그런데 소사아저씨가 급히 찾습니다.
하기야 찾지 않았어도 못 본 건 아니었지요.
감나무 한 그루가 가지가 다 헤집어져 절단이 났고
항아리 두 개가 깨졌습니다.
사람이 모이면 별 일이 다 있지요.
그래도 독이 요긴한 시골살림이니 입맛이 내내 다셔집니다.
살림을 돌보는 소사아저씨는 안절부절이십니다.
그런들 어찌 한답니까.
밥을 먹은 뒤 전체를 관장하는 학천님이 부르시데요.
기본약품과 ‘밥은 하늘입니다’를 서각하여 물꼬를 후원해준다
엊저녁에 약속하신 분이시지요.
“이걸로...”
현관 앞 바깥의자에
협찬을 받은 배 한 상자와 귤 한 상자, 그리고 천마 한 봉지가 쌓여있었습니다.
“교장선생님, 계산 끝입니다.”
아무리 값어치 있는 물건일지라도
문제는 그게 장독이 되어주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다행히 밑돌 이인석님께서
좀 흠이 있더라도 쓸 만한 항아리를 싸게 구하는 곳을 아니
나중에 챙겨주시겠다셨습니다.
고마울 일입니다.
옹기를 우리 손으로 사 본적은 없어
양손으로 한 아름 안아야 하는 옹기가 얼마나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장날에 나가서 속이나 아프지 않았음 좋겠습니다.
그런 거 있잖아요, 아주 값비싼 어떤 것보다
일상에서 요긴한 것이 더 값어치가 있는 산골 삶이지요,
마치 아이에게 아주 허름하고 작은 장난감이 망가진 사실이
천 평 농사가 황폐해지는 것보다 더 큰 일이 되는 것처럼.

그런데, 그런 아쉬움은 좀 들데요.
아무리 운영진측이 행사를 책임진다지만
성인이 한 행동을 왜 자신이 책임지지 않는가 하는 점 말입니다.
분명 장독을 깬 사람이 있고, 나무를 헤친 사람이 있는데,
(그게 마을의 다른 집 게 아니라 그나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왜 사과를 하지도, 또 배상에 대한 고민을 하지도 않는 것이
지금도 좀 의아합니다,
누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난 여름 물가로 가는 길에 호두나무 가지 하나를 꺾은 우리 아이 하나는
마을 어르신댁에 사죄하러 찾아간 일이 있지요.
이어 그 일에 대해 교사들이 책임을 진 일이 있답니다.)
귀농, 그거에 정말 중요한 것 하나는
바로 이런 이웃과의 관계 아닐지요.

협찬 받았던 물건들을 서로 잘 나누고 경품추첨도 하고
(물꼬도 이것저것 나눠주셨습니다)
색소폰연주가 다시 있었으며
모두 마음을 내서 담배꽁초 하나도 남기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오,
어제 왔던 것처럼 사람들이 또 그리 빠져나갔습니다.
부러진 감나무와 깨진 장독, 축구골대 옆 야외용 탁자가 흔적처럼 남았지요.
한 분이 다가와 남겨주신 말씀도 있습니다, 애썼다고.
말의 힘이 그런 거다 싶습니다,
아쉽고 좀은 불편했던 마음이 다 가셔지지요, 말 한마디로도.
모임을 하면 그 모임 식구만 보이기 쉬운데,
그래도 물꼬가 이래저래 신경 쓰였을 거라며
다사로이 말 건네고 가신 분이 또 오늘 깊이 우리를 가르쳤지요.

점심을 챙겨먹은 식구들은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꼬박 오후를 청소합니다.
하느라고 하고 떠나도 남는 일은 있기 마련이지요.
특히 사람들이 모이고 헤어지고 난 자리에
늘 남는 쓰레기는 지구 위에서의 인간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페트, 페트외 플라스틱, 딱딱한 플라스틱과 얇은 플라스틱(비닐),
병, 캔, 철, 스티로폼, 태울 수 있는 재질, 쓰레기봉투에 넣어하는 하는 것들로
일일이 나눕니다.
우리 사는 일이 어찌 이리 버릴 것들 투성이랍니까.
모임의 어느 분이 하셨다는 말씀도 곱씹어지데요,
아무리 임대라지만 이렇게 청소가 안 돼있냐고, 소우님이시던가요.
그러게요, 하느라고 하고 사는데, 그것도 손님 온다고 더 신경 쓴 건데,
이불도 제 때 잘 빠는데...
하기야 페인트칠 이런 것으로 단장이 되기도 하겠지만 그런 것으로 말고
정리와 청소로 자원을 덜 쓰며 있는 곳에서 있는 대로 잘 살아보려
그래도 나름 애써왔답니다.
언제 손재주 있으신 듯한 그 분이(건축을 하신다던가요)
마음 내서 손발 좀 보태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같은 공간도 어떤 나무며 재료들을 잘 다룰 줄 아는 분들이 쓰시면 다르더구요.
어이 되었든 물꼬는 이곳을 영구히 쓸 것이기 때문에
우리집이 아니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답니다.
다만 시간이 닿지 않고 손이 닿지 않고 재주가 닿지 않아서 그럴 뿐이지요.
사는 게 참...

행사가 끝나면(이번이야 물꼬 행사가 아니었지만) 평가가 따르지요.
모임에서 적지 않은 후원금을 놓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25만원이라는 '돈'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했지요.
돈이 놓이면 계산이 따르게 됩니다,
그 모임에서도 전체 규모에 맞춰 공간에 대한 경비를 지출했듯.
전혀 생각지도 않은 살림이 보태져서 기쁜 이도 있고
세상살이에 밝아 이윤적 측면으로 보며 좀 아쉬워하는 이도 있었지요.
“깨진 장독값도 안 나오겠다.”
“그래도 우리 공간 좋은 사람들과 잘 썼잖아.”
"시골살림에 큰 돈이지."
“그래도 좀 아쉽다.”
“돈이라는 게 원래 그래.”
주는 사람은 많이 주는 것이고
받는 사람은 아무래도 적고 하는 게 돈의 관계성 아닐까 싶데요.
장작, 기름, 가스, 전기 에너지도 썼을 테고
(땔감이라는 게 산이라 나무 풍성하다지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해마다 져 내린 나무가 모자라 심지어 사기도 하지요.
표고목 폐목이 경운기 한 대로 6만원이랍니다,
그것도 화목보일러가 늘면서 못 구해 못 산다지요.),
어른 넷 아이 하나의 식구들이 이틀을 바라지를 했습니다.
딱히 뭘 도와주지 않아도
문제가 생길 때 찾으면 그래도 우리 살림이라 우리가 아니 대기상태였지요.
그런데 농사도 그렇지만
(농사 그거 돈으로 환산하기 시작하면 절대 못 짓습니다, 특히 유기농은.
그 애쓴 날들을 도대체 얼마의 돈으로 환산한단 말인가요.
농사가 지니는 가치, 그걸로 힘을 얻고 나아가는 일 아닌가 말입니다.)
이런 일(우리 걸 쓰이자고 내놓는)도 그런 계산법으로 하면 아니 된다 싶습니다.
(빨간불 깜빡깜빡! 결국 돈은 우리를 이 시대 자본의 논리로 끌고가데요.
경계할 일입니다.)

그리하여!
늘 하는 생각이지만 역시 남는 게(물꼬 계산법) 더 많지요
(실제 우리 물건을 내놓기도 했고 그게 돈으로 바뀌기도 하였지요).
이 좋은 자연에서 귀한 연들,
묵은지를 나눠주고 가신 눈꽃송이님,
산약초의 훌륭한 스승이 될 죽림처사님,
옹기며 시골살림의 좋은 안내자가 돼 줄 밑돌님,
차 실크로드의 수행자 김동욱님과 산타님,
유기농사에 대해 급하면 전화해서 뭐든 여쭤볼 폐하 이강복님,
무주로 귀농을 준비하는 긍정적이고 밝은 아저씨 샤프님,
이 나라에서 꽃차를 정말 제대로 덖어내는 손효제님과 꽃차산방님,
흙집 짓는 신선호님,
가난한 살림을 애정어리게 봐주시던 다일님,
천마의 대가 정암님...
가만히 앉아서 이런 연들을 만났으니
남는 장사했다마다요.
사람들이 모이면 헌신하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전체를 주관하는 운영진측의 애씀은 대단하데요.
온달님은 여간 바지런하지 않으셨지요.
(아, 이곳 아이를 위해 준비해 오신 조립상자는 얼마나 멋진 선물이던지요.
그 마음 참 고맙습니다.)
평강공주님은 일을 참 잘하시데요,
일을 쉽게 척척 하는 걸 잘 배웠습니다.
눈꽃송이님은 김치냉장고를 다 비워놓고 왔다던가요
(당신이 손수 뜬 수세미는 또 얼마나 일품이었는지...).
무엇보다 다들 흥겹지 않았는지요.
씨앗 몇 가지도 얻고
밑돌님과 폐하님으로부터 농사 조언들도 얻었습니다.
더불어 별사랑님, 인디아님, 러브님, 모래자갈님, 희망맘님, 솔잎향님,
더덕향기님, 박천서님 초여름님, 아무로님, 유목민님, 학천님, 온달님, 평강공주님,
청산님, 꽃다지님, 산약초님, 모모님 ,논두렁님, 하늘농원님, ...
이름자들 일일이 기억하기 어려우나
가을볕에 얼마나 고왔던 분들이신지요.
분명
불편함보다 귀한 만남을 더 크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그러니 남는 장사 한 게지요.

다만 아쉬움,
이곳에서 같이 들에 나가 일을 했어도 참 좋았겠고,
티벳길을 산책하거나 계곡을 거슬러 올라도 참 좋았을 것을
이 좋은 곳을 더 누리고들 가지 못해 아쉽습니다.
달골에서의 밤도 퍽 풍요로왔을 것을...
또 기회가 있기를.
그리고 으레 나오는 반성,
좀 더 애쓸 걸, 좀 더 줄 수 있는 걸 찾을 걸...
역시 기회가 또 있기를.


저녁에는 주말에 밀린 일들을 했지요,
메일에 답이며 밀린 상담전화며.
가을날의 한 주가 또 이렇게 설컹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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