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 5.물날. 맑음

조회 수 1339 추천 수 0 2008.11.14 12:24:00

2008.11. 5.물날. 맑음


입동 오기 전 무를 뽑자 했습니다.
낼모레 입동이지요.
늦게 심어 잘기는 하나 나름 또 잘 자라주었습니다.
마을사람들 다 뽑았다는데,
하루라도 더 둔다고 미루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주말에 비 든다 하였으니 더 둘 게 아닙니다.
계절과 계절 사이 비 들고 나면
기온차가 확 나지요.

무를 뽑습니다.
세상에 버릴 것 하나도 없음을
무를 뽑으면 또 압니다.
무청 한 가닥까지 시래기로 다 엮이지요.
어릴 적 무 뽑는 외가의 가을,
할아버지는 구덩이를 파셨습니다.
너무 얕지도 않게 그렇다고 깊지도 않게.
얕으면 어설픈 추위에도 속이 곯고
너무 깊으면 싹 나고 바람 들어 속이 빈다 했습니다.
그 구덩이에 짚을 깔고
싹이 돋지 못하도록 거꾸로 차곡차곡 무를 쌓았지요.
“무덤 같은 어둠 속에서 무들은
거꾸로 서서 얼마나 매운 숨을 쉬는지
한겨울 어머니가 꺼내놓던
눈부시게 서슬 푸른 조선무”
누군가의 시에서 그리 노래되던 무들입니다.
마침 식구가 주니
김치를 묻으러 파두었던 구덩이도 여유가 있습니다.
한 구덩이 항아리대신 넣어둔 고무통에 무를 넣었지요.
짚으로 따숩게 덮고 뚜껑을 덮습니다.
반은 저장하고 반은 무말랭이를 만들 참이랍니다.

감도 깎습니다.
T자형으로 꼭지를 자르고 야물게 깎습니다.
엊저녁 식구들이 모여앉아 잠시 깎고
아침에 이어진 손들이지요.
깎인 감을 들고 곶감집 감타래에 올랐습니다.
하나 하나 달았지요.
구슬을 꿰는 것이고, 명상이 따로 없습니다.
줄을 길게 드리우고 맨 아래에 하나를 먼저 달면
줄이 팽팽해집니다.
그러면 맨 위에서부터 하나씩 달아매지요.
감꼭지에 줄을 한 바퀴 돌리고
감을 통째로 다시 한 바퀴 돌려주면 안전하게 걸립니다.
혹 너무 익어 꼭지가 떨어져나갔으면
핀을 꽂아 꼭지를 만들어 걸지요.
길을 지나다보면 한결같이 모양이 곱게 걸려있는 감타래를 만나는데
요새는 전용 플라스틱 감꽂이를 주로 써서 더 가지런하다합니다.
허나 이렇게 울퉁거리며 달린 것도 또 그것대로의 맛이랍니다.
쌓아둔 나락가마니마냥 배부른 마음이지요.
올해는 반건시를 좀 먹어볼랑가 모르겠네요.
역시 곶감맛은 반건시라 했는데,
작년엔 그거 한 번 챙기러 올라가보지 못하고
그만 겨울 계자를 맞아버렸더랬습니다.
그래도 그 계자에서 어찌나 맛나게 밤마다 먹었던지요.

류옥하다 선수는 이웃집에도 곶감일 원정을 갑니다.
놉(날품일꾼)을 얻어 곶감을 어마어마하게 하는 댓마 희구네이지요.
“그 집도 올해 감 깎는 기계 샀더라.”
“그러면 너는 뭔 일을 했어?”
“플라스틱 감꽂이에 감 꽂고 매달고...”
“우리 일이나 좀 더 하지.”
“우리 일도 중요하지만 그런 자원봉사도 중요해.”
그렇다네요.
한 시간여 하고 돌아온 오지랖 넓은 아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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