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계자 나흘째 1월 29일

조회 수 1882 추천 수 0 2004.01.31 10:31:00
< 달빛싸라기 어깨에 앉는 밤 >

4337.1.29.나무날. 말간 날

날이 푹해서 운동장 눈이 다 걷혀갑니다.
"어, 너 원래 그렇게 생겼어?
니 이(齒)가 그랬던가?"
"아니요, 오늘 아침에 빠졌어요."
호준이 이가 하나 빠졌습니다.
아침에 형길샘이랑 지붕에 던졌답니다.
까치한테 새 이 물어다 달라고.
우리 호준이 웃는 걸 보면
세상이 다 환해집니다.
아, 령이의 반달 눈썹도 못지 않지요.
한데모임을 하고 있으면 왼쪽 곁에서 호준이,
오른쪽 곁에서 다옴이,
왼쪽 앞에서는 혜연이,
오른쪽 앞은 '하다'
아주 균형도 잘맞게 몸을 기대고 있습니다.
"이것들 뭐냐?"
슬쩍 밀치면 더 기대옵니다.
멀리서 샘들이 그럽니다.
"흥부네 엄마네요, 자식 새끼들이야."

한데모임을 시작하자 정훈이가 노래집을 챙겨서 먼저 내옵니다.
모두 우와, 소리 한 번 질러주면
머쓱해라 하며도 씨익 웃는 정훈이.
아이들은 지난 계자에서의 노래말고 또 새로운 노래들을 뽑아 부르네요.
"한데모임 전에 노래하는 시간이 참 좋아요."
기표는 물꼬가 가진 특유의 느낌들을 아주 잘 받습니다.
"네가 이제 뭘 좀 아는 구나."
"초등학교 때 고통이 있어야 돼요!"
그 기표,
물꼬의 재미는 보통 재미랑 다른 것 같다합니다.
그 질감을 더 두텁게 알아채가는 게지요.

밤마실을 나갔습니다.
낼 쯤이면 반달로 차겠습니다.
그런데 아직 반달도 안된 달빛으로도
온 천지가 어찌나 환한지 대낮만 같습니다.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걸어갑니다.
언덕배기에 닿아서는 한참을 침묵으로 서서
이 세상을 채운 다른 존재들의 소리에 귀기울여봅니다.
무엇이 야만인지에 대해 생각합니다.
다른 존재가 같이 쓸 것들을 우리만 쓰려드는,
그거야말로 야만이 아닌가 곱씹어봅니다.
달 올려다보며 비는 새해 소망도 빠뜨릴 수가 없었지요.
우리들 눈빛이 하늘에 난 저 반달의 창을 통해
더 먼 신의 나라로 닿을 듯합니다.
"령아, 네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래."
"다영아, 꼭 바램을 이루거라."
"윤정아, 네 소원도 꼭 이루어지길 같이 마음 모아줄게."
아이들 이름자 하나 하나를 부르며 간절함을 보탭니다.
"정근아, 네 바램도 잘 품었다가 이루렴."
"선생님 소원도 꼭 이루지길 바래요."
그 고요 속에 아이가 더해주는 바램의 힘에
우리 모두 번져오는 기쁨으로 차올랐습니다.
그 맑은 마음이 전해와서 어떻게 주체할 수가 없었다고
샘들이 나중에 그러데요.
오는 길에는 같이 왔던 이말고 다른 이들과
둘씩 짝을 이뤄 돌아옵니다.
호준이가 굳이 저랑 짝이 된다 하는데
정근이랑 짝을 해보라 떠밀어줍니다.
한사코 싫다 도리질 치는 호준이한테
"호준아, 나랑 짝을 해줘서 고마워."
하며 손을 내미는 정근이.
눈시울이 붉어집디다.
모둠 하루재기에서 기표가 하품을 크게 하니
정근이가 곁으로 다가와
"형 졸리면 내 어깨에 기대도 돼."
그러더랍니다.
"어떤 어른도 아이들을 정형화시키면 안되겠습니다.
장애아라 딱지 붙이고, 마치 범죄자처럼,..."
멀쩡한 아이를 얼마나 바보로 만들 수 있는 세상인지 분노하며
귀한 생명들 하나 하나 잘 만나자 다짐하는 밤입니다.
착함을 배가 시키고, 장점을 불러일으키는 공간,
긍정성을 더 드러내게 하는 관계가 좋은 관계 아닐지.
자연스레 우리 안에 있는 착함을 살려내는 이곳입니다.
돌아오는 마을길, 우리 몸은 이제 달빛으로 흠뻑 젖습니다.
앞 패와 뒷 패가 뚝뚝 떨어져 걸으며
자근자근 서로를 익힙니다.
"사실 저는 아빠가 돌아가신 게 아니구요, 멀리 있어요.
지금까지 한 열 한번 쯤 봤나..."
이런 시간이 서로를 가장 많이 만나게 한다 싶어요.
돌아오면 또 다른 관계로 편재되거든요.

동네어른특강은 계속됩니다.
어르신이 좀 늦다 싶자, 또 놀러온 민근이의 안내를 받아
장작패고 계신 어르신을 아이들이 뫼셔옵니다.
짚을 다루었지요.
짚이 무엇으로부터 남겨진 것인지 처음 아는 아이도 있습니다.
다옴이가 낟알을 발견하고 묻습니다,
벼는 한 그루에 얼마나 열리는 거냐고.
한 포기에 7-80개. 많은 품종은 120개 열린다나요.
그런데 많이 열리는 것은 맛이 좀 떨어진다 합니다.
아이들은 한데모임에서
그 시간 들어오지 못한 샘들한테 배운 것들을 나누어주었더랍니다.
"볍씨를 5일동안 물에 담가서 싹을 내요."
"그걸로 모내기 해요."
"아이구야, 이제 농사도 짓겠네."
"예, 지을 수 있어요."
내년에는 물꼬에서도 벼농사를 지으려합니다.
새끼를 꼬아봅니다.
교사가 결국 무엇으로 살더이까,
가르치는 보람으로 먹고 살지 않더이까.
오늘 인원이며 기표며 아이들 새끼꼬는 걸 도우며
그예 꼬아지는 그들의 새끼줄을 보며
느껍기 한이 없었지요.
샘들 하루재기에서도 특강 얘기는 또 이어집니다.
"그렇게 하나씩 배워 농사 짓고 거두고
싣고 빻으러가고 떡 해먹고..."
그때 열택샘이 외쳤지요.
"우리 그래봅시다."
"네"
대답들을 하는데 눈물 핑 돌았지요.
물꼬의 얼마나 오랜 꿈인지.
우리는 이렇게 꿈을 꾸고 한 발 한 발 나아갑니다.

지나샘이랑 진익샘은 낼 나갑니다.
"돌은 누가 날라요?"
덕현이 재치있게 아쉬움을 그리 표현합니다.
대해리 마을 버스를 못들어오게 한다,
진익샘 차 바퀴를 구멍내놓는다
아이들 부산합니다.
"이곳에선 아이들이 '사람'한테 관심이 있구나..."
지나샘이 그럽니다.
그래요, 여긴 정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눈이 멎는 곳이지요.

과학은 사흘동안
물을 찾아 떠나 시를 쓰고,
설명없이 실험을 하고 왜 그런가 생각하고,
물이 떠난 길을 그린 동화책을 읽으며
공동창작으로 그림을 그리며 마무리했답니다.
"동화책 읽는데 령이와 하다가 점점 몰입하는데, 좋데요."
다영 나현 정훈이도 함께 했답니다.

펼쳐보이기는 늘 그렇듯
자잘한 것들이 주는 감동이 커지요.
"사흘동안 꼬박 두 시간씩 여섯 시간을 하는데
'하다'가 오랜 시간 딴눈 안팔고 집중력 대단하게 끝까지 바느질을 하는데,
같이 살아도 미처 잘 몰랐던 부분이었어요."
희정샘이랑 그 앞치마를 입고
다옴이도 다영이도 나현이도 기표도 한바퀴 돌아봅니다.
연극패들도 앞에 나섰지요.
다옴 정근 호준 인원 혜연 덕현 윤정.
한껏 뿜던 덕현이의 끼,
소품으로 드러난 혜연이의 재치,
대사를 잘 소화한 호준이,
해설을 성실하게 하는 다옴
망토가 잘 어울린 인원이의 훌륭한 발음,...
정근이가 그리 같이 할 수 있어서,
모두들 유쾌하게 잘해서,
보는 사람들이 너무도 열심히 반응해줘서
그래서 더 살아난 연극이었다고들 했습니다.
나무로 깎고 다듬은 목걸이도 펼쳐보입니다.
감나무 아래 평상에서
열택샘을 끼고 죄다 둘러앉은 한 때 거둔 것들이지요.
"가운데다 좀 놔봐."
잘 못했다고 쑥쓰러워하며도 내놓는 령이,
엄마 선물이라며 보여주지 않는다 버팅기다 내보이는 인원이,
제가 놓기 멋쩍다고 쓰윽 앞으로 가만 팔만 펼치는 윤정이,
별 것 아니라면서도 자랑스럽게 보이는 정훈이,
호준이까지...
곳곳에서 참 많은 것을 아이들이 해댑니다.

혜윤샘이 혹 소외될 듯한 아이들을 끼고 있습니다.
많이 움직이고 마음을 다하고,
여기서 자신이 배웠던 것들을 고대로 나눠주고 있습니다.
"8년 전 아이가 커서, 와서, 아이들을 챙기고..."
상범샘이, 거대한 역사같다 합니다.
그 혜윤샘이 호준이가 만든 나무조각목걸이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너무나 행복해라합니다.
소박한 샘들입니다.
어데서 이런 선물을 받고 이토록들 기뻐할 수 있을까요.

샘들 하루재기,
"(샘들 하루재기에서 스스로 반성들하며)다들 못한다고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성과만 하더라도 너무나 훌륭하다 생각합니다.
저렇게 여럿 아이들이 왔는데,
집에 간다고 엄마 보고 싶다고 안하는 걸 보면
여기 온 이유가 뭘까, 보름씩이나
자기 다니는 학교에서는 얻지 못하는 것들 기대하고 경험하고
그렇게 다시 오고..."
참 훌륭한 일들 해왔고 하셨다고 말하고 싶다,
기훈샘이 그랬습니다.

오늘 살아온 날 이야기는 진익샘 차례
"하루종일 제가 살아온 날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라고 준 시간인 듯합니다."
듣는 우리는 우리 삶을 거울에 또 비추었겠지요.
잘 살아야겠습니다.
다른 무엇을 가르치려들 게 아니라
어른들이 제대로만 살면 훌륭한 배움터아닐런지요.

세상 다른 어떤 일이 아니라
이 일을 하고 있어서 고맙습니다,
이 아이들이랑 있게 해주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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