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계자 닷새째 1월 30일

조회 수 1899 추천 수 0 2004.02.01 13:48:00
< 모든 말투의 경상도화 속에>

4337년 1월 30일 나무날 외투 없이도 춥지않은 낮

아직 학년이 올라가지 않은 걸(2003학년도) 기준으로 한 나이.
5년 다영 덕현 다옴 구슬
4년 정훈 정근 구영
3년 나현 인원 윤정 혜연
2년 령
1년 호준
일곱 살 수빈
여섯 살 하다

수빈이가 들어왔습니다, 할아버지 상을 치르고.
새벽 6시에 집을 나서서 정오에 닿았습니다.
멀리 오신 어머니 걸음,
점심도 못드리고 돌아나가는 버스로 바로 보내서
못내 마음이 안됐습디다.
하룻밤 묵을 요량을 하고 오셨더랬는데...
엄마가 보고플 다른 아이들을 배려하는 마음
헤아려주실 줄 믿습니다.
어머니께서 손수 고운 엿으로 만든 강정보따리를 받아들고
수빈이 손잡고 걸어오는 길,
마침 손에 우체통에서 꺼낸 편지들도 있고
다른 가방하나도 들고 있던 터라
"팔을 좀 바꿀까?"
했지요.
"제가 들게요."
이녀석 그러는데,
공동체에서(엄마가 한 공동체에서 10년을 있었거든요) 키운 아이라 그런지
아님 원체 품성이 그런지
참 '준비된' 아이구나 싶습디다.
수빈이는 2004학년도 입학 절차를 밟느라 다녀갔다고
들어오자마자 모두 속에서 익숙합니다.
다른 아이들의 환영과 친절한 안내도 한 몫했겠고.
혜연이가 한데모임에서 그랬지요.
"수빈이가 오늘 첨 왔는데 잘 놀아서 좋았어요.
같이 반찬도 만들고..."
한데모임에서 수빈이가 의견을 말하면서 이렇게 시작했더랬지요.
"아까 낙서해서 죄송하구요..."
건강하게 자란 아이임을 여러 가지로 느낍니다.

윤정이는 하루가 끝나고 나면 여전히 신발들을 들여놓고
빗자루로 현관통로를 씁니다.
멋있습니다.
덕현이는 목소리며 표정이 지난 계자의 석현의 업그레이드판이랍니다.
어쩜 그리 맑을 수가 있을지요.
오늘은 제 것 아꼈던 고구마튀김(다들 더 못먹어서 침흘렸던)을
강아지들한테 가져갑니다.
정근이랑 다옴이는 도덕에 들어가서
탈무드에 집중해 묻고 답하기를 열심히 하고 있더라지요.
호준이랑 하다는 어느새 따로이 제 볼일을 보러 가고.
령 인원 정훈 나현 다영 덕현 윤정 혜연은
지옥훈련이라고 소문이 나서 안들어가지 하던
죽도들고 검도 한창이었습니다.
"물꼬의 프로그램들이 주로 부드럽고 곡선적인 느낌인데
이런 규율이 있는 딱딱한 형식도 적절하게 섞여 좋더라구요."
검도 도움꾼으로 들어간 무지샘이 그럽디다.
한데모임에서 희정샘도 검도 풍경을 들려줬지요.
큰 씻는 곳쪽으로 가는데 기합소리 들리다 조용해서 쳐다보니
애들이 갑자기 뒤로 돌길래 뭐하나 했는데 엉덩이로 이름을 쓰더랍니다.
챙피하다고 갑자기 열택샘한테 달겨들던 윤정 나현 다영 령.
그러면서도 신명들을 어쩌지 못해하네요.
오늘은 불어도 배웠습니다.
프랑스에 대해서 아는 것들도 쏟아놓고
우리 주위에 널린 불어들도 찾아보았지요.
덕현이는 아는 것 많기도 합니다.
프랑스 혁명사도 간간이 읊어요.
마지막 배운 한마디엔 배꼽을 잡았지요.
"아뚜알루똥똥."
잘났다 잘났어, 그런 말이래요.
그 왜 니똥굵다, 라고도 하는.
아이들은 가마솥집 들어서며 당장 인사말을 써먹습니다.
"뽀나베띠(맛있게 드세요)."
외국어가 힘들고 지겨운 배움으로서가 아니라
한 문화를 이해하고
지상에 있는 한 나라에 대한 관심의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겨울살이에서는 고구마튀김을 내놓았습니다
얇게 썰랬더니 고구마를 돌려가며 깍두기 썰 듯 하던 인원.
"야 맛있다. 누가 한 거야?"
그러자 번쩍 손들고 자랑스러움으로 내릴 줄 모르던
인원 령 정훈 정근 덕현 혜연 수빈이.
"손 내리고 밥 좀 먹자."
돌 나르는 패에 오늘은 기표와 혜윤샘이 붙습니다.
돌을 나르며 도를 닦는 것도 이어집니다.
"개울가에서는 좋아서 여기 가져왔는데
안에 들어오니 그만큼 안예뻐더라구요.
역시 있을 공간에 있어야겠다는 거지요.
돌을 고를 때도 다 자기 취향이 있더라며
삶의 꼴에 자기 식이 있겠다는 새삼스런 깨침도 있었다 합니다.

우리 정근이와 정훈 그리고 곁다리 덕현의 얘기 좀 들어보셔요.
정근이가 또 집에 간다 가방을 쌌더랍니다.
정근이가 고구마를 튀기다 말을 크고 툴툴거리며 해서
꼭 술취한 사람 같다고 정훈이가 말한 게 화근이었다네요.

정훈: 놀린 게 아니라 말을 그렇게 하지 말고 알아듣게 하라는 뜻이었지.
정근: 집에 갈 거야. 다 맘에 안들어.
정훈: 진짜?
정근: 놀 때도 니들끼리 놀잖아, 안끼워주고.
정훈: 안끼워준 게 아니다. 네가 와서 놀자고 해야지.
정근: 나는 잘 뛰지도 못하는데...
정훈: 노는 데 뛰는 것만 있냐?
앉아서 하는 침묵의 공공칠빵도 있고...
정근: 집에 갈 거야. 엄마 아빠 보고 싶어.
정훈: 엄마 아빠는 늘 보고 싶은 거다.
그리고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보고 싶어해.
여기 있는 동안은 물꼬 식구들이 다 가족이지.
정근: 피도 안섞인 가족?
정훈: 그동안 같이 먹고 서로 걱정했는데
네가 그러면 물꼬 식구들이 슬퍼한다.
정근: (그 때 마침 징을 치며 히히덕거리는 아이들 보고)
저러는 게 슬퍼하는 거야?
정훈: 저 애들은 잘 몰라서 그렇지.
여기 있는 희정샘, 혜윤샘, 나는 슬프다.
정근: 치...
정훈: 여기 있으면 재밌잖아. 낼은 멧돼지 사냥도 갈 건데...
정근: 나는 무기도 없는데 뭐. 목검도 없고.
정훈: 내가 두 개 있으니까 하나 줄게.

정훈이 조근조근 정근이를 달래고 있을 때
우리의 덕현 선수 다가갑니다.
"너는 술취한 사람이 아니라,
너한테는 김정근이라는 멋진 이름이 있어."
그러며 정근이 이름표를 목에 걸어주더랍니다.
우리의 정근이는 가방을 풀었을까요, 집으로 돌아갔을까요?
이런 아이들을 알고 있어서 행복합니다.
참말 살맛납니다.

"사회자, 사회자, 그거 제가 하면 안돼요?"
어제 사회자를 뽑자하고 '사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하다'가 손을 번쩍번쩍 들었습니다.
해봐라 하니 호준이랑 짝을 해서 한답니다.
"호준이랑?"
둘이 그런 원수가 없거던요.
서로 시비를 그리 건답니다.
그런데 제 짝이 결국 호준이어야 한다고
요 어린 녀석도 제 규모를 아는 거지요.
그렇게 오늘 사회를 보게 되었더랍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의 한데모임을 시작하겠습니다."
"어!"
형식을 갖춰(지난번과 통틀어서도 아무도 그만큼 하지 않았던) 시작하는데,
우리는 그만 화들짝 놀라버렸지요
"열택샘!"
사람들이 놀람을 수습도 하기 전
오늘은 손들 틈없이 지명제입니다.
다음은 정훈이가 손을 들어주네요.
"호준이가 트림안했으면 좋겠어요."
트림 장난을 많이 치는 호준이 참 난감해합니다.
오늘은 멋있게 사회까지 보는데...
입 삐죽거리다가 결국 대세에 밀렸지요.
"미안합니다. 안그럴게요."
"다시 하면 가방 싸라 그래요."
지금의 가장 큰 무기지요. 정근이의 가방싸기에서 유래한.
그런데 측은지심의 윤정 선수,
"(혼자서)어떻게 집에 가?"
그래도 아이들 단호하네요.
"그러니 하지 말아야지."
그때 '하다'가 칠판의 계자 제목 쓴 종이를 가리키며 소리칩니다.
"여기 낙서한 사람 나와봐요."
꼼짝없이 나가야지요, 사회자가 부르는데.
"첫번째(지난번) 계자 어린이들이 만들었는데, 힘들게 만들었는데,
낙서 안했으면 좋겠어요."
불려나가 서있는 아이들을 보며 하다한테 다들 물었지요.
"그래서 이제 어쩔 건데요?"
"들어가세요."
너그럽기도 한 사회자들이라고 손뼉도 쳐줬지요.
"식사시간도 아닌데 징을 쳐서 잘못 갔어요."
징을 치는 것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주는 하다.
"밥을 먹을 때 세 번 치니까..."
손가락으로 열심히 세며 하루에 아홉 번만 치라합니다.
"의논할 일이 없을까요?"
다른 얘기 없냐는데 모두 그렇다합니다.
그때 우리 호준 선수,
"그러면 오늘 재미없었던 것 말해보세요."
아주 다들 드러누웠습니다. 웃겨죽는 줄 알았지요.
그리하야 한데모임은 또 이어집니다.
혜연이 낙서에 얽힌 오해로 빚어졌던 작은 싸움에서 속이 상했다하는데
그 상황을 잘 좀 설명하겠다고 희정샘이 나섰습니다.
"손 좀 들어서 말해 보세요!"'
사회자 하다한테 혼이난 희정샘.
그 자리에서 이어진 무슨 얘기 끝이었는데,
"잘못한 사람들을 지지하는 것도 똑같이 잘못하는 겁니다."
덕현이 그랬지요.
얼른 정근이가 손을 듭니다.
"잘못을 지적하는 것과 놀리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적하는 것은 잘못을 고칠 수 있게 하는 까닭이라지요.
참으로 사색적인 아이들입니다.
낙서하는 게 문제라면 낙서한 종이를 붙여주면 어떠냐 하니
상범샘이 그러마 합니다.
(낙서래야
물꼬에선 다만 뭘 알릴라고 붙여둔 종이만 빼고 칠판 가득 할 수 있는데)
그 때 무지샘이 나섭니다.
지난번 계자에서 남은 낙서가 문제가 됐기도 했겠다고
자유학교 노래를 샘이 다시 써서 붙인다 합니다.
"말할 사람 생각해보세요."
하다는 또 할 말이 있으면 하라합니다.
"제가 가슴이 아파요.
엄마가 수술하게 됐는데 마취에서 못깨어나면 죽는 거니까..."
혜연이의 글썽임에 마음 모두는 아이들,
그런데 금새 웃고 떠드는 혜연이 때문에 그만 무색해합니다.
덕현이가 마지막으로 손을 들었습니다.
"사회자들은 이제 싸우지 마세요."
워낙에 둘이 엉겼거든요.
"그러면 뭐라고 말해줘야 할 것 같아요."
앉은 자리에서 사회자를 향해 모두가 그럽니다.
"미안해"
호준이가 그러는데 머쓱해하는 하다.
"하다야, 그러면 너는 뭐라 그래?"
"미안해."
그리고 악수하는 둘.
잠자리에서도 그리 친해졌을 수가 없더라지요.
호준과 하다는 마지막 말 애쓰셨습니다는 인사까지 우리를 감동시켰습니다.
이 심오한 아이들 틈에서
오늘 우리는 주체할 수가 없었지요.
재미와 기쁨과 즐거움과 놀라움과 느꺼움...
참, 실에 심취한 다옴이는 한데모임도 하랴 엉킨 실도 풀랴 정신이 없었지요.

지금 모두는 경상도(덕현만 빼고, 아니 광주의 윤정이도 빼고) 아이들입니다.
모든 말투의 경상도화지요.
경북이 대세여서 그런가...
샘들도 온통 따라합니다.
이 하잘것없지 싶은 것도 그리 재밌는 대해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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