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자 39 열 하루째 2월 5일

조회 수 1712 추천 수 0 2004.02.07 08:05:00
< 다 눈입니다 >

4337년 2월 5일 나무날 눈

눈입니다.
분노도 눈물도 노래도 다 눈입니다.
카랑카랑했던 산길도 다 다 눈입니다.
동네 어르신들이 마을 앞 논에 달집을 지어두었는데
이리 눈이 내리면, 정월 대보름 휘영청 오를 달은 둘째 치고,
달집을 태울 수는 있으려나…
아이들은 달집 태우기에 설레며
갖가지 색깔 꽃을 붙인 고깔을 만들었는데
보람도 없이 이리 눈이 내리네,
대보름 연싸움을 끝으로 연을 더는 안날린다는데
아이들이 만든 연이 애쓴 흔적없이 하늘로 오르지도 못하게
한없이 나린다, 이리 나린다…
그런데, 어르신들이 불러댑니다.
얼릉 오라고, 달집 태울란다고.
돼지머리 앞에 절을 하며 바램도 빌고
(종교적인 문제로 또 시비 거실라,
그냥 세시풍속이라구요)
못얻어먹었던 고기들을 배에다 쟁이는 우리 아이들,
그리고 고깔을 쓰고 꽃 물결을 이루며 불가에서 소고를 치고 놀아댑니다.
여든 할아버지 상쇠는 젊은 것들보다 더 힘있게 나아갑니다.
“그림처럼 어른들이 장구를 치고 쬐끄만 놈들이 춤을 추고 있는데,
애들이 스스럼없이 어울리는데, 우습기도 하고…”
무지샘이 그러데요.
늦게 내려오던 아리샘은 너무 화사한 종이꽃들이 울렁대며 노니는 것에
그만 울컥하더랍니다.
고깔 만들 때 지휘자가 그였댔지요.
꽃으로 붙일 색지가 모자라
휴지통에 넣은 갈기 종이를 다 살려내 붙이고
저들 그림으로 대신 꽃 고깔을 만들더라는
나현 구슬 다영 수빈 혜연 인원 그리고 아리샘과 진경샘.
그들은 모두가 쓸 수 있도록 남의 것까지 준비를 했지요.
아이들이 있어서 보름달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있어서 잔치가 되었습니다.
마을 어르신들 칭찬이 대단했습지요,
아이들 잘 키웠다고, 샘들까지 잘도 논다고.
대구의 진경샘도 이야, 잘 노시데요, 워낙 오랜 장구잽이기도 하고.
열택샘은 넙죽넙죽 어르신들 내미는 술잔을 다 받습니다.
소고를 두드리며 춤추던 것도 신났고,
멋있고 신기한 달집 태우기였다는 아이들 평이었습니다.
아, 쥐불놀이도 했더랬지요.
어르신들이 시원찮은 깡통을 손 봐주시고
불씨를 덤뿍덤뿍 채워주셨지요.
그런데 호준이 졸립다고 들어가자해서
자리를 정리하려는데 시계를 보니 일곱시인 거예요.
우리가 한데모임을 시작하는 시간이지요.
“야, 인제 이 녀석들 이곳에서의 생활리듬을 익혔네…”

고깔을 만들 때 말입니다.
혜연이는 제 걸 제쳐두고 윤정이 걸 먼저 만들었어요.
그런데 하다보니 재료가 모자랐겠지요.
잠시 짜증을 내기도 했대요.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꽃을 다 달아놓은 윤정이 걸 자기 걸로 할 수도 있을 거예요.”
아리샘이 전합니다.
그런데도 혜연이는 결국 그림만 있는, 꽃이 없는 고깔을 썼습니다.
고지식한 면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눈길을 훤히 밝히는 그 마음이었답니다.
그 혜연이, 개똥벌레 노래를 부르다가
처지가 꼭 제 같다는 자기 설움으로 잠시 울었지요.
(혜연이가 여럿과 잘 어울려있기도 하지만 더러 홀로 일 때가 있어요.
아이들이 혜연이는 좀 다르다고 느끼거든요)
우리의 정훈이 위로하데요.
“그럼 말을 해야지”
애들이 싸우기는 얼마나 싸우는데,
은근히 서로를 또 얼마나 챙기는지, 아주 같잖지도 않아요.

보글보글방은
손이 큰 할머니가 빚은 만두이야기 그림책으로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김치를 놓고 합니다.
마을 어르신들 모여 노시는 경로당으로 점심때 보내느라
김치 부침개는 이미 부쳐놓은 게 많기도 하여서
김치 볶음밥과 김치 만두만 하기로 했습니다.
만두에는 아이 열 하나에 어른 다섯이 붙고
김치볶음밥엔 아이 넷에 어른 둘이 붙었지요.
“어쩌니, 숙주가 없댄다.”
“어떡해요?”
그리 반응하던 아이들이 주춤주춤하더니 어느새 한 목소리를 냅니다.
“괜찮아요, 넣지 마요.”
“그런데 어쩌니, 부추도 없댄다.”
이젠 기다릴 새도 없이 나오는 대답.
“넣지 마요.”
“없어도 돼요.”
다영이 구슬이 나현이 아리샘과 희정샘이 밀가루반죽을 밀어댑니다.
손으로 민 것 재미를 알고 나니
사왔던 만두피는 찬밥입니다.
다영은 마지막까지 피를 밀었고
아이들은 막바지까지 만두를 빚습니다.
무지샘은 끝까지 만두소를 넣었지요.
한 켠에선 젊은 할아버지랑 아이들이 김치볶음밥을 만들고 있습니다.
정말 정말 잔치가 따로 없데요.
“살금살금, 살금살금…”
혹 소란할 수도 있는 ‘먹을 판’에서도 낮은 목소리들로 모입니다.
무지무지 만들고, 무지무지 굽고, 무지무지 먹어댔더랍니다.
역시 만두피는 손으로 민 게 최고구 말구요.
“내가 갔던 어떤 음식점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만두라고 문어체를 구사하는 덕현의 증언이 있었답니다.
“우리 개한테도 주자.”
그래서 개에게 밥을 먹이면 그 여름은 파리가 들끓고 몸이 허해진다는
대보름날에 얽힌 고사도 들려주었지요.
그래서 생긴 ‘개 보름 쇠듯’ 한다는 속담도.
“벌써 줬는데…”
“누가, 누가?”
열택 인원 덕현 정훈이 손을 듭니다.
여름에 파리 잡으러 온다고 약조를 하였더랍니다.

수학에선 1과 0의 사이, 어마어마 큰 수들, 옛사람들의 셈에 대해
정훈 령 인원 덕현 구영 하다 수빈 혜연이 배웠답니다.
점자는 모음을 끝냈구요.
음악에선 가수 이현우의 노래 뒤 드럼 소리를 따라 악기를 쳐보고
이번 계자에서 우리가 가장 사랑한 노래 ‘서울에서 평양까지’를
몸 움직임도 실어 다른 느낌으로 타악 연주를 하였다나요 어쨌다나요.
열린교실 갈무리 이야기를 할 무렵
우리 호준이가 딱지치기를 하자 했습니다.
지금은 평가하는 중이니 있다 하자 했겠지요.
그런데 어느새 저쪽에서 딱지 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위바위보 소리도 계속 들리고.
짝을 맞났나보네,
그리고 돌아보는데, 호준이 앞에는 아무도 없더랍니다.
그런데도 꿋꿋하게 딱지치기를 하고 있는 호준 선수.

한데모임도 온통 달집 이야기입니다.
아침부터 몰아오던 정월 대보름 풍경이지요.
해건지기에선 대보름 세시풍속을 살폈지요.
더위도 팔고 부럼은 말로만 깼지요.
입춘날 새벽에도 서로를 불러서 고달픈 봄을 팔았다지요.
흔히 아는 귀밝이술 다리밟기 달맞이말고도
용맹을 기르던 돌싸움도 들려주고 달그림자 재는 것도 들려줍니다.
오곡밥과 왼갖가지 나물들을 먹었지요.
그리고 대보름 준비를 하고 달집을 태우며 긴 여정을 마쳤던 거지요.
덕현이 어떤 말을 시도하던 참인데
“손들고 말해!”
폭탄 맞을 뻔 했더랬지요.
그런데 령이가 그러는 겁니다.
“봐줘요, 생일이잖아요.”
아침엔 덕현의 작은 생일잔치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김령, 너 뭐 받은 것 있지?”
이곳의 하루가 너무너무 길다보니(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니)
아침이라면 까마득한 시간인데
생일을 기억하는 령에게 슬쩍 눈을 흘기며 아리샘이 물었지요.
덕현이 저만 받은 초코파이 하나를 다 나눠먹었더라나요.
령이는 그걸 반이나 먹었다나요.
아, 덕현은 책을 던진 제 잘못을 반성하는 의미로
책방을 가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켰노라 했지요.
너무나 가고 싶었는데도 말입니다.
멋졌습니다.

낼 사회자를 뽑습니다.
우르르 손을 듭니다.
구슬이는 처음이니 하라 합니다.
이제 해보지 않은 사람은 다옴이 하난데
끝내 다옴이는 하지 않겠답니다.
나머지 한 자리를 놓고 너도나도 손을 치켜세웁니다.
“양보할 수 있는 마음이 있는지 살펴보고 그럴 수 있으면”
손을 내리라 했지요.
마지막 넷이 남습니다.
인원 덕현 나현 다영.
다시 또 묻습니다, 마음 안에 양보가 있는지.
인원이 내리고 덕현이 내립니다.
둘이 남습니다.
다시 물어봅니다.
잠시 시간이 흐릅니다.
나현이, 가만히 손을 내립니다.
가위 바위 보의 운에 맡기는 게 아니라
마음에 맡기기를 참 잘했습니다.
물꼬의 이런 방식이 참 좋습니다.

샘들 하루재기, 진경샘은 그 자리에서 더 많이 배운다 했습니다.
너그러움 배려 공평성 문제를 질기게 다루는 샘들을 보며,
아이들에 대한 무수한 이야기들로 채우는 걸 보며,
일상에서 깊이 있게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당신 속한 공간에선 아이들문제를 자칫 스쳐지나가는 것 많은데
일하면서 그런 것을 잘 생각해야겠다 합니다.
오늘은 살아온 날 이야기 차례도 진경샘이었네요.
얼마나 재담꾼이던지요,
아주 밤을 넘기는 줄 알았습니다.
샘의 뜨겁게 산 세월이 다른 이들을 많이도 건드렸지 싶어요.
무엇보다 아픈 이야기까지 꺼낸 그 솔직함이 우리를 울렸네요.
고맙습니다, 함께 한 시간.

“삼촌 모습에서 놀랍습니다.
(오래 고립되어 사셨거든요,
그런데 너무나 잘 섞여 살고 아이들이랑 수업의 한 꼭지도 맡으시고)
제가 물꼬 일꾼이지만 물꼬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해요, 참 대단한 공간이다…”
좋은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더 많이 발현되는 곳,
선함이 더 편하게 드러나는 곳,
자기 안에 있는 뜻밖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발견하는 곳.
저 또한 물꼬에 있지만 자주 물꼬에 대해 놀랍니다.
이런 공간이라면
제 애새끼 아무것도 묻지않고 고스란히 맡겨놓을 수 있다마다요.

눈 내립니다, 하염이 없습니다.
눈 아니어도 누릴 것 많지만
눈이 와서 더 풍성한 밤입니다.
아이들이 있어서 더 고운 밤입니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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