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자 39 열 이틀째 2월 6일

조회 수 1662 추천 수 0 2004.02.07 22:26:00

< 모다 눈이 되었더랍니다 >

4337년 2월 6일 쇠날 눈, 또 눈, 자꾸 눈, 끊임없이 눈

얼음나무를 보았습니다.
눈을 쓸러 나간 길,
바람 매운데 그 발견만으로도 언 볼 언 손 언 발이 다 녹을 듯합니다.
경로당앞,
처마에서 내린 물이 어린 나무를 타고 내리다 내리다 통째로 언 모양입니다.
나무는 얼음으로 둘러싸여 투명한 유리너머로 제 몸을 드러냅니다.
가지 끝을 잘라 고드름 먹듯 입에 물었습니다.
선물이야, 선물이예요,
저마다 하나씩들 쥐고 환해졌습니다.
그 어떤 막대사탕도 이 맛을 흉내낼 수 없을 겝니다.
사는 게 뭐 별거겠는지요,
이런 감동들이 삶을 채웁니다.
어떤 즐거움을 더 바란답니까,
여기 사니 비로소 사람같이 사는구나 자주 생각합니다
“뭐 하니?”
아이들은 어느새 또 다른 놀이를 찾았습니다.
“얼음 쓰레기통이예요.”
눈을 모아 하수구 촘촘한 구멍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버린 물이 흐르는 것에 불과한 구멍이
멋진 놀잇감이 됩니다.
이 천지가 놀이터고 널린 게 놀잇감입니다.
놀이랑 같이 있으니 일이 일이 아니고
모두 같이 하고 있으니 고달픔이 고달픔이 아닙니다.
“눈 치우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아니나다를까, 한데모임에서 첫마디가 그거였지요.
눈을 쓸고 또 쓴 덕분에 마을 길은 훤해졌고,
차들도 무사히 오르내리겠습니다.
마을 어르신들 농협과 좌담회가 있어
몇 분밖에 못나오셨는데
우리 식구들이 그 빈자리를 다 채웁니다.
눈이랑 지치도록 씨름하고도
운동장을 들어서자마자 또 눈싸움입니다.
아이들이 죄다 어느새 눈이 돼버렸습니다.

아이들이 또 어덴가로 우르르 몰려갑니다.
밥 땐데 안보여요.
“검도 연습해요.”
“복습인갑지?”
“아니요, 취미활동이예요.”
하나 하나 또 돌아옵니다.
음악교실 마지막 시간은 음악감상을 했더랍니다.
대금산조를 들으며 마치 바람소리 파도 소리 같다고들 했다네요.
우리 악기들이 자연을 닮은 소리일테니...
수학교실은 도형영역을 했나 봐요.
‘하다’가 저녁 때건지기에 접시를 굳이 곁으로 가져와 같이 먹자 합니다.
“제가 90도 가르쳐줄까요?”
밥상의 모서리를 가리킵니다.
나중에 점과 직선 컴퍼스를 써서도 가르쳐주겠다 합니다.
샘들 일터까지 좇아와 그림을 그렸겠지요.
“으음, 내가 좀 모르기도 하는데, 이해돼?”
딴에는 제법 설명이 됩니다.
수학이 그리 재미가 났던 모양이지요.
웬만큼 이해도 되었던가 보지요.
점자에선 자음을 했다네요.
“시각장애인 알지?”
‘하다’는 그들이 짚는 하얀 지팡이에 대해 알려줍니다.
그래요, 이 아이들,
장애우에 대한 이해를 이리 키워가다 보면
그들의 권익을 위해서도 싸워주겠지요.
이곳에서 배우는 손말과 점자는 분명 그런 좋은 계기가 되리라 믿습니다.
참, 오늘은 판소리 한 대목으로 목깨나 쓰기도 했네요.

목공실에서 형길샘과 학교 아저씨가 눈을 쓸 너까래(?)를 만들 동안
(‘하다’가 와서 둘이서 쓸 수 있는 것도 만들자더랍니다.
그러면서 둘이, 호준과 자기가 들겠다더라지요, 그리 싸워대면서도.)
아이들은 톱과 낫과 조각칼 그리고 나무를 쥐고
방에서 오래 놀았습니다.
한쪽은 자치기를 위한 자와 눈을 만들고
한 편에선 나무 풍경을 위해 조각을 했습니다.
생나무라 아직 소리는 덜 났지만
마르면 바람 부는 날 맑은 소리를 낼 수 있을 테지요.
“풍경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한데모임에서 낮에 한 것을 보여달라고 한 게 아니라
먼저 보여주겠다던 인원이,
이번 계자는 어른들이 나서서 구경하자 안해도
자기들 안에서 먼저 펼쳐보이기를 요구합니다.
한데모임이 그래서 더 신이 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동놀이 해요?”
한데모임의 다음 질문이 그거였어요.
수시로 묻는 것도 모자라 한데모임까지 물고 늘어집니다.
“하죠, 며칠 안남았는데…”
내참, 저가 진행하나,
사회를 구슬이랑 보던 다영이 확신에 차서 대답합니다.
아, 이 지칠줄 모르는 대동놀이에 대한 애정이라니…
덕현이가 또 뭔가를 심각하게 들고 나옵니다.
“이건 오늘 일이 아니라 좀 시간이 지난 것이긴 한데
새끼일꾼 영화샘이 민우샘인가 하번샘인가 베개로 장난치다가
욕을 했어요.”
“어머, 그래? 그러면 안되지.
그래서 원래는 그 다음날 가는 건데 그날 내보냈잖아.”
“아, 그랬구나…”
그렇게들 한바탕 웃고마는데
우리의 정훈선수 난리가 났습니다.
“뭐요, 뭐요?”
“말할 때 잘 들어야지.”
모두 가르쳐주지 말자 합니다.
정훈이가 도대체 자기 얘기할 때말고 남의 얘기를 잘 들어야 말이지요.
“아이참, 누가 쫓겨났는데요?”
이야, 지독하데요, 진짜 끝까지 아무도 안가르쳐주더라고요.
“그러게 잘 들어야지.”
정훈인 이제 좀 잘 듣게 될까요?
한데모임에서 생각이 좀 틀어지자 흥분하는 아이들,
그리고 지들 속에서 말리고 가라앉히고.
양쪽을 앉혀놓고 묻습디다.
“너부터 말해봐.”
갈등을 푸는 방식도 예서 본대로 합니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자고로 본때가 있어야하느니라셨지요.
판결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이런 말하고 듣는 과정이 해결을 불러옵니다.
그러다 너그러움이 화두가 됩니다.
“이번 주 호숫가 나무아래 가서 우리 한 번 깊이 따져보지요?
무엇이 너그러움인가, 하고.”
중심생각으로 무엇이 좋을까 찾던 참인데 잘되었습니다.
“부엌샘, 주의사항 없나요?”
샘들이 알릴 것은 없나를 이들은 묻고있습니다.
정말 제법 규모를 가진 한데모임이라니까요.,
낼 사회자도 뽑아야지요.
샘들이 바로 앉으라할 때 들은 척 만 척 하던 혜연도
사회자가 똑바로 앉으라 하면 얼른 자세를 고칩니다.
그게 사회자가 가지 권력의 매력인가봐요.
그래서 오늘도 사회자리는 인기입니다.
손을 들었던 이들 가운데 꿈을 접지 않은 넷이 앞으로 나갑니다.
구영, 덕현, 령, 인원, 호준.
한데모임에서 그들이 한 행동을 살펴보자 합니다.
듣는 이로서의 품격을 유지한 자만이 사회자가 될 수 있다 하였지요.
호준이는 오늘 제 말만 하거나 앞으로 자꾸 나가서 방해를 했으니
사회 보기는 틀렸다 합니다.
삐져서 나가지만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습니다.
혼자서 극복해야하는 문제라는 거지요.
모두의 기대대로 금새 들어옵니다.
자기가 생각해도 자격이 안된다는 게 틀린 말이 아닌 거지요.
“다른 사람들도 스스로 잘 따져서
남이 사회볼 때 자기는 잘 귀기울였나 생각해봅시다.”
령이 들어옵니다.
이어서 인원이 들어옵니다.
“어, 아닌데…”
아이들은 인원이가 열심히 참석했던 걸 기억하는 거지요.
어쨌든 덕현과 구영이 남았습니다.
아이들이 이제 덕현을 물고 늘어집니다.
어떤 점 때문에 사회자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지 한마디씩 합니다.
“시민이 원한다면….”
어느 순간 고집을 꺾고 멋있게 사회자리를 놓는 덕현.
그러자 다수 사람들은 인원을 불러냅니다.
‘시민’이 원하는 거지요.
아이고, 참 긴 사회뽑기입니다.
나중에 덕현 왈, 이승만 흉내를 냈다지요.

눈은 바람도 없이 풀풀풀 얹힙니다.
차곡차곡 쌓이는 낙엽처럼 내리고 또 내립니다.
아이들과 편지를 쓰는 한밤입니다.
가장 그리운 이에게 쓰자 합니다.
큰 동그라미를 그리고 모두 바깥을 향해 등을 돌리고 앉습니다.
‘그’와 함께한 날들을 먼저 그려보자 합니다.
고요합니다.
하나 둘 엎드리기 시작합니다.
어떤 시간이 우리들 위로 흐르고 있던 걸까요?
고마움이겠습니다,
감사함이겠습니다.
마침,
마을 어르신 한 분이 곶감을 실어옵니다.
어제의 달집 태우기,
소고를 들고 춤을 추던, 고깔의 꽃 물결이 감동을 자아내던 우리 아이들에게
또 풍물을 치며 신명을 돋운 우리 식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겠습니다.
마을길을 닦은 애씀에 대한 인사이기도 하겠습니다.
편지들을 다 쓴 끝에 곶감부터 입에 물어봅니다.
“혹 다른 사람에게 읽어줄 수도 있을까요?”
글솜씨가 아니라 마음을 보고 싶다 합니다.
호준이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집안살림을 돌봐주는 큰엄마한테 썼습니다.
멀쩡합니다.
하다는 시카고에 계신 아빠와 안동의 큰 고모께 썼습니다.
부모님께 늘 죄송하다는 열택샘 편지도 듣고,
보름은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하더라는 다영의 편지도 듣고,
부모님께 쓴 편지를 읽다 끝내 울어버린 령,
반면 편지에서조차 야박하게 별로 안보고 싶다고 말해버린 솔직(?)한 정훈…

아이들은 싸우는 속도도 빠르고 화해의 속도 또한 빠릅니다.
미안하다는 사과가 넘칩니다, 결코 형식이 아닌.
그러면서 쉬 풀고.
공동체 식구로 사는 게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풀지 않으면 길이 없는,
도망갈 수 없는,
왜냐면 공동체가 자기 삶의 현장이니까.
같이 삶을 산다는 게 그런 건가 봅디다.

모든 일상을 같이 한다는 것,
함께 하는 시간이 오래 흐르고 보면
더 이상 껍질을 쓸 수가 없습니다.
착한 척 하던 자신도 친절한 척 하던 자신도 얌전을 부리던 자신도
우린 그만 어떤 사람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말지요.
어른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한없이 꾀쬐쬐하고 때로는 빛나는
더러는 게으르고 더러는 애써서 자신을 채찍질하는
개인의 지나친 욕심과 반면 공적인 가치를 위한 헌신이
뒤범벅되어 있습니다.
선에서부터 악까지, 동적인 것에서부터 정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이 가진 그 넓은 스펙트럼 속에
무엇이 자기인가, 어디로 나아가려는가
드디어는 고민을 하게 되지요.
선이 더 강하도록 고요가 더 강하도록
나는 어떤 사람이다를 넘어 나는 어떤 사람이고자 한다로
한 발 한 발 나아갑니다.
그게 또 공동체로 사는 한 까닭이겠습니다.
혼자서는 개인의 영성훈련조차 얼마나 어렵던가요,
우린 보통사람들이니까.
물꼬가 기숙학교를 원하는 한 까닭도 여기 있겠습니다.

진경샘이 나갔습니다.
아이 하나 오줌똥을 쌌는데
그 뒷바라지도 샘이 다 하다 가셨습니다.
강당에서 대동놀이도 같이 못해보고
운동장에서 같이 뛰어보지도 못하고
산에도 못가고 들에도 못가고 개천에도 못가보고
동네어른특강도 못듣고…
기자 한 사람도 다녀갑니다.
누가 오고 가도 아이들은 그런갑다 합니다.
다녀가는 이는 집에 든 손님일 따름이고 이들은 이곳 주인들이니까요.
튀지않으면서도 끊임없이 재잘대는 유쾌한 수빈이도 주인이고
낮게 말하며 마음씀이 고운 다옴이도 주인이고
아이들 모다 모다 대해리 자유학교 물꼬의 주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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