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계자 열 나흘째 2월 8일

조회 수 1947 추천 수 0 2004.02.11 18:30:00

< 나눔과 섬김 >

4337년 2월 8일 해날 햇살은 봄

“보름 더 있으랬죠?”
정훈이 물었습니다.
“그래.”
“진짜지요?”
집에 안간답니다.
어, 그런데 너도 나도 붙습니다.
“저도 안갈래요.”
“저두요.”
상범샘을 건너다보며 제가 물었지요.
“안갈 사람 정말 보름 더 살자 그럴까?”
“또 또, 사고치지 말구요…”
하마터면 그 말 입밖에 냈다가 수습 못할 뻔했지요.
아이들과 보내는 보름, 아직 하루가 더 있긴 합니다만,
정말이지 하루만 같습니다.

오늘은 나눔과 섬김의 날이었지요.
여기서 배운 것들을 내가 아닌, 여기 있는 우리 식구들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 나누자 합니다.
오전 오후로 나눠 앞 시간은 짐 꾸러미에 넣어갈,
가서 가족이든 친구에게 건네줄 걸 만듭니다.
매듭도 하고 바느질도 하고 뜨개질도 하고 조각도 하고 목걸이도…
오후엔 마을로 나갑니다.
역시 여기 와서 붙어다니던 사람들과는 떨어져보기로 했지요.
셋만 있던 정훈이네 패는 아쉬운대로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던 혜연이라도 달라 합니다.
다영이네는 일하는데 별 도움도 안될 ‘하다’라도 달라고 하고
그렇게 자, 유, 학, 교 네 패로 덩어리끼리 앉아봅니다.
구슬 인원 령,
다영 하다 구영 윤정,
나현 정근 다옴 덕현,
정훈 혜연 수빈 호준.
패 나누기를 하다 보면 것만으로도, 이렇게 마음을 내리는 법만 가지고도
큰 공부를 한다 싶어요.
경로당으로, 마을 어르신들 댁으로들 갑니다.
“게으르지 말자, 기쁜 마음으로 하자.”고 마음 단단히 먹고 갑니다.
학교 아저씨는 아이들 떠난 방을 치운다 하고,
희정샘은 혹시 아이들이 주문할 지 모를 음식과 차를 위해 대기하고,
저는 아이들 밥 때 먹을 고등어조림을 내놓고
날마다 올리는 39계자 우리살이 글을 쓴다 합니다.
어느 댁 손주며느리 본다고 빈집이 많았지요.
그래도 아랑곳 않고 마루를 닦아드리고
어르신 계신 댁에 가선 어깨를 주물러드리고
짐을 날라드리고 토담을 쓸고 마당의 눈을 치우고
저마다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다닙디다.
뉘 댁에선 보일러를 봐 드리기까지.
하하, 어느 모둠은 그 섬김 뒤
나이드신 분들만 계신 이 동네 웃음소리를 주어야 한다며
논둑에서 눈썰매로 온 마을을 들었다 놨다고도 하지요.
꿈보다 해몽이라고…
아, 그런데 우리 호준 선수 배탈로 인하야 설사를 네 차례나 했더랍니다.
어찌나 급히 나오는지
길가에 바지 내리고 볼일을 봤다지요.
그런데 학교 앞에 나온 거니 화장지를 따로 챙겼을 리 없지요.
누군가 화장지를 가지러 달려갔는데
소식 한참 없었더라나요.
“이걸로라도 해도 돼?”
상범샘이 장작더미에서 불쏘시개용으로 말아 꽂아둔 신문지를 발견했다지요.
그걸 비벼 닦았다는데,
여기니까, 여기여서, 별일을 다한다 싶었지요.
저들이 한 일보다 얻어먹은 게 더 많았음은
아이들 말을 빌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새우에 부침개에 곳감에 음료수에…
일을, 나눔을, 섬김을, 이리 기쁘게 하고 산다면 얼마나 좋을지요.
“자유학교에서의 배움은 이러합니다.
나만 우리 식구만 위해서 살라는 배움이라면
아니 배움만 못하다 싶어요.
내 창고에만 금은보화를 쌓는 배움이라면,
다른 존재를 돌아보지 않는 배움이라면,
차라리 아무것도 배우지 않겠습니다.”

아침엔 호숫가 나무아래 또 갔지요.
앞으로는 따로 채록자를 두어야겠습니다.
이게 쌓이면 좋은 마음공부 자료가 되겠다,
좋은 우리 학교 기록이 되겠다 싶었지요.
“무엇이 너그러움인가?”
우리들이 한데모임에서 미리 정한대로
이번 깊이 살펴보기의 중심생각을 알립니다.
‘하다’가 맨 먼저 손을 번쩍 들더니 입을 뗍니다.
“나한테 있는 거를 남에게 줄 때
좋은 걸 줄 수 있는 게 너그러움같애요.”
“예, 내게 배가 다섯 있다면 그 가운데 젤 크고 맛있어 보이는 걸
친구에게 줄 수 있는 마음, 그것이 너그러움이라 합니다.”
나중에 희정샘이랑 한참 웃었지요.
오랜 세뇌의 덕이라고.
내가 좋은 자리를 맡았더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 일어날 수 있는 것,
나와 다른 마음을 인정할 수 있는 것,
남의 잘못을 감싸줄 수 있는 것,
착함을 착함으로 보고 그 행동을 따라할 수 있는 마음,
과거에 내가 한 잘못으로 나를 못살게 굴지 않고
내 잘못을 스스로 용서할 수 있는 것도 너그러움이 아니겠냐 합니다.
정근이, 참 마음이 고운 아이지요, 어느 아인들 그렇지 않을까만,
순간순간 화도 잘 내고 씨 소리도 잘하고 장난도, 때리기도,
그런데 그가 말할 기회에 보면 마음이 그리 맑을 수가 없습니다.
어디서 한 아이에게 이리 귀를 기울이는 공간이 있을지요,
여기여서 어느 녀석이고 그 장점들이며가 크게 발현되는 듯하다는,
그래서 그렇지 못한 학교에서 늘 답답하다는 아리샘.
대답을 듣는 사이 사이로 고개를 주억거리고
그 말이 던진 파장과 파장 사이의 침묵들이
우리를 더 깊이 이끌어갑니다.
아주 어린 아이들까지도.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뜻하지 않은, 남을 통해 하는 적절한 발견들이
다시 화두를 곱씹어보게 합니다.
“우리 그렇게 너그러워들 봅시다.”
호숫가에서 돌아온 뒤로는 그 너그러움이 무기가 됩니다.
“너그러움!”
조금 사나움이 일 때도 그렇게 툭 한마디 던지면
그만 화도 내려버리는 아이들이랍니다.
호숫가 나무로 떠나는 여행, 어른하고 할 수 있는 것에도 놀랍고
물꼬 안에서 큰 작용을 하는 시간 같다고 샘들이 그러데요.

검도는 오늘도 맹연습이었습니다.
“야, 니들은 집에 가면 검도 개인 강습비 보내라 그래라.”
맨발로 강당으로 뛰어가 한 시간이 넘도록 나타나질 않습디다.
들려오던 기합소리…
그 곁 무대에서 잠시 어제도 오늘도
다영이랑 저는 스포츠댄스와 재즈댄스를 춰댔지요.
(사실은 기껏 다영으로부터 기본동작을 배운 것에 그친)
형길샘이랑은 인원이며 다옴이며 그림들을 그리 그려대데요.
형길샘이 만화캐릭터깨나 그리거든요.
먼저 그려주고 나니 저들끼리 아주 심취해있었습니다.
저마다 제 아는 것들을 그리들 나누었다지요.
수빈이랑 하다는 가마솥집 피아노 곁 무대에서
한참을 소꿉놀인지를 하더랍니다.
먼지떨이로 저들끼리 배를 타고 가고…
집처럼, 집에서인 듯이.
어찌나 재밌게들 노는지
열택샘이며 곁에서들 숨죽이고 구경했다데요.
넘들 열심히 그림에 몰입하던 어느 쉬는 짬에
하다랑 윤정이랑 수빈이는
세워둔 흰 칠판에 모여 오래 그림을 그리며 섰더라지요.
순간순간 얼마나 풍성하게들 놀이를 즐기는지…
대동놀이로 강강술래를 돌고난 뒤 한 감자싸움은
전쟁통이었지요.
감자싸움을 끝내고
지들 세수로 지워지지 않은 검뎅이자국을 씻어주는 고런 순간에
식구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는 샘들.

저녁 한데모임도 촛불을 켜놓고 했지요.
“어, 뭐예요?”
“촛불이지.”
“오늘 사회자 안뽑았어요.”
“어떡해요? 사회자 얼른 뽑아요.”
“저요, 저!”
"제가 할래요."
앞가슴을 탁탁치며 제가 나섰지요.
“나다, 나.”
아이들이 뭔 일인가 합니다.
우리는 예서 보낸 시간들을 돌아보기로 합니다.
호숫가 나무 아래로 떠나는 여행과 날마다의 명상이 몸에 뱄나 봅니다,
즐거운 시간들을 헤아려보면서도
고요함을 유지하데요.
멧돼지 사냥, 눈썰매, 달집태우기, 겨울살이와 열린교실들,
외국어, 동네어른특강…
많이도 하였습니다.
“눈을 쓸러 나왔다가 들어간 걸 모르고 혜연이를 너무 몰아쳤어요.”
다영이와 정훈, 그리고 인원이 미안하다 합니다.
마음을 푸는 혜연.
잘못했던 것, 미안했던 일들을 꺼냅니다.
자기가 막하는 행동에 저들 스스로도 잘못을 알다마다요.
샘들 하루재기에서 한 샘이 그랬습니다.
흔히 우리 관계에서
미안하다는 생각을, 말을 할 틈을 찾지 못할 때가 많지 않냐,
그래서 아이들에게 시간을 줘야한다고,
미암함이 들 시간을, 미안하다 말할 시간을.
초가 타 들어가는 동안,
우리 흥을 돋운 일들보다
행여 마음 다쳤을 지도 모르는 일들, 사람들을 살피는 게
더 소중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안하고 잘못한 일들을 꺼내놓는 아이들이
참 고마웠습니다.
어데서 이 아이들이 이곳으로 온 걸까요,
어데서 이 귀한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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