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자 94"를 마치고 - 하나

조회 수 1865 추천 수 0 2004.06.07 08:47:00


< 물빛도 녹음을 더하네 >

1. 풍경 몇

"선생님!"
"으응?"
어둠이 천천히 밀려오던 저녁답,
밥을 먹은 아이들이 공도 차고 자전거도 타고 죽창놀이도 하고
저마다 바쁜 운동장을 가로질러 사택으로 가는데
재헌이랑 성헌이가 불렀습니다.
뒤돌아봤겠지요.
저어기 씨익 웃고 있는 두 녀석입니다.
그만 세상이 다 환해지지요.
아이들이 불러줄 때 뒤를 돌아보는 순간,
어떤 보물보다 귀한 웃음을 만납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을 겝니다.
말도 안되는 놈들일지라도.

1학년 하늘이와 일곱 살 민재가 나란히 앉아 아침을 먹고 있었답니다.
민재가 하늘이 머리를 끌어 제 곁으로 당깁니다.
"봐, 내가 더 크잖아."
"아니 똑바로 앉아서 재야지."
하늘이가 얼른 허리를 곧추세웠습니다.
그런데 의자의 높낮이는 어쩌지요?
뒤편에서 밥을 먹다 어찌나 웃어댔던지...
정말 재밌기 그지없는 아이들 세계랍니다.

숲으로 탐험을 떠났던 시간,
선발대로 나선 6년 재헌이와 5년 영환이가
가로막힌 나무로 방향을 틀어야할 때였습니다.
"선생님, 그런데 걔요, 주현이요, 쟤는 왜 물꼬를 싫어해요?"
5학년 주현이가 내내 불안해하며 툴툴거려왔거든요.
말이 떨어질세라 영환이가 얼른 받았습니다.
"혼자만 그래!"
그래서 주현이를 뺀 모두가 다 재밌어야만 하는 계자가 된 게지요.

길도 없는 우거진 숲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동산같은 너른 공터를 만났더이다.
아무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나무에서
툭 삐져나오던 새싹처럼.
세상에,
그렇게 탐스러운 딸기들이 또 있을까요.
숲을 탐험하던 아이들이 그곳에서 발견한 딸기로
딸기나라라 일컫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곳을 탐험하던 아이들도 그곳으로 불러들였댔지요.
그래요,
그래서 사람들은 에베레스트를 오르고 남극을 가고
지독한 탐험 길에 오르나 봅니다.
내려오던 계곡에서
배가 불러 저녁밥을 못먹을 만치 먹은 산딸기와 오디 맛은
오래 잊히지 않을 테지요.
그렇게 가시덤불에 온 데를 긁히며 궁시렁대고도
돌아온 위대한 용사같은 표정이던 아이들의 얼굴과 함께.

2. 아이 마흔 둘에 어른 열 다섯

마흔이 오기로 한 계자였는데 둘이 더해져 왔습니다.
이미 공동체에 한녀석이 있고
마지막 번호가 쌍둥이 가운데 한 아이라 41번까지 갈 수 밖에 없었지요.
제주에서 일산까지 참 곳곳에서도 온 아이들이었습니다.
공동체식구 일곱에 여덟의 품앗이들이 붙었네요.
일곱 살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치 야무졌던 예진이,
아는 것도 참 많아 시끄러워죽겠던 민재,
거친 산에서 무사히 내려와 그 성취감으로 뿌듯해하던 정민이,
버섯 탕수에 밀가루를 잘 묻히던 근정이,
멀리 제주도에서 날아온 하늘이,
호떡 반죽을 크게도 떼어내던 효원이,
옷감에 들이던 물을 신기해하던 용희,
몸무게가 는 만큼 의젓해서 돌아온 경민이,
마음이 편해지는데 하루 반이 걸렸던 주현이,
너무나 순해져서 돌아온(제 용돈으로 논두렁이 된) 우리 재헌이,
아마도 형이 전해주었음직한 말로
진한 신뢰를 갖고 대해오던 성헌이,
창문에 그림을 잘 그려 넣어준 성은이,
어리광을 부리기엔 성큼 커버린 경은이,
오빠보다 누나같던 지호,
할말이 많았던 용준이,
무슨 보고서 작성하듯 갈무리를 잘하던 대호,
침묵하며 뽑은 풀을 한 움큼씩 쥐어오던,
관악구가 무너질지 모른다 걱정 많던 상영이,
우는 게 짧아진, 더워서 더 저러나 반팔을 찾아 입혀놓으니 멀쩡하던 지후,
길가의 똥도, 토한 것도 사랑해야 하느냐 묻던 근수,
말이 되던 큰 지원이,
부르면 같이 돌아보던 또 하나의, 없는 듯이 잘 지내던 작은 지원이,
어울리지 않게 일곱 살들을 잘도 돌보던 몸부림의 정훈이,
형님 노릇하며 다녀간 경험을 잘 나누던 영환이,
이젠 오빠 그늘을 벗어난 태린이,
후훗, 늘 그렇듯 네남매 가운데 첫째딸같은 셋째 영후,
곰사냥도 안갔는데 지금 돌아가면 어쩌냐고 안타까워하던 우재,
손 번쩍번쩍 들며 대답 잘하던 택환이,
누나들과 왔으나 저 알아서 댕기느라 혼자 온 줄 알았던 형준이,
자유학교 물꼬 상설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게 아직도 아쉽고 아쉬운 호준이,
오빠 얘기를 듣고 집에서 상상하던 것보다 더 신난다는 정하,
오디와 산딸기에 흠뻑 물들고
어이, 어이 서로를 부르며 산길에서 연대했던 지선이,
달밤에 운동장에서 잘 뻔했던 주완이,
오재미를 야물딱지게 던지던, 그저 귀여워서 아이들이 다 용서했던 세찬이,
똘망똘망해서 눈 한 번 더 주던 혜지,
궁금한 게 많기도 하고 정감있게 굴던 희원이,
민재랑 죽이 맞아 잠시도 쉬지않는 입을 가졌던 성수,
와봤다고 아는 체를 하며 주인노릇을 하려들던 태한이,
제 경험을 처음 온 이들에게 잘 나누던 희영이,
소같이 순하고 커다란 눈을 가진 승욱이,
지금 목소리가 낮은 거라고 강조하며 더 컸던 목소리의 세호,
모두 모이는 자리에서 새끼일꾼처럼 제 역할을 하며
또 뵐게요, 외치고 손 흔들며 떠난 동근이.
그리고 제 사는 곳이라고 곳곳을 안내하던 류옥하다가
그 마흔 두 녀석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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