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계자 이튿날, 2008. 8. 4.달날. 맑음

조회 수 1270 추천 수 0 2008.08.23 14:10:00

126 계자 이튿날, 2008. 8. 4.달날. 맑음


해건지기.
뭔가 계획된 느낌이 좋다는 기표샘입니다.
새끼일꾼으로 올 때까진
어떻게든 미적거리며 이부자리를 걷지 못하던 그였지요.
그런데 이제 수련시간이 다른 느낌으로 오나 봅니다.
어른들이 끝낸 수련 공간으로 이제 아이들이 들어섭니다.
하나 하나 이름을 불러주지요.
비틀비틀 진서도 들어섭니다.
잔뜩 못 마땅한 얼굴입니다.
저 얼굴이 돌아갈 땐 펴질 수 있으려나요.
몸풀기와 명상을 끝낸 아이들이 학교 둘레를 거닙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그리고 물꼬가 키우는 것들도 안내하지요.
“우리 밥상에 지금 오르고 있는 버섯도 저기서 나온 겁니다.”
“정말요?”
아이들은 버섯동 안을 한참을 기웃거렸지요.
우리를 둘러친 것들은 온통 먹을 것들입니다.
감나무, 호두나무, 밤나무, 대추나무, 뽕나무,
그리고 질경이, 머위, 호박잎, 짚신나물, 멸가치...
먹을 것들 지천인데
여전히 사람들은 굶어죽고 있다 하고,
날마다 먹고 살기 위해 엄청난 시간을 노동하고...
여름 아침은 알 수 없는 삶의 고리로
또 한숨이 나오지요.
자연에서 거두어 먹던 시절에 가졌던 기술들을 다 잃고
오늘날 무엇으로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건지, 원...

징소리에 열심히 달려와 아침을 먹고
손풀기를 하느라 방 가득 모여 그림을 그리고
다시 고래방으로 건너가 우리가락시간을 맞습니다.
판소리를 이야기와 함께 주욱 들려주고
그 가운데 한 대목을 배우지요.
소리들을 잘하데요, 참 잘하데요.
모이기를 잘하는 이번 아이들의 특징이기도 하여 그럴까요,
목소리도 그리 모아내데요.
다음은 악기를 들었습니다.
몸으로 먼저 익히고 악기를 꺼냈지요.
‘아이들보다 나 자신이 더 배운 것 같고 즐거웠다.’
새끼일꾼 가연형님은 그리 썼습니다.
“장구를 처음 만진 곳이 물꼬였고,
학교에서 수행평가 하는데 장구치기가 그때 도움 많이 됐어요.
하면 도움이 되는...”
새끼일꾼 지윤형님은 빠져있는 아이들을 아쉬워합니다.
하지만 관객도 잡색도 빛을 발하는 게 우리의 전통문화마당의 장점이지요.
어느새 뒤에 늘어져 있던 아이들이 눈 댕그랗게 뜨고,
하기야 악기 소리에 그냥 앉았을 수도 없었겠지만,
마루 한가운데서 아이들이 빚어내는 공연 한 판에 젖었더랍니다.

땀 냈다고 밥 먹고 다시 물놀이 갔지요.
기표샘과 희중샘의 한 판 승부도 있었습니다.
아이들도 패를 나누었겠지요.
대동놀이가 따로 없습니다.
미적거리며 물가를 빙빙 돌던 아이들도
물을 피하다 한두 방울 젖기 시작하면
그 핑계로 물로 첨벙 뛰어듭니다.
쫄딱 젖은 아이들이 줄줄이 산모롱이를 돌아오네요.
‘아이들 씻기고 밥을 먹었는데 좀 더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새로 온 새끼일꾼들이었습니다.

자잘한 실랑이들이며 복닥거림이,
언제나 시간과 시간 사이에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이곳이지요.
그래서 어쩌면 계자는 프로그램이 중심이 아니라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야말로 프로그램이라 일컫는 게지요.
상민이와 창현이가 싸웠습니다.
알고 보니 설거지를 서로 하겠다는 싸움이었다나요.
새끼일꾼 현희형님은 종일 지운이와 규리를 업고 다닙니다.
큰 놈이고 작은 놈이고 그 등에서 떨어질 줄을 모르네요.
지난 겨울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승연이에겐 집 떠난 첫 밤이 힘에 겨웠습니다.
곁에 있었던 새끼일꾼 소연형님과 지윤형님은
잠을 설쳐 종일 졸음에 겨워했지요.
“작년에는 많이 울고 나랑 말도 별로 안했는데
이번에는 덜 울고 나 볼 때마다 피하지도 않고 씨익 웃어주고...”
그래도 훌쩍 자라서 온 승연이의 모습에 희중샘은 퍽이나 기특해 합니다.
중학생인 수현이와 윤지는 맏언니 역을 크게 해내고 있네요.
‘어린 아이 한 명이 어떤 얘기를 했는데 상상력이 정말 넘치는 이야기였다. 듣고 있다 보니 어렸을 적도 생각나고...... 뭔가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순수하고 어른이었다. 내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혹여 상처는 받지 않을까 염려스럽게 된다. 내가 진정으로 배우려고 했던 것들을 찾은 것 같아서 뿌듯했다.’
아이들 속에서 새끼일꾼 가연형님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합니다.

인형놀이가 있었습니다.
손인형과 줄인형을 만드는 일이 거푸 있었지요.
좀 더웠습니다.
여름, 물론 덥지요.
더구나 이곳의 여름은 나무들 사이라 질이 다른 더위이긴 합니다.
하지만 서쪽으로 향한 건물의 오후는
고스란히 기온이 거기 다 몰리기 마련인지라
무척 더웠더랬습니다.
그래도 재밌긴 하였지요.
아이들은 손가락을 집어넣고
자기가 만든 인형이 되어 저마다 목소리를 내며 낄낄거렸습니다.
줄인형은 서로 맞대고 해야는데
류옥하다와 소영이는 서로 마주 앉아
어찌나 사이좋게 인형을 만들던지요.
태현이며 조잘조잘한 녀석들은
제 곁에 와서 둘러앉아 머리를 맞댔더랍니다.
소꿉놀이처럼 자잘한 재미들이 있는 시간이었지요.
그런데 아무래도 인형극을 오래 하셨던 분들이라 성량이 좋은 탓에
목소리가 너무 짱짱하니
덥기 조금 더했습니다.
이곳에 와서 낮은 목소리에 익어진 아이들에게
큰 목소리가 더위를 더했을 법도 합니다.
한 번씩 일어나 이곳의 음높이로 가라앉혀놓으면
어느새 진행하시는 샘은 목소리를 또 키워놓고 계셨지요.
그러기를 대여섯 차례 하자
어느새 끝나는 시간이었더랍니다.
그 후덥지근했던 시간이 고이 지나가면 또 섭섭하겠지요.
진서가 그만 울어버렸습니다.
날도 덥고, 줄은 엉키고, 배도 고프고(먹는 게 영 시원찮고 있습니다),
그리고 졸음도 엄습하자
그만 빼액 울어버린 것입니다.
달려갔지요.
안아줍니다.
금새 잠이 들었네요.
샘들이 받아다 방에 가서 눕힙니다.
자고 나면, 그리고 저녁답의 선선함이 기분을 좀 낫게 도와줄 테지요
(아니나 다를까 저녁엔 몇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있었지요).

'바깥수업이 일정정도의 흥미를 끌고 오기는 하지만
전체 일정 흐름에 조화로운가'를 고민하는 기회를 준 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물꼬도 줄 수 있는 게 많은데,
이왕이면 그런 것들을 하는 게 더 좋지 않겠냐는 조언도 있었지요.
그렇다고 애쓴 분들의 노고가 사라지는 건 결코 아닙니다.
많은 아이들 데리고 날 무지 더운데 정말 애들 쓰고 가셨습니다.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샘들도 또 많이 배웠지요,
알고 보면 별 거 아니지만 늘 그 ‘알’고를 몰라 못 하는 거니까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샘 몇이 그 시간 마실을 나간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외부수업에서 들어와 아이들과 시간을 꾸려가므로
꼭 이곳 샘들이 다 자리를 지켜야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지키는 파수꾼이 그러면 안 될 일이라고
조금 혼이 났지요.
꼭 같은 시간을
청소를 하거나 해우소를 들여다보거나 빨래를 개는 일에 쓰는 이도 있었습니다.
오래 이곳을 익숙하게 안다는 것은
자칫 긴장을 늦추게 하는 일이 되고는 합니다.
그런 것을 경계할 줄 아는 것이
또한 오래 이곳을 지켜온 이들의 중요한 몫이 아닐는지요.

한데모임.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손말을 배우고 하루를 돌아본 뒤
서로 혹 생각을 나눌 일은 없는가 묻는데,
역시나 책이 널려있는 책방 문제가 등장합니다.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좋았다’는
새끼일꾼 가연형님의 말대로
아이들은 자기들 문제가 되면 온 힘으로 얘기를 끌고 갑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새로운 해결법이 등장하네요.
책방운영자를 자청한 사람들이 책방을 한 번 운영해보겠다 합니다.
도현 지인 현진 유나 지윤에다 진우와 지운이가 보조로 나섰지요.
무열샘은 하루평가글에서 이리 쓰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참 즐거운 한데모임을 보았다. 책방 문제에 대한 아이들의 열띤 토론. 어른들이 보기에는 그럭저럭 쉽게 답을 낼 수 있는 문제일지 모르겠지만, 아이들 한 마디 한 마디에 담겨있는 그 열정, 순수함. 그리고 모두의 생각이 모여 점차 발전해가는 의견들을 보면 세상에서 ‘답’이라는 것이 그닥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그게 바로 한데모임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다마다요.
‘아이들끼리 필요사항 같은 것을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꾸 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어쩌면 어른들보다도 성숙하게 자기 의견을 내놓는 것 같다는 생각도...’
새끼일꾼 유정형님의 하루정리글에서였습니다.
아, 밥이 정말 맛있다는 덧붙임도 줄줄이 나왔더랍니다.

어른 하루재기.
“하루재기 하면서 많이 배워요.”
새끼일꾼 가연형님의 말이 아니어도 늘 우리에게 그렇습니다.
이 자리가 교사연수에 다름 아니다 싶지요.
여기 오래 한 자리를 지키며 중심에 있는 저 역시
그들이 키워주고 있답니다.
늘 그렇지만, ‘사람’한테 감동하지요.
기표샘, 모르지 않았지만 참 성격 좋습니다.
게다 덩치만큼 한 몫을 하지요.
잘도 움직입니다.
더하여 ‘여유’가 있어졌습니다.
새끼일꾼 때만 해도 애 하나 건사하는 것 같더니
성큼 어른이 되어 온 그입니다.
무열샘과 희중샘,
어제 그토록 죽으라 놀고 쓰러질 것 같더니
이른 아침을 그들이 열고 있었습니다.
낮에는 똥통과 오줌통도 그들이 날마다 비우고 있지요
(모두 깨기 직전에는 종대샘이 하는 일입니다).
“눈에 보이면 치우면 되는 거고...”
희중샘의 말에 감동이 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보고, 그리고 움직이면 되지요!
희중샘, 결코 대학 안에서 배울 수 없는 현장의 경험을 통해성큼 성장한 그를 봅니다.
기쁩니다.
사람이 연한 것(실하지 못한 것) 같더니 정말 잘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안으로 얼마나 많은 힘을 내야 할까요.
지난 겨울만해도 약간은 늘어짐이 자주이더니,
계속 긴장을 놓지 않는 이 여름입니다.
덩치가 큰 그에게 여름은 더욱 힘든 일정일 텐데...
언제나처럼 사람에 대한 감동으로 계자를 꾸려냅니다.
(아이들이 잘은 몰라도 바로 이런 기운을 업고 이곳을 누리고 있을 것이며
그 느낌으로 이곳을 다시 또 찾게 되는 걸 겝니다.)
오랫동안 실무를 맡아왔던 친구가 지금 바깥공부 중이라
이번 여름날을 어찌 하나 걱정이 적지 않았는데
웬걸, 하늘이 고맙습니다, 사람이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런 물꼬가 자랑스럽고 그 속에 살아서 또 고맙기 한없습니다.

무열샘의 얘기에 모두 고개 주억거렸습니다.
“하루재기 때나 처음 모둠샘을 했을 때도 옛날에 왔던 샘들 (내가)따라 하는 구나,
따듯한 마음이 일고...
앞으로 저 아이 날 보고 내 행동 보며 이어지겠구나...”
그럴 겁니다.
물꼬가 올 여름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어느 해는 지금의 아이들이 물꼬를 꾸려갈 것입니다.
당장 수현이랑 윤지가 이번 여름을 연습으로
올 겨울이면 새끼일꾼으로 올 테지요.

그리고 새끼일꾼 우리 정훈형님의 하루평가글.
‘오늘 미쳐버리는 하루
짜증나는 하루
스트레스 하루
스테미나 부족한 하루.’
아이들을 온 몸으로 받아주고 있는 그이지요.
어른들은 결코 아이들의 에너지를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걸 새끼일꾼들이 해주고 있지요, 몸으로 말입니다.
그들이 하는 가장 큰 역할이 바로 이것이라지요,
어른들과 아이들 사이에서.
애썼다, 이정훈선수, 그리고 새끼일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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