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계자 닷샛날, 2008. 8. 7.나무날. 맑음

조회 수 1409 추천 수 0 2008.08.24 11:26:00

126 계자 닷샛날, 2008. 8. 7.나무날. 맑음


<“참 좋았어요.”>


‘백두대간 능선길’,
네, 종일 산에 드는 날입니다.
규리가 열이 심합니다.
정익샘과 젊은 할아버지한테 맡기지요.
응급약으로 한약재도 남깁니다.
만일의 경우 119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창현이는 아킬레스건염을 걱정합니다.
한 번 해보자 했습니다.
저도 한답니다.
“그래, 한 번 가 보자.”

불운한 소식 둘이 닿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무거운 어깨로 갔던 산오름입니다.
이미 모르지 않았지만
아이들과 오르는 산은
산 아래 세상에서 일어난 일들을 잘 정리해주는 힘이 있습니다.
비로소 마음도 가벼워졌지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알았습니다.

지난 주 버스도 놓치더니 다들 긴장이 좀 있었는가,
새벽의 시작은 좋습니다.
그러나 김밥을 싸는데 정신이 좀 없었지요.
특히 왔던 이들이 다잡아 해얄 것을
수다 떠느라 그만 분위기가 너무 풀어져버렸습니다.
아쉽습니다.
그래서 난장판을 벌여놓고 산으로 갔지요.
그 상황을 보는 정익샘이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대신 버스는 여유로이 탔네요.

안에서 보지 못했던 서로의 모습들을 만나게 되지요.
익어왔던 것과 다른 관계들이 엮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학교 안이라는 장을 바꿔 산으로 가는 걸까요?
이십여 분을 넘게 마을 계곡 들머리를 걸어나가
물한계곡으로 가는 버스에 오릅니다.
물한주차장에 부려진 우리들은 산 안내도 앞에서
산에 사는 것들의 집, 그러니까 남의 집을 방문하는 자의 예를 확인한 다음
긴 여정에 오르지요.

도현이가 형아 노릇을 톡톡히 합니다,
샘들 가방도 나눠 들어주고 동생들을 챙기고.
저만치서 문성이가 진서를 잘 데리고 가네요.
새끼일꾼들이 열심히 세원이한테 붙어 영어를 시도하기도 합니다.
다음엔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온다데요.
세원이는 또 와야겠습니다, 그거 검사하러.
준기 지운이는 주로 뒤쪽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윤샘이 기표샘 보고 ‘아들’이라고 하면 기표샘은 지윤샘한테 달려들어 ‘딸, 아이고 귀여워’라고 하면서 볼을 꼬집었다. 그리고 무열샘은 이상한 말을 해서 웃겨주었다. 기표샘이 이상한 노래를 불렀었다. ‘고래고래고래 새우새우새우 고래가 새우를 잡아먹었다’라고 불렀다. 준기는 새우라는 말을 듣고 배고파 계속 슬라이딩을 하였다. 기표샘, 지윤샘과 난 계속 고래, 새우 노래를 부르며 올라갔다.’
지운이가 남긴 글입니다.
미경 원 창현이도 뒤쪽입니다.
미경이는 버릇처럼 돌아 가겠다 하고
창현이는 아킬레스건염이 있다며 힘들어 하고
원이는 계속 주저앉거나 쓰러지며 가지 않으려 하고...
무열샘은 그들을 앞으로 보내봅니다.
그러자 또 무리 없이 나아가네요.
영창이가 코피가 나기도 했습니다.
힘들었나 봅니다.
진서는 이제 진주형님이랑 같이 갑니다.
산에 갈 때는 긴 옷 입어야 한다,
어머니가 그랬다고 긴 옷을 벗지 않고 있는 진서입니다.
“‘막 안 되는 영어 짜내서 하는데
힘내라는 말이 생각이 안 나서 물어보니 사탕 주면 가르쳐준다고...”
사탕만 잃었다는 진주형님과
더러 울먹이다가 금새 꾸욱 참는 진서가 나란히 올라가고 있습니다.
미국이 좋아 한국이 좋아,
누가 그에게 그리 물었다는데 야물게 한국이 좋아라더니
하지만 곧 미국이 좋다고 말을 바꾸었다데요.
“놀 것도 많고...”
막판에는 맨 선두에 선 옥샘을 찾는다고 막 올라가더랍니다.
환일이는 내내 머리가 좀 아팠는데, 좀 개운해졌나 봅니다.
쉼터마다 빙 사내녀석들 둘러치고 은근슬쩍 말로 웃깁니다.
그런 재주가 또 그에게 있었습니다.
산에 가지 않았더라면 보지 못했을 모습입니다.

준기는 누군가 위에 삼겹살 있다고 해서 열심히 올라갔는데
아유, 우리를 기다리는 건 김밥!
김밥 김밥 김밥 돼지갈비 통닭 통닭 통닭...
1242미터의 민주지산 정상에서
애들은 샘들 보따리에서 김밥이 나오는 동안도 못 참겠다고
먹을 것들 이름을 불렀더랍니다.
여기서도 자연스레 줄을 서는 이번 계자 아이들!
그런데 이런, 105줄 김밥, 넉넉할 텐데,
역시 아침이 좀 부실했나 봅니다.
여느 계자 같으면 떡국을 먹는데,
오늘은 엊저녁 열심히 누룽지를 눌였다 끓여냈지요.
김밥이 모자랍니다.
저런, 게다 두 개씩 돌아가야 할 초코파이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먼저 먹겠다고 달겨 든 녀석들한테 한 소리 하는데,
거기 이곳에 사는 류옥하다 선수도 껴있었지요.
“야, 너마저 그러냐?”
“왜냐하면 여기 초코파이는 산 아래 초코파이랑 다르거든요.”
맞습니다, 어디 이곳에서의 맛이 아래 가서 나겠는지요.
아이들인들 집으로 돌아가면 초코파이를 거들떠나 보겠는지요.
어쨌든 하나 밖에 못 먹은 아이들은 내려가서 주마 했고
물론 산 아래서 그 빚 갚았습니다요.
‘그런데 모자란다 했을 때 버럭 화를 냈다.
아이들이라 당연하고 또 힘들어서 그랬을 테지, 싶지만...’
샘들이 좀 아쉬워라 합니다.
물꼬에서 보기 드문 모습이지요.
역시 처음 온 아이들이 많아 그랬겠습니다.
하기야 얼마나 힘이 들면 그랬을라구요.

내려오는 길은 조금 수월합니다.
오르던 바윗길과 달리 새로 닦아놓은 등산길로 돌아왔지요.
더러 아이들이 그랬습니다,
내가 이 긴 길을 올랐구나.
내려오는 길은 얼마나 여유로운지요.
곁에 선 류옥하다가 그러데요.
“산은 내려올려고 올라가나 봐요.”
“무슨 말이야?”
“내려오면서 갔던 길을 다시 보고
올라갈 때는 힘들기만 하지만 내려올 땐 친구도 사귀고
못 봤던 나비 같은 것도 보게 되고
돌아보게 되고...”
어쩜 확 자신의 삶의 절정기에 이른 뒤
황혼으로 가는 나이가 그래서 아름다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왔던 날들을 돌아보며 가만가만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크게 뒤처지지 않고 다들 잘 내려왔습니다.
무사히 다들 5:10 버스에 오를 수 있었지요.
산오름도 일정 내내처럼 모다 적극적이었으나
딱 하나 아쉬워들했습니다.
정리!
정리하지 않음은 책임지지 않음입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그토록 ‘돌아봅니다’를 강조하지요.
이번에 유달리 아이들 지나온 자리에
사탕껍질들이 널렸더랍니다.
다른 때와 달리 따로 강조하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으나
산에 그리하면 아니 된다는 건 당연히 알아야 하는 일 아니겠는지요.

그래도 기특한 아이들이다마다요.
처음 물꼬 산오름을 같이 한 기석샘,
‘막상 가니 내가 가기에도 힘들고 거칠더라.
애들이 내재적 한계가 대단하다 많이 배웠다.
많이 친해지고...’
하루평가글에서 그리 쓰고 있었습니다.
‘지은이 자주 울었는데 꽤 활달하고 성대모사도 잘하고...
양옆으로 손을 잡고 가던 소연이 승연이,
그 손을 놓고도 안 넘어지는 법도 배워가면서...’
구슬샘은 이리 썼지요.
그렇습니다.
바깥으로 나가니 새로운 관계, 새로운 모습들이 표면으로 나오지요.
산오름은 아이들의 또 다른 모습들을 끌어냅니다.
자기 자신을 다시 보게도 하지요.

저녁, 마지막 한데모임.
‘오늘 한데모임시간에 노래를 부르는데 무열쌤이 신나게 열창해서 나도 덩달아 신이나 열심히 불렀는데 그게 웃겼나 본지 애들이 웃어서 함께 웃으며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진주샘이 그리 썼데요.
왜 우리는 산을 올랐는가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엿새 가운데 하루를 산오름에 통째로 내주는 데는
그만한 가치가 있어서이지 않을지요.
아이들은 그 시간을 돌아보며 산 위에서의 풍광을 다시 떠올리기도 했고
스스로 대견해했으며
뿌듯해했고 자신 있어 했답니다.
그 기세로 고래방에 건너가 강강술래 신나게 풀어냈지요.

장작놀이.
지난주는 비와서 못하고
겨울에도 내내 촛불잔치로 거의 대신하던 모닥불을
오늘은 마당 한가운데 피웠네요.
노래 이어달리기를 합니다.
노래하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난다며
기표샘 무열샘 정말 열심히 부르고 있데요.
또 하나의 아쉬움.
“대중가요들... 노래 가사나 아이들이 부를 게 아닌데,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대중매체라는 게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구나...”
무열샘의 얘기가 모두의 공감을 샀지요.
물꼬가 계자 기간 동안 좋은 노래들을 많이 부르고 싶은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풍성한 노래, 좋은 노래들이 우리를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요.
“별 보이고 연기, 별 보이고 장작불 타고 이런 곳에서 아이들이 저러한데
이제 도시로 돌아가면 안 좋은 쪽으로 많이 가겠구나...”
어느 샘의 한탄도 그만의 것이 아니었을 겝니다.

빙 둘러서서 이제 고요하게 지난 닷새를 돌아봅니다.
하늘에서 기다렸다는 듯 별들이 막 막 쏟아져 내리고
남북으로 건너는 미리내가 선명하였습니다.
한 명 한 명 자기 마음을 끄집어냈지요.
서진이가 그랬습니다.
“참 좋았어요.”
그런데 그 ‘참’과 ‘좋았어요’가
어찌나 선연하게 가슴을 파고 들어오던지요...
새끼일꾼 진주형님은 나랑 친한 사람과만 놀려고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던가요.
그래요, 계자, 바로 우리 자신을 보는 자리이지요.
아이들을 돌보면서 어느 순간 적나라하게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는 곳,
그래서 샘들도 깊이 배우는 자리이지요.
그 발견이 고마웠습니다.

빼놓을 수 없는 인디언놀이.
새까맣게 탄 감자 껍질로 검댕을 묻히며
애에게나 어른에게나 모두 한바탕 대동제가 되었습니다.
피로가 누적된 희중쌤이 그만 잠시 잠이 들어
함께 하지 못해 여러 사람을 안타깝게 하였지요.
모두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사그라지는 불가에 앉은 무열샘과 젊은할아버지(소사아저씨/삼촌).
“힘들지 않으세요, 하루 4~5시간 주무시면서...”
“재밌으니 하지...”
잔잔한 감동이 일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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