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계자 닫는 날, 2008. 8. 8.쇠날. 맑음

조회 수 1232 추천 수 0 2008.08.24 15:31:00

126 계자 닫는 날, 2008. 8. 8.쇠날. 맑음


이른 아침 이불을 텁니다.
햇살도 참 좋습니다.
모두 한 마디씩을 건넵니다,
평화로움을 혼자 누리기 아까워.

갈무리를 합니다.
지냈던 공간에 대한 정리와 다른 사람이 쓸 공간을 위한 배려가
함께 하는 시간입니다.
마지막날 특별히 꾸리는 일정이 없다고
먼저 아이들을 데려가는 부모님들이 혹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이야말로 계자의 아주 중요한 시간 아닐까 싶습니다.
전 일정을 마무리하고 마지막 정리를 하는 것,
그건 책임을 배우는 소중한 자리 아닐는지요.
아이들 청소가 기대 이상이었다는 기석샘 말대로
오늘 먼지풀풀은
어제 산에서 버리던 사탕껍질의 찌푸림을 말끔히 날려주었지요.

“프로펠러 달아야 해요.”
못다 한 작업을 꼭 하는 녀석도 있기 마련입니다.
진서였네요.
비행기가 덜 됐다고 굳이 톱을 듭니다.
부엌에서 종대샘이 잠시 짬을 내 목공실로 갔지요.
애써서 잘라줬는데, 그건 또 너무 크다네요.
그걸 또 다시 잘 잘라주는 샘입니다.

계자마다 두고 두고 떠올려지는 인상적인 장면 하나 꼭 있지요.
이번 계자에선 책방 폐쇄가 거론되던 물날 한데모임에서의 열전이었는데,
무엇보다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동참하고 있어 더 의미가 컸습니다.
“준기는 손 들라 했더니 머리가 먼저 올라온다!”
턱 아래 앉은 준기가
우리 모두의 즐거움을 위해 맘 상하지 않고 도마 위에 올라주었고
그 분위기를 타고 유쾌하게 한데모임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책방운영위원들이 더 애써서 정리를 해 보겠다 나서고,
포기하는 아이들을 설득하는 이들이 생기고,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어쩜 우리가 거기서 만난 건
봉사와 헌신, 그리고 책임 같은 것들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무릇 토론이 그리 화기로울 수도 있을 것을...
어른들이 깊이 돌아본 시간이기도 하였더이다.

그렇더라도 너무 수월해서 재미가 덜했던 게
또 이 계자의 특징이려나요.
그런 만큼 새끼일꾼들이,
주로 그들이 아이들의 에너지를 받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그 에너지가 다른 계자에 견주어 덜 흘러
그래서 새끼일꾼들이 좀 늘어졌던 점도 없잖았더랬습니다.
전체 분위기가 순한 아이들이어서 ‘애들이 좋았다’고들 여러 샘들이 그랬는데,
여기서 퍽, 저기서 퍽,
애들이랑 그런 맛도 또 있어야지 싶데요.
아무래도 처음 온 아이들이 많았던 영향도 컸을 겝니다.
조심조심 내딛는 발,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다 거기가 단단한 걸 알면 텅텅 밟고 가는 것 아니겠는지요.
다음 계자에 오면 또 다른 모습들이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영동역에서 아이들을 보내고
샘들은 모여 갈무리모임을 합니다.
가슴 벅찼지 않았던 계자가 어디 있었을라나요.
무열샘과 기표샘, 그리고 희중샘을 축으로 꾸려졌던 계자,
대단합니다, 놀라움을 금치 못했더랬지요.
그들의 우직함이 계자를 밀고 갔습니다.
그리고 새끼일꾼들이 잘 받쳐주었지요.
이 계자가 크게 아름다웠던 건 바로 그 때문 아니었나 싶습니다.
중간에 왔던 기석샘 구슬샘도 잘 더해졌더랬지요.
나서는 마음이 크지 않으면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늘 모이는 이들이 고맙습니다.

전체실무를 끌어갔던 무열샘,
“옛날보다 애들이랑 있는 시간이 적었어요...
정신없이 흘러갔습니다...
일 많아서 시선이 넓어진 것 같아 개인적으로 기쁩니다...
열정적인 한데모임 의견 토론 보기 좋았어요...’
마지막으로 종대샘의 쓴소리가 있었습니다.
“(계자를 꾸리는 일이)힘든 일인 것 같애요. 저는 지난해 여름, 겨울에 이어 여덟 번째 계자였는데, 가마솥방에 있어서 샘들이랑 덜 움직였지만... 희중샘 무열샘 계속 오는 이들 참 잘한다 생각했습니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미리모임에서도 말했지만 중앙에서 얘기하는 게 잘 안 지켜지고...공간에 익숙하니까 습관처럼 되고... (먼저 이곳을 와봤던 새끼일꾼들이)잘해줄 필요가 있는데...”
새끼일꾼들이 말을 좀 안 들었던 면이 있었지요,
특히 와 봤던 녀석들이.
책방에서 자지마라, 낮에 어른공부방에 머물지 마라던.
“품앗이샘들이 적고 새끼일꾼 많으니 중앙이 힘이 드는데, 그런 걸 헤아려 익숙한 만큼 움직여주지 않아 아쉬웠어요... (하지만) 힘든 일인데, 아이들 에너지 따라가는 것만도 힘든데 고맙고 감사합니다.”
관계를 오래 가지고 가는 지혜에는
관계의 긴장도 또한 일정정도 가지고 있어야겠지요.
모두 다시 되새김질해 볼 말이었답니다.
그래서 새끼일꾼들은 일정을 좀 걸러서 오는 건 어떨까 하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들이 이 계자를 꾸린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늘 그렇지요, 장하고, 고맙습니다.
이 땅의 다른 중고생에 견주면,
어른들과 꼭 같이 움직이면서 그들이 해내는 걸 보면,
대단하다마다요.
어쩌면 ‘물꼬의 새끼일꾼’이라는 ‘영광’의 자리가
너무 많은 걸 요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싶네요.

아,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애들 데리고 있으면 그저 다치지만 않아도 고맙지요.
뭘 그리 많이 바란답니까.
우리 아이들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곳에서
얼마나 신나게들 지내던지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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