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계자 여는 날, 2008. 8.10.해날. 맑음

조회 수 1260 추천 수 0 2008.09.07 23:11:00

127 계자 여는 날, 2008. 8.10.해날. 맑음


어제 저녁답에 명지대 김석환교수님과 몇 분들이
예정 없이 찾아오셨는데,
달골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고
너무 늦지 않은 아침에 빠져나가셨지요.
계자를 해도 이곳은 또한 물꼬의 일상적 삶터이므로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답니다.

이른 아침 계자에서 모두가 한 권씩 들고 다닐 글집을 마저 엮고
밥을 먹은 뒤 남은 이들은 남은대로,
영동역으로 아이들을 맞으러가는 이들은 그들대로 움직였습니다.
청소를 마친 샘들이 마당에 나가 풀을 맸지요.
“말 없고, 굉장한 침묵, 스스로의 내면으로 침잠하는데...”
서로 교감의 시간도 좋지만 각자의 생각도 좋더라고들 하데요.
한 구석에선 미루샘과 기락샘이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있었는데,
살면서 쓰레기통 쓰레기를 헤집어가며 일하는 순간이 얼마나 있겠냐 싶더라며
잘 살면, 좀 더 잘 살면 줄일 수 있는 걸 낭비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삶을 잘 돌아도 보게 되었다지요.
“어떤 걸 먹느냐도 영향을 끼치더라구요.
예를 들면 과일을 먹느냐, 아니면 과자를 먹느냐...”
때마다 쓰레기를 정리하는데
같은 일을 해도 이리 사유하며 하는 이들이 있습디다.

역에 나간 희중샘은 신이 났지요.
“세인이 세빈이, 인영이 세영이 부모님들이 알아봐주시고...”
그래요, 내내 같이 살아가지 않아도
가끔 있는 계자에서의 지속적인 만남들이 관계의 굵은 끈이 됩니다.
그래서 새끼일꾼들이며 자라난 품앗이일꾼들이
서슴없이 자신들을 키워준 게 물꼬라고 말해주는 거지요.
무열샘,
“아이들처럼 부모님들도 적극적이어서
직접 글집과 이름표를 나눠주시는 분들이 계시고...
차에서 내내 떠들고 움직이고 하는 아이들 보며
분명 모르는 사이인 것 같은데 한데 어울려 잘 놀고,
이번 계자도 만만찮을 듯...”
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여름 마지막 계자답게 확 북적거릴 태세입니다.

아이들이 오면 이곳에서 지내는 법에 대해 이십여 분 안내가 있지요,
언제나처럼.
하지만 조금은 다른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라
왔던 아이들도 또 처음처럼 잘 듣고 있습니다.
수진샘은 이 시간을
하루를 닫기 전의 어른들 하루재기에서 이리 말했더이다.
“모두 집중해서 듣는 분위기였는데, 축구부 아이들 앞에 앉히고,
주목해서, 하나 되어 듣고 있는 대체적인 분위기...
이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가 함께 기분 좋게 공존하고...
샘의 설명이, 설명이 정돈돼 있고 차분하고 고요하고 자세하고 힘이 있고 친절하고,
안정감 같은 것들이 아이들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그런 설명, 그런 발문,...
참 마음이 좋았어요, 아이들도 좋겠구나...
알아가는 과정이 불필요하게 앞서서
일에 대해 아이들 불안감 때문에 일어나는 혼란에
아이 입장에서 설명 듣는 것만으로 좋은 시간이었어요.”
아마도 미리모임을 통해 이번 계자의 분위기를 만들어놓은
모든 어른들의 안정감이 몫을 크게 했지 싶습니다.

“그래도 밥은 먹는 게 나을 텐데...”
와 봤던 아이의 조언이지요,
수민이었습니다.
징이 울리고 그렇게 점심을 먹고,
이제 아이들이 이 공간을 탐색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올 여름 첫 일정은 모두 도대체가 나오질 않고 더운데 다들 안에서 복작이더니
이번 일정은 또 어째 남은 놈이 안에 하나도 없이
밖으로 다들 쏟아져 나와 있습니다.
저녁에도 그러하였지요.
재호랑 소희샘이 그네에 앉았습니다.
“너는 (축구)안 해?”
“네.”
“왜?”
“더워서요.”
그러다 축구중계를 시작한 재호,
“재창이 선수, 차기 시작했습니다...”
마당에는 우르르 공을 따라 아이들이 뛰고 있었고,
은행나무 아래 의자에는 울 동네 착한할아버지가 앉아
지팡이 짚고 아이들 하는 양을 구경하고,
흙산에선 몇이 미끄럼을 타고 있었으며
댓 명은 장순이랑,
그리고 또 댓은 연못을 둘러싸고 놀고 있었습니다.
더러 모래사장에서 놀기도 했으며
예닐곱의 아이들은 선주형님이랑 닭장을 들여다보고 있었지요.
“교과서 삽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정말 말 그대로 낙원이라고나 할까, 참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소희샘의 말에
“거기 배도 한 척 있었죠.”
수진샘의 화답이 있었답니다.

글집을 만들고 모둠끼리 인사도 하고 가방짐도 살펴본 뒤
산모롱이 돌아 물놀이를 갔지요.
물놀이를 기점으로 경계가 사라진다던가요.
계곡으로 가서 하는 놀이가 꼭 물을 적시는 것만은 아니지요.
처음 다슬기를 무서워(?)하던 상민이도 석준이랑 유민이랑
먼저 잡고 있던 원규 다경이 곁에서 큰 돌을 젖히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한데모임을 끝내고 고래방으로 건너가 대동놀이 하고
그리고 씻고 하루를 돌아보고
머리맡에서 읽어주는 동화를 들으며 잠에 듭니다.
샘들은 그제야 가마솥방으로 들어와
아이들과 보낸 하루를 짚어보지요.
“모둠들끼리 보낸 시간이 없어...”
소규모로 서로 낯을 익힐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아쉬웠다고도 했는데
아직, 날 많이 남은 걸요.
또 마흔을 좀 넘는 숫자가 그리 큰 덩어리도 아니랍니다.
“익숙해서 나태해져 안 움직이는 사람(매너리즘에 빠졌다고 하나요?)과
그리고 일하고 싶은데 일을 몰라서 못하는 이들이 있는데,
사실 일의 양은 같아요.
익숙해서 못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아서 못하는 것도 꼭 같은 거지요.”
그러나 후자가 힘이 된다는 걸 소희샘의 의견 아니어도 우린 압니다.
그 후자인, 처음 온 샘들의 마음씀이 아주 훌륭하다고들 입을 모았지요.
아주 좋은 계자가 될 것 같습니다!
“물꼬 오면 부지런해져요...”
내내 오던 희중샘만 그런 게 아니지요.
서로를 자극하며 그리 움직이게 됩니다.
“책방 정리 안되기는 마찬가진데 차원이 달라요.
펼쳐놓고 나가는 게 아니라 가만히 덮고 나가고...”
이번 아이들, 시끄럽지만 그것이 분잡함이 아니라 활기가 될 듯합니다.
또 어떤 특징을 드러내며 이번 계자가 흘러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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