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계자 닷샛날, 2008. 8.14.나무날. 맑음

조회 수 1483 추천 수 0 2008.09.07 23:14:00

127 계자 닷샛날, 2008. 8.14.나무날. 맑음


백두대간 능선길!
산에 갑니다.

6:00 샘들이 김밥을 쌌고
6:30 아이들이 일어나 채비를 하고
7:00 아침을 먹고
7:20 현관에서 나오는 아이들을 하나 하나 복장검사
7:50 버스를 탈 흘목으로 걸어가
8:20 버스에 오르기.
8:50 물한 주차장에 도착해 화장실 다녀오고 지도 훑은 뒤 산오름 시작

이 많은 인원들이 이렇게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으려면
그게 가능하도록 한 그간의 축적이 있었을 것이라고들 했지요.

무열샘이랑 희중샘이 전체를 진두지휘하고 있었습니다.
비워놓은 가방들마다 도시락과 물,
그리고 오이랑 파이랑 사탕,
가방마다 의약품과 화장지,...
현관에선 복장검사에 들어갑니다.
양말은 신었는가,
쓸데없는 걸 들지는 않았는가,
옷은 편한가 살펴봅니다.
역시 또 신발이 문제가 되네요.
꼭 샌들 신고 나온 놈이 있습니다.
이제 와서야 신발 없다는 놈이 있습니다.
하얀색 긴바지를 입고 나타난 미루샘도 걸렸지요.
후줄그레한 반바지를 입고 다시 나와야 했습니다.

버스 시간에 쫓기며들 내려갔는데,
이런, 급한 연락입니다.
한 녀석이 샌들이라네요.
언제 또 묻혀서 검사대를 통과했더랍니까.
급히 차를 타고 아이를 데려와
허드렛 신발이 있는 목공실로 갑니다.
아이쿠, 오늘도 부산한 하루겄습니다요.

물한 주차장에서 계곡을 끼고 오르는 길,
여느 여름날처럼 찬바람이 확 확 온 몸을 덮칩니다.
이 계곡길만 걸어도 충분하겠습니다.
오늘은 다른 일정에선 내려오며 걷던 잣나무 숲길을
오르면서 걸어봅니다.
다음 순간은 오솔길이지요.
홀로 걸어가야만 하는 길이랍니다.

시작점이라 부르는 곳에 다 모였습니다.
산은 들어섰지만
본격적으로 산오름이라는 인상을 주는 곳이라 그리 부르지요.
민주지산 꼭대기에 왜 잠자리가 그리 많은지
그 유래를 들려줍니다.
산 깊은 만큼 구비구비 스민 옛 얘기도 많지요.
왜 잠자리들의 눈이 커졌는지,
그들은 강가에서 돌에 널부러져 생을 마감하면서도
왜 눈을 부릅뜨고 있을 수밖에 없는지...
백두대간 지나는 삼도봉에서 각호봉에 이르는 능선길을 다 합쳐 민주지산이라 일컬으며
그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가 민주지산입니다.
오늘은 또 어떤 산오름이 되려나요...

1지점 계곡 곁에서 다리쉼을 하고 사탕을 나누고
2지점 갈림길에서 잠시 머뭇거리다
마지막 먹을 물이 있는 3지점에서 물통을 채우고
그리고 능선에 오르는 4지점.
모두가 모이길 기다립니다.
“왜 올라가는지 모르겠어요.”
영 마뜩찮아하는 유민이의 표정이
내려올 땐 달라질 수 있을는지요?
때론 홀로
때로는 여럿이 나란히 어깨를 함께 하고 오를 수 있습니다.
바위가 많으나 길이 제법 가지런하기도 하고
그러다 울퉁거리는 곳이 더러 나타납니다.
한번도 볕이 닿았을 것 같잖은 어느 곳은
이끼들로 미끄러운 바위를 기다시피 오르기도 하였지요.
흘러내리는 땀으로 여름날인 줄 모르진 않겠으나
온통 나무 우거져 뜨겁지는 않습니다.
좋은 산길입니다.

뒷패들은 늘 툴툴거리지요.
보이지도 않는 앞을 어느 결에 닿는답니까.
맨 앞은 제가, 그리고 맨 뒤는 무열샘입니다.
저보다 먼저 가면 초코파이가 사라지고
무열샘보다 처지면 점심 저녁 밥상이 사라지는 거지요.
마술입니다, 마술.
그 가운데를 툭툭 샘들이 떨어져 가고
샘들을 둘러싸고 아이들이 덩어리를 이루어 가고 있지요.
늦은 발들과 함께 하는 일이 정작 힘에 겨운데
이것들을 양떼 몰 듯 하니 온 힘이 빠진다는 미루샘이었답니다.
그러나 문득 궁금했다지요,
맨 끝의 무열샘은 무슨 생각을 하며 오르고 있을까 하고,
한편 대단하기도 하고.
일정 내내 미루샘은 자주 무열샘을 궁금해 했습니다,
그 우직함에 대해.

능선에서 아이들을 기다립니다.
이제 백여 미터 남은 아주 가파른 길만 오르면 정상입니다.
마지막 감동은 꼭 같이 가지고 싶지요.
이 능선으로 오르는 길이 또한 제법 경사여서
앞 뒤 차이가 많이 납니다.
해서 먼저 닿은 이들이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곳이기도 하지요.
아주 나무를 기대고 길게 몸을 부렸는데,
나뭇가지로 땅을 긁적이고 있던 재창이가 불렀습니다.
“옥샘?”
“응?”
“옥샘은 100살까지 사세요.”
“왜?”
“그래야 아이들이 잘 자라니까요.”
울컥하데요.
어쩌면 제 생애 최고의 찬사의 순간이 아니었을라나 모르겠습니다.

정상.
올라가니까 올라가기 직전이랑 너무 달라 놀라웠다는 은영샘처럼
갑자기 주위가 환해지더니
저 멀리 숱한 산들이 굽이치고 있었고
더러 보이는 집들은 작고 또 작았지요.
‘주변을 둘러보면 그 주위의 풍경이 마음을 떨리게 만들고 감탄사 밖에 나오지 않았다. 애들이 그 풍경이 예쁘다고 계속 쳐다보고...’(새끼일꾼 아람의 하루 정리글에서)

점심은 다시 볕을 피해 능선길로 내려서서 먹었습니다.
김밥이랑 초코파이랑 너무 잘 먹어서 신기했다는 샘들,
유설샘은 아이들이 물을 한 모금 한 모금 빨아먹는 게 귀엽다고 했지요.
그래요, 김치가 주인 굵고 단순한 김밥을
예 아니면 이리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요.
요새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는 초코파이를
이토록 맛나게 먹는 때가 또 어디 있으려나요.
오이는 또 얼마나 달게 먹던지요.

사람들이 제법 오르내립니다.
모두 한 마디씩 던져주셨지요.
대단하다고들, 어디서 왔냐고들,
궁금해도 하고 칭찬도 해주십니다.
“야, 초등학생도 있고 중고생 대학생들도 있는 것 같네.”
아, 그렇네요, 무슨 대가족 같습니다.
갑자기 온 마을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온
시골마을공동체 같았지요.
뭉클합디다.

내려오는 길,
다시 구성원들이 바뀝니다.
그게 또 산에 오는 재미 하나이지요.
아, 가끔씩 나무 뒤로 바위 뒤로 가는 아이들도 있지요.
화장지 들고 말입니다.
거기 물꼬 화장실 다 있거든요.
엊저녁 이불을 가져가던 때던가요,
현지가 오빠를 뒤에서 안으며 '춥지' 그러는데
그걸 또 동하는 '변태'하고 틱틱거렸지만
영락없는 오누이였답니다.
동하는 이렇게 거친 산 앞에서도 가끔 오빠 노릇해주고 있었지요.
인이와 지훈이도 티격거리면서도 틀림없이 남매입니다.
세인이랑 세빈이는 같은 집에 사는 동갑내기인데,
그러니까 쌍둥이란 말이지요,
닮은 외모가 아니라면 자매인 줄도 모르겠다가
그래도 이렇게 산에 오르면 영락없이 한 집에서 온 아이들입니다.
형제애를 더욱 진하게 하고
우정을 더욱 진하게 하며
새로운 이들과 역시 깊이 교감하는 산오름이지요.
우르르 같이 왔던 안양 축구단도
어느새 뿔뿔이 다른 이들과 걷고 있고,
하두 시끄러워 역삼동 동네 나쁘다고 욕먹은
동하훼밀리도 서로 떨어졌네요.
다빈이는 수진샘을 붙들고 열심히 걷고 있습니다.
“저거 거북이로 보이지 않아요?”
“정말 그러네.”
“샘, 저건 물고기예요.”
모든 돌멩이가 강아지가 되고 산이 되고 곰이 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2지점 지나고 있던 유경 가야 수현,
어, 가만 보니 맨 꼬래비더라나요.
그래서 급히 뛰어내려오기 시작하였는데,
그만 수현이 그대로 앞으로 바위에 꼬꾸라졌습니다.
희중샘이 얼른 들춰 업고 내려왔지요.
1지점에서 응급치료를 합니다.
“아, 다행이다, 다행이다.”
하늘이 도왔습니다
“어르신들이 착하게 살아서 하늘이 도왔는갑다.”
이가 부러져나갔을 수도 얼굴이 긁혔을 수도 있는데,
아이구 다행입니다, 다행입니다.
얼굴도 광대뼈 바깥 쪽이 좀 긁히긴 했으나
흉이 지진 않을 정도였지요.
팔과 다리 가슴 위가 쓸리긴 해도
큰 상처는 아니었답니다.

1지점 바위에 앉아 모두 도란거리기도 하고
(이제 평탄한 길임을 다들 알거든요,
거의 다 왔다는 것도 알거든요.)
계곡에 뛰어들어 도룡뇽을 잡는다고 뛰어다닙니다.
아이들 발도 씻겼지요.
바위에 앉혀놓고 물로 문질러줍니다.
‘아, 이 작은 발도 저 산을 올랐구나...’
기특하기 더했지요.
“옥샘, 이게 정말 ‘빼어날 수’예요.”
빼어날 수가 적힌 물통을 눈 앞에 쑤욱 들어왔습니다.
수민이 계곡물을 받아 내밀며
정작 그 내용물을 이 상표가 말해준다는 거지요.
언어감각이 탁월한 아이,
늘 곁에서 이리 웃겨줍니다.
이 아이를 보는 일이 참 즐겁습니다.
그것도 오랫동안 말입니다.
앞으로의 많은 날도 커가는 걸 그리 보고 싶습니다.
어떤 청년으로 자라갈지요...

40여분이면 주차장에 닿습니다.
거기 다시 흘목으로 가는 버스가 5:10 에 떠납니다.
이제 일어나야할 때이네요.
올라오다보면 시작점에서 1지점에 이르기 전
길이 두 갈래로 갈리는데
하나는 삼도봉을 돌아 석기봉 지나 민주지산으로 에두르는 길이고
하나는 우리가 오른, 민주지산 지름길이지요.
내려가는 길에 다시 합류한 길은
삼도봉 쪽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더하게 되고,
또 거기까지만 올랐다 돌아가는 이들을 더하게 됩니다.
불어난 사람들 역시 우리 아이들을 궁금해라 하지요.
이것 저것 물어오는데,
새끼일꾼 아람이가 열심히 대사역을 하고 있었답니다.
기어이 곁에 섰던 아저씨 그러셨다데요.
“우리 애도 겨울에 보내야겠네.”

계곡을 타고 내려가는 길은
집으로 돌아가는 여유로 보다 많은 소리에 젖게 합니다.
바람, 새, 물, 부대끼는 나뭇잎들, ...
‘...산을 같이 가는 공부가 힘들고 그렇지만 아주 분명하게 (까닭이)있구나, 그간 산책처럼 산에 갔는데 하반기에 먼길을 가야겠다...’
은영샘은 그렇게 다음 학기를 준비하셨더라지요.
끝에 오던 무열샘, 아이들과 손을 잡고 오며
‘부모가 되면 이렇겠구나(*이런 마음),
산에서만이 아니라 인생에서 부모가 따뜻하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하며 걸었다 합니다.

모두 무사히 버스에 태우고
주욱샘이랑 잠시 막걸리집에 앉았습니다.
저녁에 샘들에게 한 잔씩 맛보이려고 담은 술이 채워지길 기다리고 있었지요.
IYC 평가위원이 아니라 참가자들보다 더 참가자 같았던 그는
관찰자로서 기록하기만이 아니라
스스로 참가자가 되어 누리고 즐기고 애쓴 놀라운 분이셨지요.
수련회가 몽둥이 들고 교관이 진행하는 그런 캠프를 벗어나
다른 식의 체육활동을 할 수 있기를 열심히 고민하고 있는 그였습니다.
해서 그는 IYC 평가보다 물꼬 평가를 더 열심히 하고 있는 듯하였지요.
그리고 그는 다행히도 사람들의 애씀,
나아가 아이들이 한껏 누리고 발산하는 것들을
아주 긍정적으로 읽고 잇었습니다.
칭찬도 고맙습니다, 욕도 고맙습니다,
칭찬도 저가 하고파서, 욕도 저가 하고파서 하는 것,
하지만 이왕이면 객관의 눈을 잘 가지고 해주는 칭찬이 고맙다마다요.
그런 눈이 있어서
물꼬 역시 스스로를 많이 멀찍이서 잘 볼 수 있었던 시간이 되기도 했더랍니다.

한데모임에서 목청껏 노래 좀 부르고
산오름 후일담들을 나눈 다음
고래방에 건너가 강강술래 걸게 놀았지요.
원래 IYC들은 갈무리평가모임을 위해 달골로 올라갔는데,
다들 샤워만 하고 다시 내려와 같이 강강술래에 합류했답니다.
너나없이 막 아쉬운 겁니다, 마지막날이.
이제야 늦은 신명이 불 붙은 겁니다, IYC 캠퍼들이.
그리고 장작놀이.
아, 쏟아져내리던 별들 아래 작은 모닥불은 감자를 열심히 굽고 있었습니다.
노래 이어달리기가 끝나고 우리들이 보낸 닷새 날들을 돌아보는데,
IYC 캠퍼들도 목이 조금 잠기는 듯하였지요.

샘들은 이 여름 모든 일정의 마지막 밤이라는 것으로
더욱 여운이 많은 하루재기를 맞았지요.
다들 욕봤습니다.
IYC 한국인 캠퍼들도 내려와 자리를 함께 했고,
밤참을 낸 자리에는 남종샘과 프랑스에서 온 폴도 자리했지요.
남종샘과 종대샘의 어우러진 박자가
우리를 오래 즐겁게도 하였습니다.
어떤?
그거 말하면 그 밤을 지킨 사람이나 아닌 사람이나 똑같을 듯하여
얘기 생략하겠슴다.

샘들하루재기 뒤엔 각자 하루정리글도 쓰고 있었지요.

은영샘:
민주지산은 정말 멋진 산이었습니다. 올라가는 길의 풍경도, 올라가서도 좋았습니다.
올라가는 길을 여러 번 쪼개서인지 올라갈 때 생각보다 힘들진 않았습니다. 아이들도 무난히 올라간 것 같아요.
산을 함께 오르며 아이들과도 선생님들과도 이런저런 얘기할 수 있어 좋았어요. ‘산’을 통해(힘들고 어려운 일) 관계의 질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한 좋은 시간이었어요.(아이들간도 관계가 달라진 느낌이 분명)

유설샘:
산에 가는 길은 상쾌했다! 그런데 정상에 A울수록 길도 가파르고 너무 힘들었다. 아이들이 힘들다고 할 때마다 나도 힘이 들었다. 그런데 아이들 땜에 힘이 든 것도 있고 아이들이랑 지내면서 힘들었던 게 힘들지 않게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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