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이튿날, 2008. 5.12.달날. 날 차다, 바람 불고

조회 수 1533 추천 수 0 2008.05.23 17:55:00

봄날 이튿날, 2008. 5.12.달날. 날 차다, 바람 불고


참, 꿈자리의 뒤숭숭함이라니...
“조신하게 하루 보내야겄다. 영 꿈자리가...”
“못 자서 그렇지, 뭐.”
밤새 인형극에 쓰일 한복의상을 만드느라 재봉질과 씨름을 했거든요.
그러고 두 시간도 채 못 잤는데,
그마저도 서너 차례 깼더랍니다.
“너무 무섭고 어찌나 긴박하던지...”
너무 너무 생생한 꿈이었더랍니다.
“무슨 꿈을 꾸었길래?”
“험해서 차마 입에 못 올리겠다.”
기락샘도 덩달아 뒤척였지요.
아이들을 데리고 있으면 꿈이나 어떤 예감에 민감하게 됩니다.
올 일을 막을 길이야 없겠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면 좀 덜 크게 사고가 오는 것도 같데요.

달골에서 내려오는 길,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아침의 산마을은
정토고 극락이고 천국입니다.
“애들이 어찌나 말이 많은지, 그래서 더 남녀구분 없이 친해지는가 봐요.”
지윤이가 그러데요.
저만치 다른 무리들이 가고
처진 지윤이와 동휘가 수다스러웠습니다.
“소연샘은 거만하고 아람샘은 못 생겼고...”
오래 물꼬에서 지내온 동휘는
지윤이가 새끼일꾼이라고 다른 새끼일꾼 품평을 그에게 합니다.
일러줘야지, 이눔의 자슥,
동휘, 이제 죽었습니다요!

‘해건지기’.
국선도 수련을 합니다.
계자에서는 서서하는 남방 요가를 했더랬지요,
어른들은 전통 수련을 했습니다만.
지윤이는 계자에서 샘들 해건지기 시간 해왔던 거라 익숙하다 합니다.
“그런데 애들도 다 잘 따라하더라구요.”
‘하다가 해건지기를 하면서 꾸벅꾸벅 존다. 밤새 잠을 잘 못 잤나 보다.’
지윤이가 하루를 정리하며 쓴 글에서도 그러했듯
사내 녀석 다섯을 오신님방에다 다 같이 집어넣어놨더니
밤새 속닥이며 자네 못 자네 난리였더랬지요.
하다가 잔뜩 짜증이 나 있습니다.

‘우리말우리글’시간에 새우리말사전을 만듭니다.
우리 삶에 가치 있는 낱말들을 주욱 열거하고
그 가운데서 의미가 큰 것들을 다시 추려 저들식으로 개념정리를 하였지요.
처음엔 서로 다른 주제를 가지고 다투며
자기 것으로 하자고 싸우기도 하였는데,
책으로 진짜 우리만의 사전을 만들어 물꼬에 기증하자고 하는 지윤이의 제안으로
다들 목소리를 모아낼 수 있었답니다.
물꼬, 자연, 집, 꿈, 행복, 평화...
‘새우리말사전’에 아이들은 ‘물꼬’를 처음에 두고 있었지요.
“‘물꼬’는 녹지 않는 사탕과 같다.
자연이다.
생명을 느낄 수 있는, 자유를 느낄 수 있는 학교.
행복하고 아름답다.
행복이 넘쳐나는 곳.”
‘행복’의 한 설명에는 이리 쓰고 있었습니다.
“행복은 물꼬에 오면 느끼는 기분.
남에게 도움을 받을 때 느끼는 것.”
‘평화’는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것이라는데,
모두 원하는 데 왜 안 되는 건지...

역사시간엔 광개토대왕의 북벌과 발해를 다루려고 했는데
고려왕조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이왕 고려왕조 34대를 외기로 했네요.
널리 알려진 동요 하나에 얹혀 부르자 했습니다.
어, 그런데 아이들이 정작 그 동요를 모르네요.
어느 사범대 강의실에서 너무나 널리 알려진 전래동화를
요새 학생들이 모두 모르더라는 기이한 현상처럼 말입니다.
방정환이 만들었던 어린이 잡지에
1925년 최순애는 12살 나이에 ‘오빠생각’을 발표했지요.
그 이듬해 마산의 열여섯 이원수가 ‘고향의 봄’을 써 이 꼭지에 씁니다.
그리고 그 둘은 결혼을 하기에 이르지요.
‘오빠생각’을 먼저 배우고 그 음에 왕조를 따 붙였습니다.
’“태혜정광경성목~”
시호에 대해, 또 충렬왕부터 왜 ‘왕’자가 붙는지들에 대해서도
저들이 더 잘 알고 있데요.
아이들은 하루 종일 노래를 흥얼거리고 다녔습니다.
‘애들이 크면 정말 많이 도움 될 듯싶다.’
지윤이가 그리 썼데요.

점심 밥상이 차려졌다는 징이 울리기 전,
그러니까 오전 일정이 끝날 때마다 빛그림을 봅니다.
‘신기한 학교’ 영어원판입니다.
책으로도 아이들이 환호하는 시리즈이지요.
처음 본다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요새 워낙에들 영어를 익히고들 있으니
익숙하게 보고 앉았습니다.

한 대학 유아교육과에서 준비하는 유아축제에서
인형극을 준비하며 한복의상을 부탁해 왔더랬습니다.
점심, 아이들이 방마다 저들을 채우며 놀고 일을 적
그예 마무리를 하고(우선 사람이 입을 것만) 다림질을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바깥에서 뭔가 웅성대는 듯싶더니
아이들이 울면서 교무실로 달려왔습니다.
숨꼬방 유리가 깨졌고,
류옥하다가 다쳤답니다.
꼬리처럼 딸려오는 아이들을 멀찌감치 떼놓고
깨진 유리를 밟고 들어가니
하다는 곁에 있던 이불을 끌어다 상처를 덮어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종대샘도 달려오고 젊은할아버지도 달려왔지요.
119에 연락을 하라 하고,
젊은할아버지한테 아이를 맡겨놓고,
통로에서 울고 있는 아이들을 불러 모아 앉힙니다.
“옆에서도 좀 안아줘라.”
살아가다보면 별 일을 다 겪는다,
무슨 일인들 안 일어나겠느냐,
괜찮다,...
별 일 아니라고 얘기해준 다음
지윤이에게 어찌 어찌 움직이라 일러줍니다.
“2시가 되면 할머니랑 티벳길 쪽으로 가서 취나물 뜯고...”
다행히 아이들 분위기는 금새 수습이 되었지요.
지윤이가 있어 얼마나 다행이던지...
동료 교사 하나 더 있는 것 같습니다.

기다림은 늘 길지요.
구급차가 왔고 종대샘이 같이 갔습니다.
젊은 할아버지가 깨진 유리창이며 숨꼬방을 청소하고,
서울 가던 기락샘은 내려오는 기차를 다시 갈아탔지요.
하던 다림질을 합니다.
이 평화로움이라니...
마치 태풍의 눈처럼,
전쟁이 한바탕 휩쓸고 간 뒤 찾아든 고요가 거기 있었지요.
한복의상을 갖다 주러 나섭니다.
물론 병원에 먼저 들릴 겁니다.
부모의 수술동의서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 합니다.
“천행입니다.”
그렇게 깊게 패였는데도 용케 앞 뒤 중요한 부위들을 비껴갔고
특히 손목은 신경막 앞에서 유리가 멈춰 있었더라
수술한 의사가 전하였지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당분간 기락샘이 병상을 지키기로 합니다.

오후에 아이들은 할머니를 따라 가서 취나물과 고사리를 뜯었습니다.
“하다가 없어서...”
그러게요, 예 사는 아이이니, 날마다 하러 가는 일이니,
얼마나 좋은 길잡이일 텐데...
먼저 내려온 아이들은 큰 마당가의 풀을 뽑고
고추밭과 토란, 남새밭에 물을 주었답니다.
병원에서 돌아와 잠시 앉았는데,
밥 때가 다 되어도 가마솥방 기척이 없어
부랴부랴 저녁상을 보고 있으니
그제야 할머니가 달려왔습니다.
산나물 뜯는 재미에 깊이 깊이 들어가
하마터면 길을 잃을 뻔 하였더라지요.
“그래, 하다가 크게 다쳤다면서요?”
“조금요. 애 키우다보면 그런 일 다반사지요, 뭐.”
그러게요...

밥상 앞은 아주 오래 같이 살아온 이들 같습니다.
“옥샘, 저희들한테만 금고 보여주시면 안돼요?”
소나무아래, 계자에서 아이들의 귀중품을 맡아 보관해둔다는 물꼬의 최신설비,
교무실에서 단추를 누르면 쩌억 흙이 갈라지며 나타난다는 그 금고가
늘 아이들은 궁금합니다.
“일급비밀이죠?”
“그렇지, 물꼬에는 비밀이 몇 가지 있지. 그 가운데 일급은?”
“뭐예요, 아이, 뭐예요?”
“동휘가 여자라는 거.”
동휘는 밥을 먹다 바닥에 아주 쓰러지고
아이들은 배꼽 떨어져나갈 만큼 웃어댔더랍니다.

해거름녘 저녁 잘 먹고 아이들은 다시 달골에 올랐습니다.
‘저녁이 되어서 끼리끼리낄낄 시간 창고동에 가서 경도(경찰과 도둑; 술래잡기 같은 것), 숨바꼭질 등 여러 놀이를 하며 신나게 뛰어놀았다. 보통 계자 때 같으면 남자 아이들은 남자 아이들끼리 여자 아이들은 여자 아이들끼리 모여 놀곤 하는데 7명밖에 없으니까 남녀 구분 없이 다들 친하다. 또, 하룻밤 함께 한 사이인데도 정말 1달은 함께 보낸 식구들 같다. 마지막 날에 어떻게 헤어질까 걱정되기도 하며...’(새끼일꾼 지윤이의 하루 정리글에서)

어릴 적 작은 상처가 평생 짐이 되는 걸 더러 보았습니다.
‘ ... 내가 숨꼬방에 아이들과 함께 있었으면 사고가 안 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속상했다.’
지윤이도 그리 쓰고 있었지요.
혹여 사고 현장에 있었던 아이들에게 자책으로 남을까 봐 걱정됩니다.
하다가 멀쩡한 것도 보여줘야겠고
행여 눌려졌을 지도 모를 마음도 회복되고 가도록 해야겠습니다.

간밤 칼부림이 나는 꿈을 꾸었더랬습니다.
오늘 깨질 창 유리날이었던 모양입니다.
부모님들의 그런 숱한 밤들이 우리를 키웠겠지요.
그리고 어느새 우리가 그런 부모가 되었습니다.
생이, 참,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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