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사흗날, 2008. 5.13.불날. 우두령은 눈발 날렸다고


오늘 아침 흥덕리 우두령은 눈발이 다 날렸다데요,
이 오월에 말입니다.

아침이 늦습니다.
일찌감치 고래방에 좋은 기운들을 채워놓고 있는데,
기별이 없습니다.
달골에서 오는 길, 올챙이의 유혹이 있었더라지요.
애들이 역시 자신보다 유연하고 잘 따라한다며
지윤이가 좌절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연스레 국선도수련을 잘 따르고 있답니다.

‘스스로공부’가 있는 오전입니다.
아이들끼리 보낼 하루입니다.
새끼일꾼 지윤이가
아이들이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도록 파수꾼이 되어줄 테지요.
재우는 책방에서 과학 잡지 여러 권을 읽었다 하고,
현진이는 아침에 잡은 올챙이를 위해 멸치도 넣어주고
책방에서 논에 있는 생물이 자라는 과정, 특징에 대해 조사하고,
여자 애 셋(지인, 경이,유나)은 식물을 공부했는데
운동장을 돌아다니면서 구경하고 책방에서 식물도감도 보았다 합니다.
동휘랑 윤준이는 ‘뚝딱뚝딱’처럼 공부해도 되느냐 종대샘한테 허락을 받고
목공실에서 나무피리와 죽창을 만들었다지요.
그러다 자연스레 10시 50분쯤 되니
서로 다른 주제로 공부하던 애들이 모두 책방에 모이더라나요.
애들이 일곱 밖에 없으니
따로 놀다가도 보면 어느새 한 곳에 모여 있다 합니다.

저들이 준비하겠다던 점심입니다.
김치볶음밥을 해먹겠다데요.
‘빛그림을 잊고서 김치볶음밥을 만들러 가마솥방에 갔는데 할머니께서 안 계셔서 빛그림을 보았다. 하다가 없어서 자막 없애는 것을 못했다... 재우는 계자가 더 나은 것 같다고 한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북적대는 계자가 더 좋은가 보다.
가마솥방에 모여서 김치볶음밥을 만들었다. 학교 친구들은 뭐할까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다들 맛있다고 마구 먹었다. 하다가 없으니 뒷정리가 또 안 된다.’(새끼일꾼 지윤의 하루 정리글에서)

오후에는 ‘책이랑’시간 책 읽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고,
일시간엔 남새밭에 호미를 들려 보냈습니다.
‘일시간엔 간장집 앞에 상추에 있는 잡초 뽑기랑 물주기를 했다. 남자 애들은 장난치고 옆에 있는 것들 다 밟고 아휴... 어찌나 말을 안 듣는지.’(지윤의 하루 정리글에서)
그래도 상추밭이 훤합디다.
사람 입이 무섭고 손이 무서운 법이지요.
하나씩만 뽑아도 한 둘 있을 때보다 낫다마다요, 아암.

병원에도 가고 읍내 나갔다 국화시간에 맞춰 돌아왔습니다.
벌써 아이들이 주욱 늘어앉아서
붓을 들고 있었습니다.
해송이랑 국화샘이 와 계셨던 거지요.
샘은 뚝딱 하루짜리 작품을 완성케 해주고 계셨습니다.
아이들이 곧잘 또 잘 따라들 하고 있데요.
‘국화시간엔 선생님께서 오셨다. 애들이 전부 잘한다. 하다가 없으니까 또 뒷정리가 엉망이다. 그냥 그림 그리고 모두 뛰쳐나가 버렸다.’(지윤의 글에서)
지윤이도 하다가 있으면 편하다 합니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곳의 흐름을 아는 아이가 있으면
아무래도 전체 진행자는 수월하지요.
정말 그 아이가 이곳에서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오늘은 외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황간에 아주 멀리서도 먹으러들 오는 맛난 중국요리집이 있지요.
그런데 하필 문을 닫았네요.
전화를 안 받아 혹시나 하고 읍내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렀더니
역시 문이 잠겨있었습니다.
상촌 면내에서 저녁을 먹습니다.
“곱배기요!”
‘짜장면 곱빼기 다 먹을 수 있다고 소리치던 남자아이들. 곱빼기는 무슨 현진이랑 윤준이만 다 먹었다.’(지윤의 글에서)
그 말을 곧이 듣고 다 시켰는데,
덕분에 장순이 쫄랑이한테도 좋은 일 되었네요.
남긴 것 다 싸서 들고 왔지요.

이제 차 세 대가 읍내로 달려갑니다,
종대샘 차와 국화샘 차까지.
난계국악당으로 가는 길이지요.

“악기를 분다는 것이 그저 즐거움이었다가, 힘듦의 연속이었다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가, 견뎌내야 하는 과정이었다가,
온통 농밀하게 스며들어 제 일상의 풍경을 진하고 물들이고 있습니다.”
; ‘모시는 글’ 가운데서

* 김정훈: 난계국악단 단원
(사)신라만파식적 보존회 회원
김동진류 대금산조 보존회 회원

* 숨비소리: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물 밖으로 나오면서 내뿜는 소리’로
다시금 나아가라는 뜻이 담김


물꼬에서 대금(아이들에겐 단소였지요)을 가르쳐 오신 김정훈샘이
저녁 7시 30분 독주회(‘숨비소리-김정훈 대금독주회’)를 엽니다.
대표적인 정악독주곡인 ‘청성자진한잎’(청성곡, 요천순일지곡),
김동진류 대금산조, 창작곡인 ‘다향’
그리고 김정훈샘이 작곡한 연(涓 흐르다, 순수하다)을 들려주신다셨지요.
“저희 식구들 열다섯 갑니다.”
“멀리서 오신 만큼 좋은 연주 감상하실 수 있도록
연습 많이 해놓겠습니다.”
그렇게 기다렸던 독주회랍니다.
대금은 홀로, 때로는 장구장단과, 또는 피아노와 첼로랑,
그리고 퍼커션 협연도 있었습니다.
마음이 자주 먹먹하데요.
혼신을 다하는 연주가 어떤 건지,
그리고 그것이 사람에게 어떤 감흥을 불러일으키는지 잘 보여준 공연이었지요.
정말 열심히 준비했더라구요.
‘나는 정말 재밌고 의미 있었다.
이런 기회 갖기 쉽지 않을 텐데 갖게 되어 기쁘다.’(지윤)

돌아오며 모두 병원에도 들립니다.
놀란 가슴이 아직 벌렁거리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아이들,
특히 현장에서 같이 장난을 쳤던 녀석들이
멀쩡하게 누워있는 하다를 보며 좀 안심이 되지 않았을지요.
“내가 여간해서 안 놀래는데
나도 좀 무섭더라, 상처 보고.”
오늘에야 종대샘이 고백을 했더랬지요.
아이들 먼저 내려보내고 하다랑 잠깐 앉았는데,
하다가 엄마를 부르며 울음을 삼켰습니다.
저(하다)도 참 기가 막히는 겁니다.
이만만해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고마울 일입니다.

모든 일은 늘 한꺼번에 닥치지요.
이제 인형옷을 한복으로 두 벌 만들어야 합니다.
인형극을 준비하는데 4학년생들까지 재봉질을 하는 이가 아무도 없대서
얼렁뚱땅 도와주기로 한 일입니다.
아이들이 와 있고, 하다는 병원에 있고,
답 메일을 기다리는 일들이 있고,
그리고 재봉틀 앞에 자정이 넘도록 앉았습니다.
한복, 그거 만들어봤어야지요.
낑낑 하고 있답니다.
이 밤만 넘기면 좀 낫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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