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엿샛날, 2008. 5.16.쇠날. 맑음

조회 수 1440 추천 수 0 2008.05.23 17:59:00

봄날 엿샛날, 2008. 5.16.쇠날. 맑음


많이 기다렸던 시간입니다.
‘나물이랑’시간에 산더덕을 캐러가기로 했더랬지요.
먼저 학교 뒤란 한켠에서 뻗어나가고 있는 더덕줄기를 보여줍니다.
꽃잎이 어떻게 모아 돌려나는지,
그리고 툭 떼면 하얀즙이 어찌 나오는지 보여주었지요.
달골에 올라 햇발동 뒤로 갑니다.
어느 해 여름 아이들과 더덕을 한참 캤던 곳이기도 합니다.
“생태가 때마다 변하더라.”
그게 또 자연일 테지요.
올해는 거기 더덕이 아니라 또 다른 것이 채우고 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람 발길이 잦지 않은 산은
들머리에서부터 여간 짙지가 않았습니다.
덤불을 헤치고 나아갔지요.
다행히 더덕 한 뿌리가 예로 등장을 하고
머지 않은 곳에서 더덕향이 번집니다.

아이들은 흩어져 더덕을 찾고,
할머니랑 저는 취나물에 취해서 허리를 펴지 못하고 있었네요.
무덤가엔 사람 손이 닿지 못해 세어버린 고사리들이 하늘거렸습니다.
내년엔 꼭 와서 뜯어야지 하지요.
“찾았어요, 찾았어요.”
윤준이를 시작으로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릅니다.
“없어요.”
유나는 찡찡대기 시작하고
재우는 금새 시들해졌습니다.
동휘는 어떻게든 한 뿌리는 가져가겠다고 용을 쓰지만
여전히 만나지를 못하고...
“뭔가를 이만큼도 애쓰지 않고 얻겠다고 하면 안 되지.”
취나물이 들어가지 못할 만큼이 되어서야
더덕을 더듬습니다,
여직 찾지 못한 아이들을 도와야겠고.
“여ƒ…다, 아직 하나도 못 캔 사람?”
유나가 달려왔지요.
“여기도 있네.”
재우도 달려왔습니다.
“지금 쉬고 있는 사람도 와라.”
보기 시작하면 자꾸 뵈지요.
통 없다시던 할머니도 계속 캐고 계시고
이제 내려가겠다던 동휘도 윤준이도 엎드려 기척이 없습니다.
“더덕 밭이네.”
이제 갈 생각들을 잊었습니다.
제법 굵은 놈들을 캐기도 했지요.
“너무 어린 건 다시 심어두자.”
산삼이 따로 있겠는지요.
집에 가서 얼마에 판다고도 하고...
원래는 물꼬에 반 기증하고 반은 집에 가서 판다데요.
기념으로 다 가져가라 하니
어찌나 야물게들 가방에 여미던지요.
달골 햇발동에 들러 포도즙으로 목을 축이고 돌아옵니다.

풍물샘이 오셨습니다.
사물놀이의 역사도 듣고
각 소리가 갖는 의미도 새기고
인사굿에서부터 일체 이채 삼채를 익힙니다.
들은 바도 있고 해본 바도 있어서
금새들 익히고 있었지요.
앉아 사물놀이 공연 한 판까지 했더랬네요.

모내기를 하네 못하네 하며 이번 주를 보냈습니다.
흙집을 짓는 현장에 가 있던 종대샘도 돌아와
오늘 모를 내자 잡아놓았던 날이네요.
그런데 물이 잡히지 않는다고 조바심을 내오다
아무래도 미루어야겠다, 엊그제 결정했지요.
아이들 왔을 때 할랬는데
다음 주에야 하겠습니다.
논 대신 풀밭에 들었습니다.
“풀을 좀 뽑자.”
필요치 않은 걸 없앨 때도
적대감으로서가 아닌 다른 마음으로 뽑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제초제를 우리는 왜 쓰지 않는가,
그런 얘기들로 시작해서
침묵하며 풀을 맸습니다.
소나무 둘레가 훤해졌네요.
“침묵하면서 하니까 일이 더 잘됐어요.”
“지금까지 며칠 동안 한 것보다 많이 했어요.”
“침묵하니까 다른 것들의 소리가 들렸어요. 바람 소리도 들리고...”
멀리 오동꽃이 나무들 너머로 할랑거리고 있었습니다.

판소리를 합니다.
채민이네가 다녀갔지요.
신사랑가를 할까 하다가
역시 오늘에 어울리는 노래는 아닙니다.
신아리랑을 할까도 하다
뱃노래와 진도아리랑을 불렀지요.
뱃노래야 계자에서 들어본 적이 있고
진도아리랑이라면 이래저래 들어본 적 있을 것이라 수월할 테지요.
잠깐 익혔는데도
아이들이 입에 또 달고 지내네요.
저녁버스로 나가기 전 외대학생들은
마지막까지 아이들을 사진기에 담느라 바빴답니다.

희중샘이 들어와 손을 덜어주네요.
아이들이 학교가 떠나가라 반가움으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지윤이도 기다렸던 그이지요.
하다까지 다치고 더 많이 움직여야 해서
새끼일꾼의 몫이 컸더랬지요.
딴에는 힘에 많이 겨웠을 겝니다.
잠깐 병원에 다녀옵니다.
엎드려 그만 잠이 들었다가 화들짝 깨서 돌아왔지요.
곤했던가 봅니다.

달골 창고동에서 대동놀이입니다.
이미 난로를 피워 감자를 굽고 인디언놀이 한 판 했더라구요.
종대샘이 아이들이 노래 노래 하던 바로 그 라면을 끓이고 있었고
우리들은 낮에 배웠던 소리들을 부르며 한바탕 놉니다,
소리를 밀고 당기고 주고 받고 메기고 풀며.
다시 오지 않을 밤이 그리 깊어갔습니다.
달빛도 고왔지요.

‘희중쌤이 오셔서 저녁을 먹고 달골 창고동에 가서 신나게 놀았다. 감자도 먹고 묻히고, 라면도 먹고 애들 식성이 얼마나 좋은지 끝도 없다. 이렇게 빠르게 일주일이 지나 내일이면 집에 간다. 계자 때와는 다른 재미?!(옥샘께서 안 계실 땐 힘들기도 했다. 진행이 안돼서)가 있었고 현진이가 계속(일주일 내내) 제목을 ‘선택받은 아이들’로 해달라는데 뭘 해달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애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7명 작은 인원으로 움직이니까 하나같이 다 내 동생들 같다. 말 안들을 땐 너무 밉고 저주했으나,... 좋은 기회를 갖게 되어 즐겁다. 여름 계자를 기대하며...’(지윤이의 하루 정리글 가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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