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23.쇠날. 흐림

조회 수 1319 추천 수 0 2008.06.01 00:11:00

2008. 5.23.쇠날. 흐림


날이 연일 가뭅니다,
기온도 높고.
종대샘은 논에,
그리고 젊은할아버지는 우리가 비운 밭을 지키고 있다 합니다,
달골 포도밭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오면서 옥수수와 콩, 호박을 놓으라 부탁드렸댔지요.
그것 아니어도 고추밭이며 고구마밭이며 감자밭 다 말라
아침 저녁으로 물과 씨름하고 계실 겝니다.
그런 속에 물꼬는 모내기 준비가 다 되었다 합니다.
오는 해날 모를 낸다지요.
남정네들끼리 밥 해 먹으며 참도 내 가며
들에 나갈 생각하니 갑갑했지요.
그런데 다음 주에 퇴원을 하리라 예견하던 의사가
이 주 흙날 즈음엔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더니
정말 오늘, 낼 가도 된다 합니다.
겨우 한 주인데,
한 달은 된 듯합니다.
보름을 보낸 아이에겐 더 길었던 시간이겠지요.

오늘은 헐겁게 아이랑 영화 한 편 봅니다.
여태껏 살아오며 봤던 텔레비전 시청 시간보다,
어쩜 앞으로 살아가며 볼 양보다,
더 많은 시간을 TV 앞에 누워있던 아이를
오늘은 화면에서 떼고 싶었는데,
또 모니터 앞이네요.

성실하긴 하나 썩 매력 없는 배우, 뻔한 스포츠영화의 플롯,
그러려니 싶은 종교와 종교의 화해,
샘터에서 나온 책으로 주르륵 훑어보았던 책이기도 하여
그래서 손이 가지 않던 <보리울의 여름>을 잡은 것은
아이들이 등장한다는 것 때문이었고,
무엇보다 1995년 <개 같은 날의 오후>로 우리를 감동시켰던
이민용 감독 때문이었습니다.
아픈 놈은 저 일이어 그렇구나 하지만
병상이란 것이 곁에 있는 사람이 더 곤한 법이지요.
여전히 자다 깨다 하는데
시시할 것 같다던 아이가 점점 몰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종교, 그리고 그 속의 아이들이
장대비 속 진흙탕에서 공을 차며 엉키는 신명 속에
먹구름을 뚫고 햇살이 비추지요.
마을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빛나는 눈동자는
아이들의 합창과 겹쳐집니다.

푸르른 하늘 위 밝은 햇살 아래
우리는 함께 가요 서로 손잡고
시원한 바람이 온 세상 불어오면
우리는 함께 가요 친구 손 꼭 잡고
우리 어른 돼도 서로 기억해
찬란한 여름 하늘
어떤 추억들...

이영훈 선생이 작곡한 노래입니다.
그것 아니어도 직접 피아노를 치신
‘아침에 오는 비’, ‘첫사랑’도 익히 좋아하던 곡들이었지요.
그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캐릭터들이 살아납니다.
수많은 인물들이 나오고
주인공 아니어도 그 인물들이 세심하게 어우러져갑니다.
허름한 아파트 옥상에서 투쟁했던 아줌마들의 연대는
이곳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지요.
서로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빚어내는 고만고만한 일상사들을 지켜보노라면
문득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그리운 시공간 속으로 스며들어가게 돼요.”
어떤 이가 그리 말한 적이 있었지요.
그래요, 그리운 것들 거기 있습니다.
둘러친 평상이 놓인 마당에 연기 오르는 모깃불,
흙먼지 풀풀 이는 운동장,
멀리 논가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읍내로 가고 오는 길,
장터에서 먹는 국수,
맑은 시냇물 속에서의 멱,
창밖에서 까치발로 들여다보는 유리창 안의 가게,
훔쳐보는 방,
털털거리는 경운기,...
끊임없이 자극을 찾아내는 영화판에서
그래서 더욱 귀했다고들 한 영화였지요.
영화를 보는 우리는 대해리 골짝이 더욱 그리웠습니다.

밋밋하다기보다 담백하다는 게 옳겠습니다.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외려 좋았습니다.
맑았습니다.
만들어 내는 감동이 아니라 그저 책을 읽으며 드는 자연스런 일렁임이 있었지요.
‘화해’와 ‘연대’가 주는 감동일 테지요.
어느 영화 잡지는 이리 쓰고 있데요.
“스님은 막걸리를 들고 성당을 기웃거리고, 원장 수녀는 밤이면 손수건을 손에 쥐고 멜로드라마에 빠져들고, 젊은 수녀는 침실에서 화려한 속옷을 입고 피부 마사지를 한다. 천사 같던 아이들도 밤이면 사다리를 들고 수녀들의 방을 엿본다. 이들의 두드러지지 않는 일탈 속에서 영화는 인간미를 부여한다. 아버지가 스님이지만 천주교를 믿는 아이, 천주교 고아원에 있지만 천주교를 믿지 않는 아이, 여자아이를 사사건건 무시하는 꼬마 마초들과 남자아이들 틈에서 뒹굴고 구르며 슛을 날리는 여자아이. 이처럼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내고 있는 <보리울의 여름>에 등장하는 50여 명의 아이들은 8명을 제외한 40여 명이 촬영지인 전북 김제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다. 예쁘장하기만 한 얼굴이 아닌, 실제 배경 속에서 다양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아이들의 생명력은 <보리울의 여름>의 커다란 미덕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1616 2008. 7. 4.쇠날. 맑음, 무지 더울세 옥영경 2008-07-21 1207
1615 2008. 7. 3. 나무날. 아침비 옥영경 2008-07-21 1264
1614 2008. 7. 2.물날. 갬 옥영경 2008-07-21 1291
1613 2008. 7. 1.불날. 흐림 옥영경 2008-07-21 1070
1612 2008. 6.30.달날. 맑음 옥영경 2008-07-21 1109
1611 2008. 6.29.해날. 가랑비 뒤 옥영경 2008-07-11 1459
1610 2008. 6.28.흙날. 비, 억수비 옥영경 2008-07-11 1266
1609 2008. 6. 27.쇠날. 맑음 옥영경 2008-07-11 1170
1608 2008. 6.26.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8-07-11 1424
1607 2008. 6.25.물날. 맑음 옥영경 2008-07-11 1170
1606 2008. 6.24.불날. 볕 쨍쨍 옥영경 2008-07-11 1155
1605 2008. 6.23.달날. 잠깐 볕 옥영경 2008-07-11 1095
1604 2008. 6.22.해날. 비 잠시 개다 옥영경 2008-07-06 1539
1603 2008. 6.21.흙날. 비 옥영경 2008-07-06 1339
1602 2008. 6.20.쇠날. 비 옥영경 2008-07-06 1190
1601 2008. 6.19.나무날. 비 옥영경 2008-07-06 1223
1600 2008. 6.18.물날. 비 옥영경 2008-07-06 1327
1599 2008. 6.17.불날. 흐려가다 옥영경 2008-07-06 1377
1598 2008. 6.16.달날. 맑음 옥영경 2008-07-06 1223
1597 2008. 6.15.해날. 맑음 옥영경 2008-07-06 1185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