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2.달날. 오후 흐림

조회 수 1071 추천 수 0 2008.06.23 16:01:00

2008. 6. 2.달날. 오후 흐림


정신이 없는 하루입니다.
주말을 논밭이나 부엌에 들어 보내고 나면
달날 아침부터는 교무실에 앉아서 하는 일이며
또 한 주 동안 있을 강의를 들으러 갈 준비,
한편 강의를 하러 갈 준비로 분주합니다.
그런데 여유란 게 꼭 시간이 있는 건 또 아니지요.
뭐 사는 게 그렇지요.
밥 해 먹고 나날의 삶을 꾸리고
그렇게 하루 하루를 넘기며 전 생애를 채워나가는 걸 겝니다.
이 모든 것이 ‘살아 있음’ 아닐지요.

그간 가지 못한 수화공부를 가기로 합니다.
제가 가려하면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이 시험이다 뭐다 해서 수업이 없고,
또 공부에 전 삶을 걸고 있는 학생들이니
어떤 날엔 아주 늦은 시간 수업을 해서 갈 수가 없었고,
어떤 날은 물꼬에서 일정을 맞추느라 빠지고,
그러저러 몇 번 못 나가던 공부모임이었습니다.
오늘은 아이를 끌고 저녁에 강의실을 찾아갔지요.
어느새 다음 시간이 마지막 수업이네요.
그래도 마음을 놓지 않고 손을 놓지 않아 그런대로 따라가고
무엇보다 이곳에서 그간 아이들과 해온 손말 공부가 적잖이 도움이 큽니다.
해놓은 게 있으면 다음 공부가 또 수월한 법이지요.
다 고마울 일입니다.

생명평화모임도 있는 날입니다.
영동도서관에 공문도 보냅니다.
오늘부터는 도서관으로 옮겨 모임을 하기로 했는데,
구두로 허락만 받아놓고 공문이라는 형식은 오늘에야 갖춥니다.
“형식은 갖춰 놨구요, 그런데 오늘 참석은 어렵겠습니다.”
대신 손말 공부하러 갔더랬지요.

전화 한 통을 받습니다.
아니 지난 주말 내내 왔던 전화였습니다.
해서 간밤에 전화를 하려 했는데
흙투성이로 잠이 들었다가 퍼뜩 깨어
전화 하려고 보니까 새벽 2시가 다 되고 있었지요.
그런데 이른 아침 다시 전화가 온 것입니다.
특정 학교나 특정인을 비난하려 시작한 건 아닌데
제가 들었던 생각에 대해 의견을 써서 막 올려놓은 글이
결국 당신에 대한 비난 아니냐 몹시 화가 난 분이셨습니다.
아차 싶었지요.
늘 의도했던 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네요.
제가 경솔했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글도 마음결이 곱지 않았더랬지요.
광범위하게는 교육에 대한 다른 생각을 쓴다는 것이
자칫 당신에 대한 공격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직위와 지위 권력을 이용해서...”
그러셨지요.
아니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산골 삶에 무슨 직위가 있고 권력이 있겠습니까.
사람 몇 모여 같이 살고 작은 학교 하나 꾸려가는 일에
무슨 힘이 또 있더란 말입니까.
다만 사람이 모자라서 그런 거지요.
어쨌거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은
아무리 변방의 한 귀퉁이에 별로 드나드는 사람도 없는,
우리끼리 보는 것일지라도
분명 공개적인 게 맞고,
그렇다면 혹여 다치는 사람이 없는지 더 민감하여야겠습니다.
누군가가 아프답니다.
그럼 잘못한 거지요.
그래도 대범할 수도 있는 당신의 지성을 믿고 시간을 믿습니다.
‘기분 엄청 나쁘다’고 하신 전화였지만
제가 가진 생각을 또 이해해주기도 하실 겝니다.

“적어도 대안학교의 교사라면...”
그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런 얘기를 또 들었던 적이 있지요.
그런데 왜 그 말에 우리를 가두는지요?
대안학교, 그거 우리는 안 할랍니다.
내 주장을 편다는 것이 어찌하여 다른 학교를 향한 비방이란 말입니까.
교육이 어찌 한 길만 있겠는지요.
이렇게도 살고 저렇게도 살 듯
가르침도 그리 다양할 수 있지 않겠는지요.
내 주장대로 그 뜻을 좇아 학교를 열어간다고 하여
그게 어찌 타 학교에 대한 비방이겠는지요.
단지 그 길을 가지 않는다는 것이 상대를 비방하는 것이냔 말입니다.
대안학교교사, 저는 잘 모르지만
그거 ‘숭고한’ 이름자가 아닙니다.
그거 ‘거룩하고 도덕적’인 이름이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고 숭고하거나 거룩하지 않은 말이라는 뜻은 더욱 아닙니다.)
그냥 지금 다수가 가고 있는 제도 교육이 아닌 곳에서 일하는 이름일 뿐입니다.
많은 걸 기대하지 마셔요.
당신이 최선을 다하듯 대안학교 교사라는 사람들도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을 뿐이지요.

주디가 키다리아저씨(진 웹스터 작)한테 보냈던 글 한 구절을
천천히 곱씹어보는 밤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앨러배머에서 오신 주교님의 감명 깊은 설교를 하셨어요.
설교의 제목은 ‘비판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었는데, 그 내용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해주고, 가혹하게 비판해서 그들을
낙심시키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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