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4. 물날. 빗방울 간간이

조회 수 1174 추천 수 0 2008.06.23 16:02:00

2008. 6. 4. 물날. 빗방울 간간이


물꼬 대문, 줄장미가 붉습니다.
언제 또 그리 꽃들을 초롱처럼 달았더랍니까.
몇 해 전 울 어머니가 옮겨 주신 것입니다.
어머니 계신 집 울타리를 타던 것들, 모다 그립습니다.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있는 제자의 글월을 받았습니다.
동료교사들과,
또 교실에선 교실에서대로 잘 안 된다는 하소연입니다.
고백하면, 저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리 말해 혹여 힘이 빠지느뇨?
네가 외려 낫다.
자기 어려움을 고백해서 낫고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나아가서 낫고...”
비슷한 어려움을 계자에 품앗이일꾼으로 온,
다른 초등학교 교사로부터도 여럿 들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리,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짧은 답장을 예 남기노니-

아이들이 밉다 했더냐?
나는 한 교실에서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수업을 오래 빠졌던 친구가 돌아왔는데,
물론 아닌 척 말은 부드러웠으나
심지어 비아냥거리는 듯하며 미움을 꾹꾹 누르고 있는 걸
조금만 예민한 이라면 읽을 수 있었다.
그 뒤로 나는 그 교사를 잘 쳐다볼 수가 없었다.
(이건 또 얼마나 어리석음이더냐.
누군들 실수가 없더냐. 그 교사도 실수였을 게다.
그런데 그걸 또 못 견디는 나라니...)
사랑하기는 싶다.
미워하지 않기가 어렵지.
교사로서의 생애, 자신이 들었던 최대의 찬사를 한 사람은 이리 말했다.
“당신은 어떤 경우에도 아이들을 미워하지 않아요.”
그래, 맞다.
그게 교사인 거다.
아무쪼록 미워하지 말아라.
그게 어렵다면 적어도 행동으로 드러나진 않도록 해야겠다.

그런데, 불거진 한 문제로 윗사람이 나섰다 했느냐?
그래도 네가 맡은 교실의 문제를 윗분께 맡긴 건 아닌 듯하다.
더 힘센 사람한테 도움을 구하는 건 일면 지혜이긴 하나
네 교실에서 풀려고 더 애써야하지 않았을까.
특히 그에게 도움을 청한데서 그치지 않고
그 문제로 교감을 앞세우고
교감으로 하여금 아이들 앞에 서서 문제를 다루게 한 건 아무래도 경솔했다 싶다.
할 말이 있다면 네가 직접 하는 게 옳지 않았을까?
한편 다른 아이들을 붙들고 하소연을 한 것도
생각을 더 해봤어야하지 않았는지...
네가 그렇게 함으로서 그 아이가 설 자리가 없어졌을 게다,
그건 그 아이를 더욱 내모는 게 될 게고.
쥐도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하지 않더냐.
아이의 반격(?)을 두려워하라는 말이 아니다.
아무리 그 아이가 잘못했기로 한 사람을 그리 내몰면
아이는 또 어딜 가겠느냐.
측은지심(惻隱之心), 잊지 말아야 할 말이다.
너도 안됐고 나도 안됐고, 그런 거 아니겠냐, 사는 일이.
교사는 어떤 식으로든 교실 안에서 권력자이므로
네가 불편해하는 아이를 다른 아이들도 꺼리기 마련이다.
너는 의도하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만,
네가 다른 아이들을 불러놓고 그 아이를 거론한 건
아이들 사이 ‘이간질’을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교실에서 관계의 조화에 기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편, 아이에게 대답도 잘 하지 않았다 했느냐,
그래도 네가 할 바를 다해야지,
학생 마음에 안 든다고 교사가 자신의 의무를 저버려선 아니 되겠다.
너는 선생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가장 힘든 건 너일 게다.
너 역시 최선의 길들을 찾고 있을 게다.
더 힘을 내거라.
훈장의 똥은 개도 먹지 않는다는 말이 괜히 나왔겠느냐.
그래도 내버려두지 않고, 절망만 하지 않고,
자꾸 꺼내고 찾고 또 찾고 있지 않느냐.
흔히 교사들이 가지기 쉬운 오만만 없다면
(모든 면에서 상대가 자신 앞에 숙여야하고 존경해야 한다,
아이들의 모든 걸 장악해야 한다, 꼭 뭘 가르쳐 주어야 한다,
뭔가 내가 답을 주어야 한다는 착각.
교사는 교실에서나 선생이다!)
아무것도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풀 거니까.
풀 수 없는 문제라면? 풀 수 없는 일이므로 걱정할 일이 아니지.
왜? 풀 수 없는 거니까.

사는 일은 아무리 살아도 익숙해지지 않더라.
절망하지 마라.
교사가 지녀야할 최고의 품성, 순하고 선함,
그걸 네가 갖고 있지 않더냐.
잘 될 게다, 다 잘 될 게다.
그리고 하나 더,
잊지 마라, 무어라 하여도 나는 네 편이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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