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10.불날. 맑음

조회 수 1298 추천 수 0 2008.07.02 23:54:00

2008. 6.10.불날. 맑음


아, 올 여름 첫 반딧불이를 보았습니다!

“할머니...”
광주에서 물꼬랑 외가의 인연을 맺은 아이들 대표(?)가 전화했습니다.
물꼬가 그들의 외가가 된 지 한참이지요.
간간이 이렇게 소식 전해옵니다.
그들의 외가로 주는 위로보다
물꼬가 외손주들로 힘을 더 많이 얻는 걸
그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요?
올 여름에도 짝들을 지어 계자를 다녀갈 것입니다.

“서럽다 뉘 말하는가 흐르는 강물을
그립다 뉘 말하는가 되살아오는 세월의
가슴에 맺힌 한들이 일어나 하늘을 보네...”
이한열추모가이지요.
참 많이도 불렀던 노래인데 제목은 생각이 안 나네요.
6.10 기념일입니다.
다시 사람들은 미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거리에 나가고 있습니다,
짱돌과 화염병 대신 촛불을 들고.
그 성격이 어떻게 달라졌든
사람들이 목소리를 모아가는 걸 보노라면
‘이스크라’가 떠오릅니다.
가슴 뻐근해지지요.
플레하노프가 레닌 악셀로트 들과 함께 편집했던
혁명적 맑스주의 신문 제목이었습니다.
들불이 되자던 ‘노래’(죽창가로도 불리는)도 있었습니다.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불이 되자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나름 꽤 긴장한 하루였네요.
아이가 오늘부터 세상 구경을 가기로 한 날입니다.
한 달 동안 주에 두 차례
지역도서관에서 하는 무료프로그램에 참가하기로 한
첫날이었지요.
저 역시 이른 아침부터 한 기관을 방문하기로 하여
늦지 않으려고 서두른 데다
푹푹 찌는 날씨에도 잘 먹을 수 있게 아이 도시락을 싸고,
공사하는 이들도 부엌에 사람 없이 먹을 수 있게 밥상을 미리 차려놓느라
다른 날보다 복작거린 날이 되었답니다.
그런데 마침 읍내 가는 길에 아이도 내려주기로 하였는데,
오늘 부용리로 간다던 일정이 바뀐 겁니다.
분명 부용리(읍내쪽)라 하였는데,
물꼬에서 멀지 않은 매곡으로 가게 됐지요.
도서관 앞에서 들여보내주기로 한 아이는
준비 없이 혼자 버스를 타고 읍내 큰 길들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마을에서 나가는 차야 하루 두 대라 시간이 맞기 힘들고
마침 상촌 면소재지에서 영동읍으로 나가는 버스가 있었는데
그만 놓쳐 황간까지 갑니다.
그리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아이는 도시락 들고 가방에 책 잔뜩 울러 매고
읍내 사거리에서 내려 혼자 걸어가야 합니다.
처음이라 그도 두려움이 일 수 있겠지요.
버스 꽁무니를 오래 쳐다보다
약속한 시간에 매곡까지 되돌아오느라 서둘렀네요.

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수업 참관을 갔습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요,
누가 무엇을 평가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 옴작대는 어린 녀석들을 앞에 놓고
선생님 정말 애쓰셨습니다.
교사들 정말 욕봅니다,
대단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공개수업 같은 날은 앞치마 못하게 하지요, 아마.
편한 복장에 앞치마 두르고
한껏 교사가 하고픈 대로 하는 게 더 좋을 걸...

대학을 나가는 근래
(강의도 가지만 수업을 들으러 가는 다른 학교; 이럴 땐 ‘다닌다’고 해야겠지요?),
문득 다 하릴없단 생각이 오늘 듭디다.
체념이 아니라 각성 같은 거였지요,
뭐하고 있나 싶은.
구미의 동료 교사 하나가 대학원을 다니면서 “늘 반반”이라더니
(이런 짓을 왜 하나 싶은 한편 또 도움이 되기도 하더라고)
다르지 않은 마음이었던 겁니다.
자격증이 필요해서 간 것도 아니고
(물꼬에 오는 이들이 어느 누구도 자격증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그것도 유아교사자격증, 혹은 초등특수교사자격증을-
이 일의 자격이 그 자격증에 있다고 생각지 않으므로 더욱)
깊이 공부가 필요(?)하게 된 시기에,
한편 세상과의 소통,
혹은 세상이 도대체 어떻게 굴러가는지 보자는 심사도 없지 않은,
돈이 달래 드는 것도 아니니 해보자고 간 일이었더랬지요.
그런데 역시나 학교라는 공간은 박차고 나올 때와 다르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말도 안 되는 상황(뭐 달래 설명할 것도 없는)을 마주치기도 하면서
(하기야 ‘그런 일’이, ‘그런 사람’이 어디 학교에만 있겠는지요)
그래서 이거야말로 ‘공부’겠구나,
저이가 나 공부시키는 ‘부처’구나 하며 가기도 했습니다.
최근 퍽이나 마음이 어지러웠던 일이 있었는데,
그런 것이 혼자만의 문제를 넘어
학교를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것 같다는
억눌린 몇 학생들의 하소연을 들으며도
무거움 더했던가 봅니다.
정말 세 학기 열심히 했지요,
새벽 서너 시에 하루를 시작하며.

그런데 하릴없다던 생각이
또 한 번 뒤집어지데요.
아무래도 이제 고만할 때가 됐나 부다 싶더니,
나야말로 이 상황에서 바로 바로 즉자적으로 허부적댔구나,
일어나서 서보니 무릎까지 밖에 오지 않는 도랑물,
엄살이었네 싶은.
‘나’는 다만 ‘내’ 길을 가면 될 일입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그러네요.
“그대의 얼굴은 짓밟힐지언정 마음만은 무엇에도 짓밟히지 말아야 한다.
눈을 안으로 떠라.
그대가 찾는 것은 그대의 마음속에 있다.
이제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이 거기 있을 것이다.
그대의 마음속에 얻은 것이 진정 그대의 것이다.”
그렇습니다, 해도, 또 아니 해도,
여전히 제 삶을 유지하며 살아갈 거란 거지요.
한다는 것도 ‘자유로운’ 선택이어야 할 것이며
아니 하더라도 역시 자유로운 선택이어야 할 것입니다.
한 동안은 또 다녀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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