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18.해날. 비, 저녁에 굵어지다

조회 수 1416 추천 수 0 2008.05.31 23:39:00

2008. 5.18.해날. 비, 저녁에 굵어지다


<대해리의 봄날>을 끝낸 아이들을 역에서 보내고
어제 그 길로 병원으로 들어왔습니다.
젤 훌륭한 강의는 휴강이다, 라는 농으로 위로하며 비웠던 서울의 학교로
기락샘은 다시 돌아갔지요.
오줌이 잦아진 아이에게 오줌통을 들고 오가며
사람이 아주 축이 나서 올라갔습니다.
뼈가 부러진 게 아니지만
아직 열흘은 더 깁스를 하고 있으라 했습니다.
그래도 얼마나 고마운지...
그렇게 깊고 길게 패인 다리의 상처가
앞의 중요한 근육, 뒤의 중요한 근육 다 피해가며 다쳤답니다.
천행이었다는 수술한 의사의 말대로
손목은 또 얼마나 다행이던지요.
신경막까지만 유리가 갔더랍니다.
1미리만 더 들어갔어도 수술이 복잡한 건 고사하고
손을 쓰는데 온전치 못했을 거라 했지요.
손목은 벌써 움직거릴 수 있답니다.

사고 나고 수술하던 날,
수술실을 나온 아이를 입원실로 보내며
이것저것 챙길 게 많았지요.
서송원으로 전화 넣었습니다.
유기농으로 포도를 키우며 이것저것 바꿔 먹고 나눠 먹는
아선샘과 영현샘 말입니다.
이웃이란 그런 거지요,
마음에 걸림 없이 가장 어려운 시간 생각나는.
기락샘만 남기고 모두 학교로 돌아오며
필요한 것들을 부탁드려놓았지요.
풀지 않은 다섯 벌의 새 수저가 든 통이 왔고,
일부러 바로 쓸 수 있도록 빨아둔 수건을 챙겨왔으며
아마도 댁에서 가장 예뻤을 컵과
두루마리 화장지 뿐 아니라 티슈까지.
그리고 당장 지키는 사람이 먹을 게 시원찮을 거라고
빵이며 쥬스며...
배려를 읽었지요.
어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배울 게 많은 어른들 곁에서 보고 살아가는 일은 고마울 일이지요.
그보다 더한 스승이 어딨겠는지요.

어제는 논두렁 대표(?) 주훈샘이 다녀갔습니다.
병원에서 하룻밤을 자고 갔지요.
그는 물꼬 식구들에 대해 참 많은 걸 압니다.
이십 년을 넘게 만난 세월을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하게 읽어내 주지요.
고무장갑이며 아예 살림살이들이 들어왔답니다.
맞아요, 한참은 집에 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목수샘이
대해리에서 필요한 것들을 좀 챙겨다 주고 돌아갔네요.

이태를 대해리까지 들어와 검도를 가르쳐주었던
아이들의 검도샘을 만나고,
맞은편 병실 앞에선 할머니를 간호하러 들어온
감골소리관현악단 식구를 만났습니다.
작은 읍내는 이래서 또 재밌습니다.

아이가 손목을 옴짝거리게 되자 엄마에게 쪽지를 주었습니다.

엄마, 제가 지금 아파요. 아시겠지만 죽는 줄 알았어요.

그리고 엄마가 있을 동안(9박 10일) 다쳤다, 등의 말을 적게 해주셔요. 많이 아파서요.

고맙습니다.

(추신: TV에 엄마 나왔어요.)

지난 5월 15일
sbs 출발모닝와이드 3부 ‘고맙습니다’ 꼭지를 보았던 날인가 봅니다.
‘죽는 줄 알았어요’, 그래요,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세상에 놀랄 게 별로 없다는 풍채 큰 목수샘도
적이 놀랐다던 상처였지요.
아이에게도 좋은 공부가 되는 시간일 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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