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나흗날, 2008. 5.14.물날. 맑음

조회 수 1277 추천 수 0 2008.05.23 17:57:00

봄날 나흗날, 2008. 5.14.물날. 맑음


해건지기-국선도수련/아침 때건지기/손풀기/한껏맘껏/빛그림/
점심때건지기/한땀두땀/일/국선도수련장/병문안

무슨 오월 날씨가 이렇답니까.
여름 계자를 생각하고 짧은 팔만 준비해왔다는 아이들은
옷방에서 한겨울 파카를 꺼내서 입고 있습니다.
한껏맘껏시간, 아이들은 또 어느새 한 방에 모이더니
난로를 틀고 빙 둘러앉아 낮잠을 잤습니다.
따뜻하다고 가마솥방에서 할머니도 건너오셨는데
나중에 종대샘한테 그러셨대지요.
“너들은 애들 불러 모아다 놓고 뭐하는 거냐?
선생은 없고 애들은 빈둥빈둥 놀고...”
애들은 그런 할머니를 속틀 앞으로 모셔다 일정을 열심히 설명을 했다는데,
할머니는 답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셨겠지요.
교실에는 가르치는 선생이 있어야 하고,
아이들은 책을 들여다보거나 공책에 뭔가를 써야 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할 겝니다.
배움터에 대한 전형 말입니다.

오후는 ‘한땀두땀’을 하라고 천이며 바늘쌈지를 챙겨두었더랬습니다.
‘한땀두땀을 하는데 하는 도중에 마을 아이들 몇 명이 왔나 보다. 장순이가 하도 짖어대서 봤는데 아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 아이들이 손가락으로 욕을 해서 남자 애들이 화나서 뛰쳐나갔다. 뭐 별다른 일어난 일은 없다. 그런데 동휘가 “우리 동네 사는 애들인가 봐요” 했다. 우리 동네???? 나는 또 동휘가 자기 동네에서 보던 애들인 줄 알았더만 어느새 물꼬가 우리 동네가 되었다.’(새끼일꾼 지윤의 하루 정리글 가운데서)
상촌에라도 사는 아이들었을까요,
이 마을에 취학연령 아이라고는 류옥하다 선수밖에 없는데...

일시간엔 아이들이 젊은할아버지를 앞세우고
가마솥방 할머니랑 미나리꽝으로 갔습니다.
지금은 아예 밭으로 쓰고 있고
올해는 거기 고구마순을 놓았더랬지요.
그런데도 그 둘레를 온통 미나리가 채우고 있습니다.
지난번 고구마 밭을 일굴 때도 돌미나리 뜯어다 비벼 먹었댔지요.
안 먹던 아이도
제가 캐 와서 무쳐놓으면 희안하게 또 맛나게 먹어댑니다.
얼려두었던 떡을 조금씩 꺼내
할머니는 오후 참으로 아이들 앞에 내내 꺼내놓고 있습니다.
오늘은 오전에 잠깐 뜯은 쑥이라며 쑥버무리를 해주셨지요.
그런데 현진이, 간식을 먹을 때던가요,
아이들에게 엄포를 놓았습니다.
“떠들면 안 준다!”
“어머, 누구한테 그런 걸 배웠니?”
“옥샘한테 배웠어요.”
멀쩡한 얼굴로 대답하는 저 얼굴 좀 보셔요.
옆에 섰는 놈들이 더 숭억합니다.
“우리는 모든 걸 옥샘한테 배워요.”
이구동성.
“이눔의 자슥들...”
아, 눈물이 날만큼 행복합니다.
아이들과 사는 일이란 말로 표현할 길 없는 소중한 시간이지요.
아이들이 있어 고맙습니다.
이 아이들이 있어 더 고맙습니다.

머리가 묵직합니다.
잠 부족 두통입니다.
연일 일에 밀려 잠을 잘 못 자네요.
아이들은 남은 시간을 저들끼리 꾸리고
저는 읍내 나갑니다.
가는 길에 면사무소에서 서류도 하나 떼내요.
그런데 그걸 또 서울에 팩스로 보내야 됐습니다.
이미 읍내로 가는 고개를 넘고 있는데, 받은 연락이었답니다.
면사무소 담당자에게 전화를 합니다.
다시 한 통 떼서 팩스로 그곳으로 보내 달라 부탁하지요.
시골 동네 사니 이런 게 또 좋습니다.

아주 날아다녔습니다.
강의를 하나 듣고 있었는데,
(새끼일꾼이 아이들 곁에 있으니
일상적으로 해오던 일들을 하나도 빼지 않고 다 챙길 수 있습니다.)
끝나갈 무렵 전화가 왔습니다.
마치고는 하다한테 병원에 가서 세 시간여 보내기로 했는데 말입니다.
그 시간에
올 여름 해외자원봉사를 신청한 소희샘의 추천서를 써주기로도 했지요.
인형옷에 문제가 좀 있다 합니다.
어제 분명 잘 맞는지 물어봤더랬는데,
학생들 말로는 그런대로 입힐 만하다더니...
달려갑니다.
오늘은 숨을 좀 돌리나 했건만...
하다한테는 못가는 거지요.

옷이 지나치게 작았습니다.
이걸 또 집에 가서 하자면 밤을 꼴닥 새겠구나 싶데요.
전체 진행하시는 인형극교수님이 계실 때 하면
일을 쉽게 할 수 있을 텐데
(몰라서도 일이 더 어렵고 그만큼 시간이 많이 걸렸으므로),
시간을 어찌 써야 하나...
종대샘은 처음 해보는 모내기를 앞두고
못자리 물을 잡느라 정신이 없는데,
어렵게 전화를 하여 재봉틀과 천을 공급 받습니다,
그 사이 소희샘한테 보낼 추천서를 쓰고.
‘하다는 아프다고 하지 참! 가슴 아프네.
언제까지 병원에 있을 거야? 정신적으로 충격이 크겠다.’
기락샘한테 온 문자를 보고
다 젖혀놓고 달려갔다가도 옵니다.
하다가 놀라긴 많이 놀랬던가 봅니다.
오랫동안 잊었던 어리광을 다 부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도 아이는 엄마 얼굴 봤으니 됐다고
퍼뜩 가서 일 보라데요.
낼이 인형극공연이라 마지막 연습이 한참인데,
곁에서 재봉질을 합니다.

그런데 어느새
이제 아이들과 국선도 수련장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입니다.
마지막 5분이 모자라서...
공연을 하면 늘 그러지요.
아주 조금 남았는데...

아이들은 저녁버스를 타고 나왔습니다,
물꼬에서 여태까지 먹었던 김밥 가운데 가장 맛있었다는 도시락을 먹으며.
수련장에 들어서니
앞 시간 수련을 하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구석에 모여 조용히 앉아있습디다.
사람들이 가고 7시부터 우리들을 위해서 마련한 수련이 시작됩니다.
사범님의 안내를 직접 들어보라고,
또 수련으로 기운을 잘 닦아놓은 곳에서 한 번 해보라고 준비한 시간이지요.
잘 하데요.
사범님은 내내 수련을 해오던 아이들이냐 묻기까지 하셨습니다.
“여기 와서 하니까 더 잘 됐어요.”
“그러니까 여기까지 왔지.”
나중에라도 전통수련을 하는 좋은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을 끌고 다시 인형극을 준비하고 있는 극장으로 갑니다.
한 삼십여 분만 하면 되는데,
그걸 못하고 달려나왔더랬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마무리까지 하고 싶습니다.”
두면 또 누군가가 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그가 또 힘이 들겠지요.
맡았으면 끝까지 하는 게 맞구요.
아이들이 인형극 리허설을 보고 있는 동안
(아, 민화샘이랑 희중샘도 만나 아이들이 무지 좋아했지요.)
그예 인형 한복들을 완성했습니다.
어려운 중에도 도와주어서 고맙다셨지만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해준 인형극교수님이 더 고마웠지요.
제가 더 깊이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일을 쉽게 하는 법요.

돌아오며 하다 병문안도 갑니다.
기락샘이 계속 병상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먼저 부려놓고
필요한 것들을 사서 들여갔지요.
‘어제는 사고의 충격 때문인지 서로 애들이 말도 못 붙였는데 오늘은 재잘재잘 정신이 없다.’(새끼일꾼 지윤이의 하루 정리글 가운데서)
하다는 이제야 정신이 좀 드나봅디다.
해바라기 물 주라고 부탁을 하데요.

가마솥방 구석,
주소가 적힌 종이끈이 풀어지지도 않고
학교로 들어오는 신문이 쌓여있습니다.
이곳에서의 신문이란 그저 무엇을 싸거나 까는,
읽기보다 다른 용도로 더 많이 쓰이는데,
아이가 늘 챙겨 읽어왔지요.
우리는 세상 돌아가는 일을 그로부터 듣고는 하였습니다.
하다의 빈자리에 울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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