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4. 4.쇠날. 맑음

조회 수 1221 추천 수 0 2008.04.18 09:22:00

2008. 4. 4.쇠날. 맑음


새소리만 분주한 게 아닙니다.
꽃들도 우르르 오르고 있지요.
꽃마리, 냉이, 별꽃, 꽃다지, 광대나물같은
잘 들여다봐야 눈에 드는 것들에서부터
스윽 지나도 눈을 채워오는 것들도 많습니다.
정말 봄입니다, 봄.
돌단풍은 벌써 꽃을 피웠고
원추리 붓꽃 하늘말나리들이 잎새를 밀고 오릅니다.
금낭화가 벌써 꽃을 단 것도 있고
큰대문 앞 꽃잔디도 훤하지요.
무엇이고 살고 싶지 않으려나요, 이 봄에.
고마울 일입니다.

학교문연날 잔치가 다가옵니다.
아이들이 잔치에서 우리는 뭘 할까 의논했지요.
늘 하던 걸 또 하겠다는데,
올해는 그림자극 하나 더하고 싶다네요.
하라 그랬지요.
어차피 행사 준비는 한 주 전에야 할 겝니다.
보여주기 위해 잘 훈련하는 것도 중요하나
행사도 그냥 지나는 무수한 하루처럼
그리 맞을 수도 있지 않겠는지요.
우리가 세련되기도 어렵거니와
너무 잘 준비된 학예회에 대한 거부감도 없잖습니다.
그냥 ‘같이’ ‘즐거운’ ‘하루’ 되려하지요.
되는대로 해라 일러줍니다.
“점심때마다 피아노 연습도 좀 하고,
비 오거나 일이 없을 때는 국선도수련도 꼭 챙기고...”
올해도 거의 아이들이 꾸려가는 학교랍니다.

육모은행에다 닷마지기에 심을 모를 신청합니다.
못자리를 내는 것까지는 도저히 이곳 사정으로 여의치가 않네요.
마을에 부탁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벌써 상토도 다 준비해두었을 것인데
우리를 위해 따로 또 챙겨 달라 하기는 염치없는 노릇이었지요.

공동체식구한데모임이 있는 날입니다.
먹을거리가 주 주제였네요.
제철음식이 귀한 겨울이었더랬습니다.
이제 둘러보면 죄 밥상에 오를 것들이 차고 오르고 있습니다.
봄은 눈의 생기만이 아니라 입의 생기도 뜻하는 것이겠습니다.
바지런을 떨자 하지요.
아이들과도 자주 밭둑에 언덕에 앉을 겝니다.
뜯고 캐고 파고...
또, 잔치에서 천연주방세제를 만들어 팔기로 합니다,
돈이야 얼마나 살까만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드러내주는 한 부분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어땠니?”
어른들이 모임을 하는 동안
아이들이 영화 <티벳에서의 7년>를 보고 건너왔습니다.
지루할 수도 있었으련만 재미나게 보았다 합니다.
한 서양인 남자가
정치적 격변기의 티벳에서 그들이 지탱하는 정신을 만나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며 영적으로 성숙해가는 이야기,
그리 정리할 수 있으려나요.
14대 달라이라마 당신을 뉴질랜드 웰링턴 공항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우리시대의 거룩한 안내자를 만난 순간은
지금도 삶의 길눈을 밝혀주는 등불 하나 되어주지요.

집안 어르신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물꼬일 덕에 늘 집안일로부터 열외일 수 있는 특혜를 받지요.
온 가족들이 다 모여 전화를 해왔습니다,
알고나 있으라고.
기울어가는 가계의 마지막 대어르신이었던 큰어머니,
당신의 죽음으로 한 세대를 마감하게 되었네요.
이제 우리 항렬들이 최고의사결정권을 갖습니다.
이 순간도 어느 이는 세상을 떠나고
누군가 또 이 지상으로 왔겠지요.
나고 죽는 일도 일상이겠습니다.
살아있는 우리 존재 하나 하나도 어느 날 같은 길을 가리라는 환기는
삶에 눈 부릅뜨고 마주서게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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