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3.25.불날. 한 차례 눈발

조회 수 1222 추천 수 0 2008.04.12 20:10:00

2008. 3.25.불날. 한 차례 눈발


“미나리다!”
아이들이 마당가의 풀을 매고 있었습니다.
“돌미나리네.”
날마다 우리들이 그냥 디디고 다니는 땅이나
얼마나 많은 생명들과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얽혀있을라나요.
우리 눈에 띄지도 않은 채
무수한 것들이 나고 죽을 테지요,
사람 발에 채이는 풀 몇 포기가
개미들에게는 숲이고 온 세상이기도 한,
마치 방 하나가 갓난아기에게 온 우주이기도 한,
풀을 매면서 그 작고 여린 것들의 세계로 아이들이 다가갑니다.
“이 벌레 유충은 뭐야?”
“언제 이게 났어?”
그때 눈이 나렸습니다,
풀풀풀거렸습니다.
논밭에 든 사람들은 연장을 챙기고 집에 들지요.
아이들도 호미를 걸고 가마솥방 난롯가로 돌아옵니다.
하다가 종훈이랑 이정이를 수레에 태우고 달려서 옵니다.
얼마 전 종대샘이 수리해준 리어카라지요.

마을에서 감자 종자와 포도나무 30그루를 얻었습니다.
씨감자를 다 털어먹어 어쩌나 했는데,
읍내 장에 나가서 사야겠네 했는데,
또 이렇게 준비가 됩니다.
고마울 일입니다.

4월 26일의 학교문연날 잔치 준비가 서서히 시작됩니다.
만만한 게 선배들이지요.
물꼬의 큰 그늘인 논두렁님들이기도 합니다.
공연을 부탁하지요.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에 마음을 보태는 그들이고,
적어도 한 해 한번은 잔치를 빌미로 모여
물꼬의 살아있음을 확인하기도 하고
젊은 날 우리가 꿈꾸었던 세상에 대한
지지 않는 희망을 만나기도 하는 자리랍니다.

군청에서 농정과와 산림과 사람들과 만납니다.
무엇을 같이 할 수 있을까,
물꼬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찾고 의논합니다.
꼭 올해 어떤 성과를 내자고 하는 게 아닙니다.
공식적인 만남을 여러 차례 먼저 가져가다보면
같이 할 수 있는 사업도 수월해져가지 않겠느냐,
서로의 생각이 그러합니다.


공동체를 시작하면서, 혹은 공동체에 준하는 모임을 하면서
조언을 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좀 친해지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그 공동체 구성원들을 다 알만치 이야기가 깊어져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듣게 되지요.
대학 후배 하나가 수년 전 물꼬 계자 비슷한 프로그램을 꾸리고 있는데,
어디나 늘 사람이 문제이지요,
사람 관계에 대해 자주 물어옵니다.
그런데 그게 참 해줄 말이 없단 말입니다.
오래 했다고 익숙해지고 나아지고 하는 게 아니더란 말이지요.
그런데 재미난 건 또 어디나 비슷한 문제들이란 겁니다.
거기도 새로 온 사람들이 늘 있고
그때마다 후배는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새로운 이가 등장하면 기존의 관계들에 변화가 있기 마련이지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런데 기존에 있던 식구들은
마치 새 인물의 등장으로 인한 파란이라고 여겨 언짢아하기도 하는데,
처음 합류한 사람 편에서 보자면 또 얼마나 힘든 일이겠는지요.
어쨌든 그곳 소식을 들으며
흔히 공동체에 모이는 이들에 대해서 또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 후배의 말대로 아예 시작을 말았으면 하는 이들이 있지요.
다음과 같은 경우에 자신이 속한다면
공동체에 발을 들이는 일을 다시 생각해봐야지 않을까 싶데요.

첫째, 자기 욕구가 큰 사람.
‘자기를 잃지 않아야겠다’는 생각,
자기가 묻혀버리지 않나 끊임없이 강박처럼 여기는 이라면 분명 힘들 것입니다.
둘째, 끊임없이 계산하려 드는 사람.
마음을 내는 일은 계산의 범주에 포함된 게 아니지요.
셋째, 자신이 잘났다는 생각이 강한 사람.
어느 누구도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못 나서 이런 곳에 오고 못 나서 이 산골로, 말하자면 밀려드는 게 아닙니다.
그냥 나를 써보는 태도가 필요하지요.
잘난 자신을 내보일 곳이 필요하면 그런 곳으로 가야 마땅합니다.
‘나도 만만찮은 사람이거든.’
이런 생각이 강하다면 그렇게 싸울 수 있는 데로 가야겠지요.
넷째, 모이는 에너지를 헤치는 사람.
대개 공동체는 규모가 크지 않습니다.
얼마 되지도 않으면서(물론 규모가 적으니 개별의 특성이 두드러지기도 하겠지요)
마음이 여러 갈래면 그 공동체가 어디로 가겠는지요.
애정으로 살아야할 것입니다.
다섯째, 공동체의 나아가는 바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공동체를 들어가기 전
그곳에 대한 충분한 설득과 동의가 자신에게 있어야겠지요.
어줍잖게 대충 맞는 것 같고 당장 자기 구미에 당기는 것만 보고 가면
분명 후회하고 돌아 나올 것입니다.
자신에게도 상처고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못할 짓이지요.
여섯째, 그 공동체에서 가장 우위, 혹은 중심이 무언지 보고 가야 합니다.
가령 물꼬 같으면 학교, 그러니까 아이들이지요.
아이들을 못견뎌하는 사람이라면 오려는 생각을 재고해봐야겠지요.
그 공동체의 중심에 있는 사상이라면 사상, 그런 걸 못견뎌하면서
다른 이익 때문에 들어간다면
역시 다시 떠나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것도 그 공동체 욕을 하면서 말이지요.

공동체 혹은 대안학교 혹은 비스무레한 어떤 공간으로
끊임없이 사람이 오고 그리고 떠납니다.
자연스럽게 볼 일입니다.
아프게 헤어지는 일이란 게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일일지라도
아픔을 아픈 대로 바라볼 줄도 아는 지혜가 생겨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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