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3.28.쇠날. 맑음

조회 수 1518 추천 수 0 2008.04.12 20:16:00

2008. 3.28.쇠날. 맑음


“달래가 젤 먼저 양지에 나지.”
오늘은 나물이랑 시간 학교 뒷마을인 댓마 할머니 한분을 찾아갑니다.
훌륭한 배움터인 이곳이지요.
아이들을 둘러싼 마을 어른들이 다 교사입니다.
“냉이 씀바귀 쑥, 좀 있으면 머위 취나물 고사리...”
당신이 평생 봄이면 뜯었던 나물들을 일러주셨지요.
“삽초싹 순도 뜯어 먹지.”
삽초싹은 무엇일까요?
열심히 설명을 하시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들입니다.
언제 그게 난 게 보이거들랑
우리들을 불러 알려주겠다셨지요.
하리댁 할머니는 어느새 길가에 철퍼덕 앉으셨고
얘기는 길어집니다.
말상대가 아쉬운 산골이지요.
얼마 전 할아버지 아프셔서 겪었던 고초가 이만저만 아니셨던가 봅니다.
‘이문할머니’
류옥하다는 우리들에게 그리 할머니 성함을 가르쳐주었지요.
작년 스스로공부 주제로
대해리 마을 사람들 인명록을 만들던 그였습니다.
들고 갔던 즙을 공부값인 양 내놓고 돌아옵니다.
올 봄은 그렇게 어른들 사이를 누빌 날이 많을 쇠날이겠습니다.

11시, 옥천으로 향합니다.
묘목축제가 있지요.
토피어리, 도자기, 지점토, 곤충, 민속놀이 체험,...
이런 축제라면 꼭 끼는 체험장을 돌아보고
묘목농원들을 돌아다닙니다.
올해를 기념하여 심을 나무도 예서 가져갈 거지요.
사과나무, 배나무를 샀습니다.
가시오가피, 감나무를 선물로 받기도 하였네요.
작두콩 모종도 아이들이 하나씩 안았습니다.

공동체식구한데모임이 물날에서 쇠날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목수샘이 한 해를 넘게 장기방문자로 머문 경험을
새로 공동체식구로 자리를 잡아가는 부엌샘한테 전합니다.
“진리는, 누구도 내 처지랑 같은 사람이 없고,
내 처지가 가장 절박하지요...
느림에 몸을 맡기는 게 안 되면 여기서 어렵습니다.
...강박입니다. 내가 없으면 안 되겠다 싶지만 어떻게든 돌아갑니다.
나는 여기서 어떤 존재인가 하는 철학적 고민도 중요하나
이 공간이 주는 걸 만족해하고 행복해할 줄 알아야...
고민하기 시작하면 힘듭니다...”
이이는 이런 생각을 하며 한 해를 보냈구나,
공간이 너른 곳이라 서로 얘기를 나누는 것도 쉽지 않더니
이렇게 한 존재가 사유하는 과정을 듣습니다.
“굉장히 힘들 때 놓지 않으려는 노력이 정말 힘든데,
지키려는 노력을 하면 정말이지 힘이 듭니다.
그런데 놓으면, 낭떠러지라고 보니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끝장이다 생각하지만 여전히 살아가고...
늘 내가 문제인 거지요.”
부엌샘은 그냥 작은 위로가 필요했고 하소연을 하고팠다 합니다.
종대샘이 계속 말을 이었지요.
“어느 공간에 있으나 다 같애요.
위안은 누가 주는 게 아닙니다.
같이 옆에 있는 존재라는 사실, 그것이 9할(의 위로)이지요.”
아이에 대해서도 부모인 만큼 고민 클 밖에요.
역시 종대샘이 당신 생각을 전합니다.
“아이가 여기서 스스로 관계 맺기를...
아이가 가진 힘을 믿고,
끼어들고 대변하고 설명할 게 아니라...”
아, 저이가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좋은 관조자의 생각을 들을 수 있어서도 흔쾌한 시간이었더이다.

시간은 힘이 셉니다.
편치 않을 때도 있으나 흔들리며 가는 거지요.
때로는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지 않을 줄 아는 것도 지혜일 겝니다.
나날에 그냥 몸을 실어보는 것,
그것도 지혜 한 가닥 아닐까 생각해보는 요즘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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